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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황선미 글/노인경 그림 『멍청한 편지가!』

by 답설재 2012. 12. 27.

황선미 글/노인경 그림 『멍청한 편지가!』

시공주니어, 2012

 

 

 

 

 

 

평범한 4학년짜리 남자아이가 첫사랑을 앓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엉뚱하게 배달된 편지 때문입니다.

덩치가 커질 때를 대비해서 헐렁한 옷을 입기 때문에 '헐랭이'라고 불리는, 잘 하는 거라면 운동기구에 박쥐처럼 오래 매달려 있을 수 있는 재주밖에 없는 이 아이의 진짜 이름은 이동주입니다.

 

엉뚱하게 배달된, '멍청한 편지'는, 키가 크고 이쁜 영서가 반장 호진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게 동주의 마음을 뒤흔든 것입니다.

 

 

 

 

 

 

동주의 '절친'은 어머니가 베란다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다가 쌈박질이나 하지 말고 학교나 가라고 다그치는 아이 마재영뿐입니다. 그 친구는 뚱보여서 재영이가 '마뚱'이라고 부릅니다. '마뚱'은 운동을 싫어해서 어머니가 축구클럽에 들어가라고 하자, 그딴 건 박지성이나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여자를 싫어해서 결혼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자고 맹세했고, 엄마는 엄마지 여자가 아니니까 예외로 여기자는 녀석들입니다.

 

그런 재영이가 우연히 자신의 가방에 들어 있는 남의 편지를 보고 그만 마음이 뒤죽박죽이 된 것입니다. 우선 영서가 자꾸 눈에 띄게 됩니다.

 

 

"아우, 또 쟤야……"

영서가 잡화점 유리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내가 아주 뒤죽박죽이 된 기분이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쟤가 어디서나 불쑥불쑥 나타나니 신경 쓰여 죽겠다.(56)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오른손을 주먹 쥐어 가슴에 대 보았다. 영서가 그랬던 것처럼.

"무슨 뜻이지?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이렇게 이상한 느낌은 처음이다. 정말 싫다. 짜증 난다. 마음이라는 것도 모양이 있을까. 그건 물컹할까. 그런가 보다. 내 속에서 꾸역꾸역 물컹한 게 생겨나 목구멍까지 올라오고, 삼키고 또 삼켜도 목에 달라붙어 나를 답답하게 했다. 열이 나는 것 같고, 울고 싶고.

벽에 공 던지기를 했다. 던졌다 받고, 던졌다 받고. 세 번째 하기도 전에 안방에서 엄마가 쫓아왔다. 눈이 반쯤 감긴 채였다.

"아들, 뭔 일 있냐?"(100)

 

 

 

  

 

 

그 영서가 '잠자는 코알라' 대신 '왕눈이 베개'를 들고 있는 동주에게 다가와 키스를 해주고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우리들의 첫사랑은 공식(公式)대로 모두 그렇게 떠난 것처럼……

동주는 지금 당연히 사춘기 소년이 되어 있고, 선교 활동을 하는 목사 아빠를 따라 멀고 먼 아프리카 어디에 가 있을 영서를 언제까지라도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신문의 서평을 보고 이 책을 골랐습니다. 「두려운 사춘기」라는 인터뷰 기사를 쓴 녀석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