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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강은교「등꽃, 범어사」

by 답설재 2015. 2. 12.

등꽃, 범어사

 

 

강은교

 

 

내가 못 본 사이에 등꽃은 피어버렸고

내가 못 본 사이에 등꽃은 져버렸네

 

저문 등꽃 잎 한 장 주워 드네

함께 함께 깊은 밤 떠다니네

 

 

 

―――――――――――――――――――――――――――――――――――――――――

강은교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사상계』 등단. 시집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벽 속의 편지』 『어느 별에서의 하루』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초록거미의 사랑』 『바리연가집』 등.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15년 1월호, 206~207쪽.

 

 

 

 

  김영태1 소묘집 『시인의 초상』(지혜네, 1998)에서.

 

 

 

80여 명의 시인을 소개한 『시인의 초상』에서 김영태 시인은, 강은교 시인에 대해 「반신반어, 인어처럼」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1971년에 나온 시집 『허무집』에 실린 생머리의 강은교 시인 사진은 앳돼 보인다면서 "꼭 다문 입과 짙은 눈썹 아래 눈은 청등(靑燈) 같다"고 했습니다.2

이 책의 강은교 시인 이야기를 더 옮겨 보겠습니다.

 

 

▶ 신석정은 '……왕년에 여류시가 지니는 범상한 시풍과 체취의 흔적을 훌훌 벗어 던진' 강은교의 출현을 기뻐했다.

 

▶ 강은교는 74년에 오늘의 시인총서 다섯 번째 타자로 등장한다. 《풀잎》이란 시집인데, 해설을 쓴 김병익은 '여류의 관형사가 이제는 실질적으로 거부될 때가 왔다고……' 전망했다.

 

▶ <풍경제>3는 강은교가 뇌동맥정맥기형 대수술을 받았을 때(72년) 산물인 듯하다. 강은교의 집은 갈현동 쪽에 있었다. 그 무렵 지식산업사 앞에서 강은교를 만났다. 검은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가 내 눈에는 청교도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는 언제나 말수가 적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 네 뼈 네 뼈가 불려가는 소리……'로 대낮의 관철동 길가에 그림자를 남겼다.

 

▶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인'이라고 신석정이 예감했듯이 그는 운동권 선두였던 시인 남편을 만났고, …….

 

▶ 그가 걸어온다. 양팔에 바다를 안고, 반신반어(半身半魚)처럼 지느러미에 물거품을 튕기며……

 

 

'한국의 인문학'이 이렇게 유명해진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오래 전부터 그 깃발을 높이 내 건 블로거 '언덕에서'의 『BLUE & BLUE』(2015.2.4.)에서 강은교 시인의 시집(『막다른 골목을 사랑했네, 나는』) 이야기를 읽고 어쭙잖은 댓글을 썼더니 다음과 같은, 잊을 수 없는 답글이 달렸습니다.

 

강은교 시인은 친구의 대학 시절 은사님이었습니다.

좋은 시를 쓰시는 한국의 대표 시인이시지만 인품 역시 훌륭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이분처럼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더 썼더니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ㅎㅎ

요즘도 제가 이분의 시를 즐겨 읽고, 아내도 그러하니

그 생각을 이루었다고 해야겠습니다. ㅎㅎ

 

그래서, 나는 이처럼 품격 높은 답글을 쓸 수 있는 내 불친 '언덕에서'가 많이 부러웠고, 그렇다면 강은교 시인은 이 일만으로도 그 얼마나 행복한 시인인가 싶었습니다.

 

                                『BLUE & BLUE』에 실린 『막다른 골목을 사랑했네, 나는』 보러가기
                                  ☞ [http://blog.daum.net/yoont3/11302095](http://blog.daum.net/yoont3/11302095)

 

 

「등꽃, 범어사」에 관한 얘기는 하지도 못했지만, 이제와서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긴 얘기를 어떻게 다 하겠습니까. 「등꽃, 범어사」를 읽으며 생각이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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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태 시인을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 소개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김영태金榮泰 '36년 서울 출생, 홍대 서양화과 졸업, '59년 '사상계'를 통해 문단 데뷔, 현대문학상, 시인협회상, 예술평론상 수상, '89년 총평론가회 회장 역임, 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무용원, 동덕여대 무용과 강사.
2. 그 책, 20쪽.
3. 이렇게 인용되어 있습니다. [누가 끝없이 사라지고 있다 / 장미의 끝에서 끝으로 / 그의 긴 울음소리는 사라지며 / 홀로 숨은 세상을 적신다 // 젖어서 물이 되는 피 / 젖어서 즐거운 물이 되는 그대 / (중략) // 문 밖에는 급 위독의 전보가 기다린다 / 문 밖에는 축 사망의 편지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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