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송병선 옮김, 문학동네 2010.
Mario Vargas Llosa, PANTALEÓN Y LAS VISITADORAS
Ⅰ
"일어나요, 판타." 포치타가 말한다. "벌써 여덟 시예요. 판타, 판티타."
"벌써 여덟 시라고? 맙소사, 세상모르고 잤어." 판티타가 하품한다. "내 계급장 달았어?"
"그럼요, 중위님." 포치타가 차려 자세를 취한다. "아이, 미안해요, 대위님. 내가 습관이 될 때까지는 그냥 중위로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계급장을 달아놓으니 아주 멋져 보이는걸요. 하지만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해요. 약속이 몇 시죠?"
"응, 아홉 시야." 판티타는 얼굴에 비누칠을 한다. "포차, 이번에는 어디로 발령이 날까? 수건 좀 줘. 당신은 어딜 거라고 생각해?"
임무 수행 능력이 탁월하여 윗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아온 '바른생활 장교'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가, 아마존 밀림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의 성생활을 충족시켜 줄 '특별 봉사대'를 창설하라는 비밀 명령을 받게 되는 날 아침입니다. 판탈레온은 꿈에도 그 사실을 짐작하지 못하고 그 아침을 맞이합니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Ⅱ
페루, 아마존 밀림에 고립된 군부대 병사들이 섹스에 굶주려 인근 여자들을 겁탈하는 행위 때문에 골치가 아픈 군 고위층이 대위 판탈레온에게 비밀리에 창녀들을 고용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판탈레온에게 신분을 감추고 임무를 수행하라고 명령합니다. 장교 숙소에서 생활할 수도 없고, 동료를 만날 수도 없고, 심지어 아내와 어머니에게도 비밀입니다.
오로지 페루 육군 장교로서의 충성심과 긍지만으로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을 창설하고, 아마존 지역의 여러 병영과 초소로 창녀들을 데리고 가서 병사들의 성욕을 해소시켜 주는 일에 매진합니다.
'판탈레온식' 질서와 규율 속에서 너무나 '이상적으로' 운영되어 온 이 '수국초특'에 아름답고 매혹적인 창녀 '미스 브라질'(올가 아레야노 로사우라)이 나타난 것이 화근입니다. 판탈레온이 그만 이 여인에게 빠져 애인으로 삼으면서 아내 포차까지 배신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미스 브라질'이 주민들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판탈레온은 '수국초특 경영자답게' 창녀들의 사기를 북돋우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장교복을 갖추어 입고 그 장례식을 주관합니다.
이로써 '수국초특'은 그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당연히 비밀 명령을 내렸던 군 수뇌부에 의해 하루아침에 폐쇄되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판탈레온이 즉각 수뇌부의 호출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Ⅲ
"제가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은 진실입니다. 그런 제안이 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창녀에게 군장의 의례를 베풀고, 그녀를 영웅이라고 부르며, 우리 군에 베푼 섹스에 감사하라는 게 말인가?"
판탈레온과 티그레 코야소스 장군이 기나 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306)
판탈레온은 장군과 그 동료들로부터 장시간 호된 질책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전역을 결심하라는 명령에는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한 일의 정당성을 설명합니다. 드디어 수뇌부는 판탈레온을 티티카카 호 수비대로 파견하여 다시 기회를 줍니다.
"판토하, 자네는 정말 이상한 놈이야. 그래, 이제 가도 좋네."(371)
소설은 처음처럼 판탈레온의 아내 포치타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아내가 돌아온 것입니다. 《시지프의 신화》(알베르 까뮈)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이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 된다고 했지만, 판탈레온에게는 그렇게 되풀이되는 일상이야말로 조국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에 더하여 완전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정수일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어휴 추워, 너무 추워요. 너무 추워." 포치타가 몸을 덜덜 떤다. "성냥은 어디 있어요? 빌어먹을 초는 어디 있어요? 전깃불도 없는 곳에서 사는 건 너무 끔찍해요. 판타, 어서 일어나요. 벌써 다섯 시예요. 난 왜 당신이 병사들 아침식사를 보러 가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일에 너무 집착해요. 너무 이른 시간이잖아요. 추워 죽을 것 같아요. 아이, 이 바보. 또 그 팔찌 때문에 긁혔잖아요. 밤에는 좀 빼놓는 게 어때요? 벌써 다섯 시라고 했잖아요. 판타, 어서 일어나요."(371)
Ⅳ
꼭 인용해 두고 싶은 문장은 단 한 곳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재미없는 곳 또한 단 한 군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의 섹스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 줄 특별봉사대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분명한데도 판탈레온의 행위를 비난하기보다 그는 심성이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므로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창녀들의 행위가 정당하지 않은가 싶고, 아내 포치타가 떠나버린 것이 안타깝고, 심지어 티그레 코야소스 장군의 질책에 대해 그가 내린 명령과 그 명령에 따른 보고서들의 사본이 있으면 그걸 '증거(證據)'로 제출하여 책임을 모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건, 멀리 갈 것 없이 아들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쑤겠다고 해도 믿어주던 레오노르 부인의 말만 들어봐도 분명합니다.
"난 항상 널 믿었다. 아들아." (…) "너를 무작정 믿었어. 하지만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지금 미쳤어. 판타. 창녀의 장례식에서 연설하려고 장교복을 입다니! 네 아버지, 네 할아버지 같으면 그렇게 했겠니?"(332)
Ⅴ
인용하고 싶은 곳은 없지만 재미없는 곳도 없다고 한 것은, 이야기를 풀어간 바르가사 요사의 재주가 놀랍다는 의미입니다.
하기야 문제의 근원은 판탈레온에게 있지 않고 그가 그렇게 하도록 결정한 페루 정부와 군부의 부패에 있을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우리의 저 위안부 문제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마존 밀림에서 창녀들과 함께 지내던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는 다시 새로운 명령을 받고 씩씩하게 티티카카 호를 지키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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