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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아, 독도!

일본식 독도용어를 쓴 한국사 교과서

by 답설재 2013. 10. 15.

 

 

 

 

 

일본식 독도용어를 쓴 한국사 교과서

 

 

 

 

 

  내년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울 한국사 교과서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급기야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느 교과서는 친일 성향이라는 논란, 여러 책이 친북 성향이라는 논란 등 이념 문제가 주를 이루고, 단순 오류도 많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독도에 관한 내용에서조차 '일본식(日本式)' 용어가 발견되었다니 일반 국민들이 듣기에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독도에 관해서는 동북아역사재단의 김영수 연구위원이 조사분석한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1

  지난 8월, 합격본으로 발표된 8종의 교과서에는 독도에 관한 기술이 기존 교과서에 비해 2배 정도로 늘어났지만, 그 내용 중에는 예전 자료인 것도 있을 뿐만 아니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측의 주장이 담긴 용어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공도(空島) 정책'이란 용어에는 조선 정부가 정책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비워 섬을 방치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담겨 있으며, 일본에서는 이에 따라 1905년에 시마네현(島根縣)이 고시를 통해 그들의 관할에 두었다고 우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에서 섬 수색과 토벌을 통해 독도를 관할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 않느냐는 우리의 '쇄환(刷還) 정책'에 대응하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이 담긴 용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영토 분쟁 지역'이나 '독도 문제'라고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일본 교과서들이 대대적으로 내세우는 용어이며,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규정해서 국제법을 통해 독도를 빼앗아가려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생각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거리'로 여길 이유조차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 교과서들이 왜 이 지경이겠습니까?

  역사적 사실이나 대일 관계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학자나 교원들이 집필하고 심사했겠습니까? 아니면, 교과서를 집필한 사람 중에 일본측 주장에 공감하는 학자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럼 교육부나 국사편찬위원회 등 정부 기관이 무언가 손을 놓고 있기 때문입니까?

  단언컨대, 그렇지는 않고, 그럴 리는 없다고 확신해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하면, 교과서를 다루는 시스템이 미흡할 뿐입니다.

 

 

 

 

 

 

  우선, 우리 정부에는 전체 교과서를 나누어 맡아 밤낮으로 살펴보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공무원이 없습니다.

  교과서 정책, 행정을 맡은 공무원만 몇 명 있어서 그 수많은 교과서 속에 담긴 요소요소에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그들이 '동분서주'하게 되므로 그들의 업무 부담이 가혹할 정도로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잘못 되었다" 하면 이쪽으로, "저기에 문제가 있다" 하면 저쪽으로 뛰어가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찾는 '해결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그들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문제가 드러난 교과서를 차근차근 읽어볼 시간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편수국'이라는 부서에 편수관(일본으로 말하면 교과서조사관)들이 있어서 국정 교과서든 검인정 교과서든 각자가 맡은 교과서를 살펴보고 잘못된 점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 편수관들이 있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편수관들 중에는 몇몇 신명을 다 바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좋은 자리로 영전하거나 승진하는 데만 열중한, 교과서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어서 그들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니까 아예 그 조직조차 없애버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꼴도 보기 싫으면 누군가 없애버릴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편수국을 없앤 이유를 짐작할 길이 없습니다.

 

  그 편수관들 중에는 특별히 승진시켜 주지 않더라도 전문성만 인정해 주면 평생 그 일만 해도 좋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보면 "교과서를 분석하는 정부 조직도 없이 참 재주도 좋다"고 하거나 "어떻게 그처럼 어설프게 하는지 의문"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문부과학성에 50명의 '교과서조사관'을 두고 전 교과목의 교과서를 배당해서 언제나 그 업무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년 내내 자신이 담당한 교과서를 읽고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번에 나올 교과서에는 '독도'에 대해서든 다른 무엇에 대해서든 어떤 내용이 어떻게 들어가게 될지 확연하게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이 중요하다면 행정력도 그 정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런 일을 하는 공무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어떤 교과서가 나올까?' 무슨 실험 결과를 바라보듯 해서 될 일입니까? 그렇게 해서 용의주도한 일본측의 주장에 멋지게 대응할 방법이 나오겠습니까?

  집필자들이 몇 달 만에, 무슨 재주로, 오류가 전혀 없는 원고를 써내고, 검정심사위원 몇 명이 무슨 수로 그 수많은 교과서의 오류를 다 잡아낼 수 있겠습니까?

  어느 집필자가 일부러 틀리는 내용을 넣고 싶고, 어느 심사위원이 틀린 걸 알면서도 건성으로 넘기고 말겠습니까?

 

 

 

 

 

 

  게다가 교과서란 그 내용에 오류만 없으면 좋은 교과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 하는 말로 학생들 '눈높이'에 맞아야 하고, 그 교과서를 읽고 가르치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재미를 느끼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과서는 재미가 없어도 어쩔 수 없다"는 얼빠지고 한심한 사람도 있지만, 재미있어야 하고, 유익해야 하고, 가독성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부피에 편집, 제본도 잘 되어야 하는 등 책이라는 매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교과서가 이 세상 그 어느 책보다 더 까다롭고 수준 높아야 할 것은 물어보나마나입니다.

  어쩌면 그런 다음에 혹 오류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하필이면 '독도'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발표는 이념 논쟁의 한 갈래로 취급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지금 이 논쟁이 아무리 중요한 논쟁이라 하더라도, 꼭 겪어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 바로 이런 논쟁이라 하더라도, 그 논쟁 때문에 이 나라가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에도 교과서조사관이나 편수관 구실을 하는 조직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꼭 일본과 같은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만약 옛 편수국이 한 일이 싫거나 옳지 못한 것이었다면 다른 형태의 조직으로라도……

 

 

 

 

 

 

  1. 문화일보, 2013.10.11. 2면, 「일본식 '獨島용어' 그대로 갖다 쓴 한국 교과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