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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It's a boy!

by 답설재 2013. 7. 30.

영국 왕실의 윌리엄(31) 왕세손의 부인 캐서린(31) 세손빈이 지난 7월 22일, 아들을 낳았다는 기사는, 한껏 입을 벌려 그 사실을 알리는 사진 때문에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태어난 '로열 베이비'는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된다거나 삼촌인 해리 왕자는 4위로 한 단계 내려갔다거나 '로열 베이비' 탄생으로 영국 왕실은 4대에 걸친 세습 구도를 확립하게 됐다거나…… 그따위 일들이 이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제 눈길을 끌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 사진입니다(1.  조선일보, 2013.7.24, A2면 ['It's a boy!'...미래의 王 탄생에 열광하는 영국])

 

 

 

 

 

 

 

‘아따, 그 사람 참……’

사진을 본 소감이었습니다.

기사를 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이 사람은 왕실 포고관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야단스런 복장으로, 그렇게 야단스런 제스처로, "It's a boy!"를 외친 그가 ’가짜‘라고?

 

이 글을 쓰려고 그때 그 기사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이 부분입니다.

 

왕실 포고관은 이날 오후 캐서린 빈이 출산한 런던 세인트메리병원 현관 계단에서 종을 세 번 울리고 왕자 탄생을 알렸다.

"들으시오. 미래의 국왕을 환영합니다. 케임브리지 공작(윌리엄 왕세손) 부부 전하의 장자(長子), 왕위 계승 서열 3위, 언젠가 우리를 통치하실 분. 신이시여, 여왕을 구하소서." 병원 앞에서 출산을 기다리던 시민과 관광객 수천 명은 "아들이다(It's a boy)!"를 외치며 환호했다. 저녁에는 왕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포가 런던탑에서 62발, 그린파크에서 41발 등 모두 103발이 발포됐다.

 

'저렇게 외친 그가 가짜라고? 왕실 포고관이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이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도 될 만한 일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고, 세상에는 참 낭만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제 맏딸이 가서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캠브릿지에서 3년 2개월만에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우리나라 외교통상부 계약제 사무관 시험에서, 1등은 그 외교통상부 6급이 차지했으므로, 그 아이는 '아무 쓸모도 없는 2등'을 하고는 다시 공부를 하던 그 나라로 돌아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별로 건강하지 못해서 그곳을 가볼 용기도 없고, 그저 '어떤 나라일까?' 생각만 하며 지냅니다. 전통이 깊고,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나라입니까? 우리나라보다 안개가 많은 나라입니까? 신사도가 발달한 나라입니까? 교과서에서 읽고 배우던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입니까?

아무리 좋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인종 차별 같은 게 없을 리 없습니다.

 

그 영국인들이 매사에 저렇게 낭만적이면 좋겠습니다. 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 같은 욕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어차피 미천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낳고 지켜보기만한 가슴아픈 애비로서의, 태어나서 여기까지 걸어올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으로서의 욕심이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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