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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장차'가 아니라 '지금' 행복한 교육(2015.4.6)

by 답설재 2015. 4. 5.

우리나라 교육은 워낙 미사여구를 좋아해서 표어로 설정해보지 않은 주제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한때 여러 학교에서 교문에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교실!"이라는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 누가 간절한 마음으로 써 붙인 걸 보고 '저게 좋겠다!' 싶어 그걸 구체적 지표(指標)로 삼지도 않으면서 너도나도 그렇게 해서 낯간지러운 유행이 됐을 것이다.

 

의미로는 멋지고 옳다. 학생들이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 좋으면 얼른 가고 싶고, 아예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겠는가. 그건 꿈같은 얘기지만, 우리 교육에 관한 논의에서 필수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학생들끼리 경쟁을 일삼게 하면 어쩔 수 없이 서로 겨루게 되니까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좀 편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정작 학생들이 행복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쟁을 즐기는 경우는 몇몇 선두주자, 그중에서도 도전의식이 특히 강한 극소수의 학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것이, 지금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보다 "이것을 알아두어야 남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장차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할 때, 그렇게 자극적으로 부추기는 환경에서도 경쟁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학생은 이른바 "수포자(數抛者)" "영포자(英抛者)"란 말이 보여주듯 아예 체념한 상태가 아니겠는가. 학부모도 그렇다. 자녀교육을 이미 포기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녀가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앞서나가기를 원하고 그 결과로써 장차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또한 자녀의 그 성취가 바로 성공적인 인생 여부를 가늠하는 평가기준이 된다고 여기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예를 많이 들 것도 없다. 요즘은 상위권 엄마 모임에 끼려면 영어회화가 필수라고 한다. 그 카페의 정보가 새나갈까 봐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경종을 울리는 통계도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업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세계적으로 가장 심하고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한국아동종합실태조사와 유니세프(UNICEF) 자료를 비교 분석해본 결과, 두 명 중 한 명(50.5%)이 "학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는데 이는 조사 대상 30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반면 학교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한 아동은 18.5%로 30개국 중 25위였고,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6점 이상(10점 만점)으로 답한 아동은 60.3%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는데, 만족도가 80% 미만인 나라는 세 나라뿐이고, 그나마 폴란드는 79.7%, 루마니아도 76.6%여서 우리보다는 훨씬 높았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심지어 '놀이와 여가가 자신의 권리'인 줄도 모르는 어린이·청소년이 50.4%나 된다고 한다. 놀이나 여가생활을 '비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로지 "공부" "경쟁"만 염두에 둔 교육의 결과다.

 

이러니까 새 학기가 시작되는 3,4월만 되면 왕따, 학교폭력, 성적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고 정신과 상담을 받는 학생이 늘어난다. 학업을 중단하는 청소년이 한 해에 6만8000여 명이나 되고(2013년), 학교 밖 청소년이 28만 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좀 엉뚱한 주장을 하고 싶다. 성적 올리기 경쟁은 유보하고 "포기자가 없는 교육"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교육"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지내는 학교"에 관한 성공사례를 찾고 그런 교육을 위한 정책연구, 정책토론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자는 것이냐?" "모름지기 공부란 하기 싫더라도 해야 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들고 나올 사람들이 많아서 두렵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런 교육을 해야 우리 학생들이 더 행복해지고 '왕따' '학폭'도 줄어들고,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미래의 행복을 약속하기보다 지금 당장 행복한 교육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