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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조율 「이달의 거리」

by 답설재 2015. 1. 25.

이달의 거리

 

 

조 율  

 

 

우리, 달로 가자. 함께 한 숟갈 깊게 떠먹자.

모험 없이 달큰한 아이스크림 같은 방, 차가우면서 뜨거운 그런 참한 방.

봄이면 목련에 필라멘트를 꽂아 전등으로 달고 애들 볼 성인만화 장바구니에 가득 채워 애들처럼 보자. 숟가락 두 개 들고 붙는 거리, 평생치 눈물은 딱 그 거리만큼만 긷고 웃자.

 

어느 날 젖은 빨래로 오늘의 운명을 단정히 개어놓는 나를 발견하면. 다림질로 다리고 다리다 끝내 깊은 밤하늘의 새까맣게 젖은 바짓단을 다려내자. 굽이굽이 접어놓았던 그 길, 그 신통방통한 다리미로 늘여내자. 아득한 옛집 번지수가 촘촘하게 수놓인 그 가슴께 주머니, 더듬자. 뜨겁고도 지그시 눌러 펴자. 한 손으로 휘어잡아 뽑아버린 코드 놓고 슬프게 도망가는 밤이 와도 이내 돌아올 당신과 나의 거리.

 

얼굴에 푸른 기미를 이끼처럼 키우고 골목인지 얼굴인지 모르도록 하루가 다르게 자라다 회빛 둥둥 진짜 달처럼 밝고도 컴컴해지면.

그때 나는 당신, 이라는 간판 하나 걸어놓은 이 달의 가게 주인처럼.

그래 조금은 일찍 불을 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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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1983년 인천 출생. 2013년 『한라일보』 등단.

 

 

 

2013.11.5. 저녁. 불켜진 집들

 

 

 

 

"우리, 달로 가자. 함께 한 숟갈 깊게 떠먹자. 모험 없이 달큰한 아이스크림 같은 방, 차가우면서 뜨거운 그런 참한 방. 봄이면 목련에 필라멘트를 꽂아 전등으로 달고 애들 볼 성인만화 장바구니에 가득 채워 애들처럼 보자. 숟가락 두 개 들고 붙는 거리, 평생치 눈물은 딱 그 거리만큼만 긷고 웃자."  

 

그렇게 말하는 이가 만났던 것 같아서 만나러 가고 싶어집니다.  

 

하루하루가 어려워서 눈물 감추다가, 지쳤다는 말은 없지만 하염없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겠지요.  

 

그러다가 속삭임처럼 이야기합니다. "우리, 달로 가자. 함께 한 숟갈 깊게 떠먹자. 모험 없이 달큰한 아이스크림 같은 방, 차가우면서 뜨거운 그런 참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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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려워서 짜증이 납니다.

시인은 시인대로 살아가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인들이 지쳐서 혼자서 시를 쓰기로 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너도 나도 다 시를 써야 할 때가 되어서 이젠 시가 독백(獨白)이 되어버리는 건지……

 

사실은 무턱대고 어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렵겠지?' 하고 지레, 아예, 어렵게 읽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처럼 쉽게 다가가면 쉽게 마음을 내주는 것이 시인지도 모릅니다.

 

"얼굴에 푸른 기미를 이끼처럼 키우고 골목인지 얼굴인지 모르도록 하루가 다르게 자라다 회빛 둥둥 진짜 달처럼 밝고도 컴컴해지면. 그때 나는 당신, 이라는 간판 하나 걸어놓은 이 달의 가게 주인처럼. 그래 조금은 일찍 불을 켜고."

 

아무리 어려워도 "당신, 이라는 간판 하나 걸어놓은 이 달의 가게 주인"이라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면 마음은 괜찮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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