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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과서 사용법

by 답설재 2014. 10. 21.

어느 멋진 독자가 붙여주고 간 댓글입니다.

 

 

 

 

 

교실에 다양한 교과서를 구비해 놓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모두 다르니까 각자 가장 좋은 책을 골라서 읽도록 해.” 하고 안내하는 교실을, 정상적인 교실이라고 했습니다.

 

좀 엉뚱하다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어느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는데, 저 선생님은 그 글을 엉뚱하다고 하지 않고 위와 같은 댓글을 단 것입니다.

 

 

우리의 교과서와 교과서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하면서 느끼게 되는 크고 무한한 ‘한계’가 있다. 교과서 중심 수업, 지식 전달식 수업, 획일적 강의 중심 수업 등으로 표현되는, 대학입시 준비교육으로는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암담함이다. 수업이 바뀔 수 없다면 교과서의 수준 향상 또한 거의 무용(無用)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좋은 교과서를 개발하면 좋은 수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과서의 다양성은 결코 교사의 자유로운 선택만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언제나 단 한 권의 교과서를 받아서 그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수능 등에 출제될 만한 핵심을 암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교과서 자율채택제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교사는 또 그 교과서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설명해주는 지식주입식 교육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좋은 교과서’에 대한 이상(理想)은, 학생들도 개인별로 자유롭게 필요한 교재를 선택할 수 있어야 실현될 수 있다. 교사의 ‘해설’이 사라지고 학생들의 사고·탐구가 주요 활동이 되는, 그런 수업, 그런 교실을 그려보면, 어떤 학생은 그 교과의 시간에 가장 쉽게 보이는 한 권의 교과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다른 학생은 동일한 그 교과의 시간에 두세 권의 교과서를 동시에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과서의 활용이란 학생 개인별로 모두 다른 상태이며, 교과서란 학생들이 개인별로 소지하도록 배부되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학교에서 온갖 교과서를 풍부하게 구입하여 비치해 주는 것이 이상적이기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육과정에 의해 설정한 수업목표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며, 어느 특정 교과서를 선정·채택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고 요약해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와 안내에 따라 개별학습을 하고 소집단, 혹은 전체학습에 참여한다. 정부에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교재를 구입해주며, 교과서는 수많은 교재 중의 일부이고, 학생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교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재의 다양성’이란, 공급면의 다양성(교사의 자율적인 선정·채택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학습의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경우의 다양성이라야 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학교와 교원들의 성과는 ‘어느 대학교에 몇 명의 학생을 입학시켰는가?’와 같은 ‘무지막지한’ 자료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시켰는가?’로 판단된다. 이 학교(이 글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학교)에서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어 교과서 내용전달에 치중하는 오늘날 한국의 학교들을 바라보면 “교과서 혹은 교과서 제도의 개선이 왜 필요한가? 아주 멋진 교과서를 한 권만 개발하여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의문을 제기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어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개미의 공동생활’에 대한 학습을 시키고자 한다면 어떤 책이 필요할까?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떤 책을 제공해 주는 것이 좋을까? A교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너희에게는 이 책이 가장 좋을 게 분명해! 이걸로 일사분란하게 공부해!” 다음으로 B교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몇 권의 책을 제시할게. 너희들이 의논해서 그 중에서 한 권을 골라 읽도록 하자.” 그러나 C교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걸 내가 왜 지정하겠니? 너희들은 모두 다 다르니까 각자 가장 좋은 책을 골라서 읽도록 해.” 개미 연구와 국어·사회·수학·과학 같은 교과는 성격이 다른가? 교과서 제도는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가? 나라의 사정(경우)에 따라 다른가?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면 개미의 공동생활에 국한하여 보면 어떤가?

 

 

저 글이 엉뚱한 제안을 한 것인지 당장 밝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저 제안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아마 몇십 년 후에야 실현될지도 모르고, 당장 몇 년 후에 실천하는 학교나 교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이것도 다 아주 사소한 하나의 사례를 그려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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