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나에게로
노춘기
그런 날, 버스에 자리가 없어서
너와 떨어져 앉아 한참을
말없이 가야만 했던 그런 날
가령 극장에 나란한 자리가 없어서
곁을 잃고 두 시간 동안 묵묵해져서
눈을 돌려 바라보면 너는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
네가 이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내가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았던가
내내 불안해져서
그런 날, 돌아오는 버스에
나란히 서 있을 자리도 없어서
너와 다른 쪽 창을 향한 손잡이를 붙들고
흔들려야 해서,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밀려
너에게서 한 발 더 멀어지고 아득히
물끄러미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빼곡한 옆얼굴들 사이 틈틈이
너무 멀어진 네 표정을 지켜보면서
알게 되었겠지 너도 나에게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걸
영원히 혼자 서 있게 된다는 사실을
문득 눈이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깊이 불안해져서 그런 날, 무슨 말인가를
들어야만 지나갈 수 있었던 그런 날
창밖에 정류장의 어둠을 우산으로 받으며
침울한 얼굴의 내가 서 있는 걸 목격하고
딛고 선 발밑을 잃어버릴 것처럼
단 한 번의 외면으로 모든 기억을 삭제당할
심판 앞에 선 것처럼 그런 날,
너와 나는 금이 간 흙벽을
맨몸으로 움켜쥔 폐가의 기둥 같아서 물끄러미
아득히 너에게서 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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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춘기 1973년 경남 함양 출생. 2003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 『오늘부터의 숲』.
그 초가을이 7년이 되어가네요.『現代文學』 2014년 9월호였으니까요.
그냥 두면 10년도 가겠어요.
그날 저녁 어떤 생각이었을까, 떠오르는 게 없고 그게 또 서글프네요.
나도 버스를 탄 적이 있었나?
언제쯤 내게 '너'가 있었나?
저학년 애들 수학 문제 같아서 이미 실감이 없군요.
다 지나갔는데 이제 와서 별이 떴나 보려고 흐릿한 바깥을 기웃거리는 꼴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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