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문태준 「맨발」

by 답설재 2015. 3. 6.

 

 

 

 

"문태준이 두 번째 시집 『맨발』(창비, 2004)을 출간하고 세 개의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1990년대 이래 서정시의 영광을 절정에까지 끌어올린 2004년"

 

『현대문학』 2015년 1월호의 특집 《2000년대의 한국 문학》에서 본 문장입니다.* 시인으로서, 아니 그 무엇으로도 이보다 더한 평가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설명도 있었습니다.

 

문태준의 두 번째 시집 『맨발』에 쏟아진 호평은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것이었고(2년 뒤에 세 번째 시집 『가재미』를 출간하기 전까지 그는 총 다섯 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인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당대를 대표하는 서정 시인으로 추대되고 말았다. 시집의 표제작인 「맨발」은 일단은 시인의 부친에게 바쳐진 작품이겠지만, 넓게는 1945년 해방 전후로 태어났을 아버지 세대 전체에 대한 헌사로 읽힐 법도 하다.

 

"「맨발」은 일단은 시인의 부친에게 바쳐진 작품이겠지만"

"넓게는 1945년 해방 전후로 태어났을 아버지 세대 전체에 대한 헌사로 읽힐 법도 하다."

 

이 시가 '맨발'이었던 아버지와 그 세대에 대한 헌사였다면 그 아버지와 그 세대는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안이 지금도 여전한가?" 하면 그건 의문입니다.

 

노인들은 쓸쓸합니다.

그 쓸쓸함을 표현하기조차 민망하고 어렵습니다.

 

 

고령화로 노인의료비 급증… "2060년 건보적자 132조"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로 말미암아 노인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건강보험재정에 감당하지 못할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 이목희 의원에게 제출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건강보험 수입지출 구조변화와 대응방안(2012년)' 자료를 보면, 노인의료비의 급등으로 건강보험재정 수지는 장기적으로 적자행진을 보이면서 적자규모가 2020년 6조3천억원에서 2030년 28조원, 2040년 64조5천억원, 2050년 102조1천700억원에 이어 2060년에는 13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2013년 건강보험의 총 지출규모가 38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적자금액이 천문학적이다. …(후략)…**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로 말미암아…"

'어떻게 하면 이 속도를 늦출 수가 있을까', 잠깐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늙지 않는 방법은 없나?' '좀 천천히 늙는 방법은 없나?' '과학자들은 그런 일은 못하나?' '지금 젊은 사람들은 노인이 되지 않는 방법은 없나?'

황당합니까?

이젠 노인이 되어도 저 「맨발」 같은 헌사를 바칠 시인도 없을 텐데…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 신형철, 「2000년대 한국 시의 세 흐름―깊어지기, 넓어지기, 첨예해지기」(현대문학, 2015년 1월호).

** 연합뉴스, 2014.10.19.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0) 2015.03.23
「봄」  (0) 2015.03.17
김사인 「노숙」  (0) 2015.02.25
강은교「등꽃, 범어사」  (0) 2015.02.12
조율 「이달의 거리」  (0) 2015.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