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이야기 4>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
□ 숭어 5중주? 송어 5중주?
딸아이 입에서 ‘편수자료’ 이야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어느 대학생이 교과서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그 곡이 “송어인지, 송어 또는 숭어”인지, 즉 “송어만 옳은 건지, 송어가 옳지만 예전처럼 숭어라도 해도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고 했을 때, 얼핏 어디서 그 기사를 본 것 같아서 “숭어였는데 송어로 고쳤지, 아마?” 했더니 그 정도는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지도교수가 편수자료라는 게 있다면서 거기에서 둘 다 인정하고 있다는 쪽으로 단언(斷言)하는데 아무래도 그게 의심스러워서 확실하게, 그러니까 그 자료에 정말로 그렇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건 간단하게 넘어갈 일은 아니구나.’ 싶었고, 지금 내가 편수자료 최신판은 갖고 있지 않으며, 어디 관련 기관 사이트의 편수자료 파일도 그 상황, 그러니까 ‘송어인지 숭어인지, 아니면 송어 또는 숭어인지 판가름한 교육부 조치’가 반영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자료일 것이라는 사실도 떠올랐지만 일단 호기롭게 대답했다.
“알았어! 내가 교육부 있을 때 음악 편수관 하던 사람에게 물어볼게. 기다려.”
이튿날 아침에 그에게서 속 시원한 연락이 왔다. “거울 같이 맑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나그네 길 멈추고 언덕에 앉아서 그 송어를 바라보고……”로 이어지는 가사를 봐도 ‘송어 또는 숭어’가 아니고 ‘민물고기 송어’가 옳으며 편수자료에도 분명히 ‘송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딸아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더니 이번에는 딴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어젯밤, 그 학생에게 음악 편수관을 지낸 사람에게 직접 연락해서 알려주기로 했다니까 오늘 이른 새벽에 전화를 하더니 세상에!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며 얼어붙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음악 하는 분들끼리는 아주 빤해서, 편수관을 지낸 그분이 우리 교수님께 이야기해버리면 저는 죽어야 할 거예요.”
그 걱정을 일축해버리도록 부탁하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우선, 이건 순전히 개인적이고 수준 낮은 정서지만, 나 같아도(교수가 아니어서 다행일까?) “송어도 되고 숭어도 된다.”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발음으로도 ‘송어’보다는 ‘숭어’가 훨씬 낫고(‘송어네 가족’이 들으면 몰매 맞을 말이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송어, 숭어…… 두 낱말을 번갈아 되뇌어보면 숭어에게는 뭔가 더 있어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 동네 ‘송어양식장횟집’에 가면 언제라도 아주 싼값에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이 송어지만, 숭어라면 내가 먹어본 기억조차 없는 어떤 고고한 자태의 물고기일 것 같아서 더 신비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으며, 그렇다면 평생 “숭어, 숭어” 하고 가르친 것이 허망할 것 같기도 했다. 이어서 나는 송어와 숭어는 도대체 어떤 물고기인지,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는 도대체 어떤 곡인지 알아보자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그날 저녁 인터넷을 열어놓고 백과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송어와 숭어에 대한 ‘연구’, 이어서 피아노 5중주 ‘송어’, 가곡 ‘송어’ 감상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 생각은, 교육부에는 아무래도 각 교과별로 장학관이나 편수관이 한 명쯤은 있는 것이 좋겠다, 아니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 중요하고 큼직큼직한 일을 아주 많이 하고 있어서 웬만해서는 그 일들을 열거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단 한 가지, 이 세상 누구라도 알고 있을 만한 일은, 전국의 그 수많은 초·중·고등학교에서 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일이 국어, 수학, 영어, 사회, 역사, 도덕, 과학, 체육, 음악, 미술, 기술·가정 등 교과목별 수업이니까, 그걸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대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한 명쯤은 있어서 그 방향을 제시하고 제대로 하는지 살펴보고 지도해주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 말고 “음악이라면 내가 전문이지!” 할 때의 그런 전문가가 아니라, 말하자면 바로 그 일을 맡아서 송어인지 숭어인지, 혹은 송어라고 해도 좋고 숭어라고 해도 좋은지 판단해주는, 일본 같으면 문부과학성에 있는 51인의 교과서조사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전문가가 우리 정부에도 있어야 할 일 아닌가 싶은 욕심이 나더라는 것이다.
□ 피터 드러커의 오판(誤判)
피터 드러커는 ‘정부의 한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정부 활동은 언제나 절대적인 것으로 된다. 정부 활동은 그 본질상 상징화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취급된다. 그것은 단순히 유용한 것, 목적을 위한 수단은 아닌 것으로 거룩하게 취급된다. 성과가 없어도 ‘달리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솟지 않는다.” 드러커는,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모든 정부 활동은 폐지하기가 어려우며 폐지하려면 언제나 맹렬한 저항에 부닥친다. 정부가 하는 일은 언제나 그 자체가 선으로 취급되고 만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관심이 깊어서 걸핏하면 “한국”을 들먹인 책이 한두 권이 아니지만 정작 우리 정부의 활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처럼 단호하게 썼을까 싶은 것이다. 그가 만약 우리나라 교육부 편수국의 부침(浮沈)에 관한 자료를 일별(一瞥)이라도 했다면 매우 흥미로운 사례로 여겼을 것이 분명하고 정부 활동에 대해 결코 저렇게 단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편수국을 네 번이나 두었고, 네 번이나 폐지한 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48.11~1961. 9 편수국 신설
1961.10~1963.11 (편수국을 폐지하고 학무국에 편수관을 둠.)
1963.12~1978. 2 편수국 부활
1978. 3~1980. 1 (편수국을 폐지하고 장학실에 담당관을 둠.)
1980. 2~1981.10 편수국 부활
1981.11~1994. 4 (장학실과 편수국을 통합하여 장학편수실로 개편)
1994. 5~1996. 6 편수국 부활(장학실과 분리)
1996. 7~ 편수국 폐지(초중등교육실, 학교정책실, 교육정책실 체제)
□ 편수국은 어떤 곳인가?
피터 드러커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부 활동은 그 본질상 상징화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취급된다.”고 비아냥댔지만 옛 편수국은 ‘정말로’ 거룩한 곳이었다.
1946년, 미군정청 편수사가 된 최병칠은, 함께 일한 외솔 최현배, 늘봄 전영택, 가람 이병기, 화가 구본웅 등 당시의 기라성 같은 편수관·편수사들을 회고하는 글에서 초대 편수국장 최현배 선생은 “직업공무원이 아니라 자기의 이상과 포부를 실현하기 위하여 그 자리를 택했을 뿐, 차관이나 장관과 같은 지위에 대해서는 하등 매력을 느끼지 않는 특이한 존재”로, 6·25 전쟁이 일어나 공포와 암흑이 앞을 막고, 기아와 추위가 혹독한 그해 겨울, 편수국 전 직원을 이끌고 부산여중 기숙사, 부산시청, 묘심사 납골당 등 난방도 되지 않는 시설을 전전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외솔 선생에 대해 평생 잊히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6·25, 1·4후퇴, 부산 피난 당시에 국민학교의 교과서를 일본에서 찍어 오자는 미국인 고문단들의 강력한 종용이 있었다. 외솔은 이를 단호히 물리치고, 그 형편없는 부산 시내의 시설을 총동원하여 교과서를 제작케 했던 것이다.”
교육부에서 교육과정, 교과서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의 모임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에서는 2011년 2월, 언제까지나 외솔을 기리고 본받자는 뜻으로 ‘자랑스런 편수인상’을 제정하고 그의 자부와 손자를 초빙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은 기념패를 드렸다.
“자랑스런 편수인상//제1호 고 외솔 최현배 선생님//나라를 사랑하고 한글만 쓰기를 주장하신, 겨레의 스승 고 최현배 선생님께서는 1946년 문교부 초대 편수국장을 맡으시어 각급학교 교수요목의 제정과 교과용도서의 편찬·발행 제도의 법적 체제를 마련하셨으며, 특히 광복 후에 우리말 우리글 도로찾기,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등 국어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1951년 두 번째로 문교부 편수국장을 맡으시면서 6·25 전쟁 중 전시 교육과정의 운영과 교과서의 적기 생산 및 공급 등에 헌신하셨고 제1차 교육과정 제정의 기반이 되는 교육과정의 연구 개발 및 교과서 제도 개선 등 초유의 큰 업적을 쌓아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기여하셨으며, 특히 편수는 우리 교육의 기초이자 기본이라는 신조를 남겨 주심으로써 편수인의 긍지와 명예를 드높이셨습니다. 이에 전 회원의 뜻을 모아 '자랑스런 편수인상'을 드립니다.”
교과서에 관한 일에도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일부 교과목에서 아직도 국정·검정 교과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나 인정제를 원활히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과 다르거나 뒤진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 국가·사회적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잘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일반적으로는 하루빨리 다양성·자율성을 중시하는 길을 찾아나가더라도 가령 국어·사회·국사·도덕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고 치밀한 규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다만, 그렇지 않은 수많은 교과목에도 그 규정·제도를 일률적·획일적으로 적용하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교과별로는 국정제·검정제를 적용하거나 인정제·자유발행제를 적용하거나 교육부 담당자는 있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전문가들이 없으니까 이런 말을 하면 그런가 싶고, 저런 말을 들으면 또 그런가 싶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느슨할 것은 느슨하고 굳을 것은 굳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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