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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예습복습을 잘하자

by 답설재 2012. 11. 25.

"예습복습을 잘 하자."

언젠가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닙니까?

"인사를 잘 하자."

"청소를 잘 하자."

"책을 많이 읽자."

심지어 "일기를 잘 쓰자." "사이좋게 지내자." "웃어른을 존경하자." 하다못해 "쥐를 잡자!" …………

 

옛날에는 주 단위로 이런 걸 생활목표로 정해서 아이들에게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만 되면 주번이나 어린이회장이 이걸 발표했고,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양 어김없이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주에는 모두들 예습복습에 온힘을 기울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생활목표를 정해 놓았다고 그 주에는 예습복습을 잘 하고, 인사를 잘 하고, 청소를 잘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쥐를 많이 잡았다면 정말 한심한 범생이였을 것입니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실천할 생활목표를 학교에서 정해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까?

어느 학교 교장으로 갔더니, 그날 오후에 마침 직원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는 무슨 회의, 지시·전달을 위한 모임입니다. 교무부장교사가 사회를 했고, 먼저 어느 교사가 주생활목표를 발표했습니다.

"다음 주 생활목표는 '인사를 잘 하자'입니다."

 

내 참 기가 막혀서…… 한번 물어봤습니다. "그 목표는 누가 지킬 목표입니까?"

멈칫거리며 누군가 대답했습니다. "그야 뭐, 아이들이 지킬 목표입니다."

"그럼, 그걸 누가 정했습니까?"

"…………"

"아니, 누가 정한 목표입니까?"

"연초에 다 정해서 학교교육계획에 넣어놓은 것입니다."

"집어치우십시오. ………… 이거야 원, ………… 일제시대도 아니고…… 그런 걸 꼭 정해서 발표하고 그런 식으로 하고 싶으면 선생님들이 실천할 목표나 정해서 발표하고 그러십시오. 아이들이 지킬 것은 아이들더러 정하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점잖게 했어야 하는데, 스스로들 깨닫게 해야 하는데, 분통이 터져서, 기가 막혀서, 좀 참고 있으려 하면 한숨이 나와서, 이렇게 해서 언제 변하겠나 아득해서, 그렇게 "집어치우라!"고 해버린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저를 존경했겠습니까?

 

아이들더러 정하게 했더니 교육청에서 모금(募金)을 승인한, 무슨 빵처럼 생긴 저금통이 배부됐는데, 전교어린이회에서 그만 그걸 부결(否決)시켰습니다.

어린이회 담당 선생님이 교장실에 들어와서 그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거 봐! 아이들더러 정하게 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잖아! 잘난 척하더니 꼴 좋다." 그 선생님은 저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야지요. 아이들이 모금할 걸 아이들이 부결시켰으면 그 결정대로 하면 그만이지요. 그런 교육은 다음에 얼마든지 또 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우리가 아이들에게 '우리가 할 일은 이렇게 책임감 있게 우리가 정해서 실천해야 하는 거구나', 그것을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습니다. 무슨 얘기만 꺼내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그런 거니까 좀 양해하여 주십시오.

요즘은 그런 교육, 그 따위 짓은 하지 않습니까? 그 참 희한한 일이네요. 저로서는, 제 경험으로는 그 일이 있었던 때가 오래 전은 아닙니다. 제가 교장을 그만둔 것이 이제 겨우 3년 전이니까요.

하필이면 제가 정년퇴임을 하니까 천지개벽하듯 학교가 왕창 변했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현직에 있었던 것은, 오래 전 까마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교육감이 바뀌면, 교장이 바뀌면, 연구학교 운영이 끝나면, 교육청에서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 당장 옛날로 돌아가버릴 것도 허다합니다. 연구학교를 하지 않아도, 교사들에게 점수를 주지 않아도, 예산이 별도로 배정되지 않아도, 교장이나 교육감이 바뀌어도, 체험학습을 하고, 독서지도를 하고, 환경교육을 하고, 무슨 실행목표를 정해서 충실히 실천하는 그런 교육을 해야 진정한 교육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제가 있을 땐 각 학년마다 1년에 여섯 번 이상 하던 현장체험학습을, 제가 퇴임한 이튿날 당장 1년에 한 번, 아니면 기껏해야 두 번으로 되돌리는 걸 본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도 어느 학교에서나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슨 말을 믿어야 하겠습니까?

 

 

 

 

정말로 이젠 "예습복습을 잘 하자"는 생활목표 얘기를 하겠습니다.

어느 당 대선후보가 "선행학습 금지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게 특별법으로 막을 일인가 싶었습니다. 예습을 하는 거니까, 그 예습을 법으로 막는다면 그럼 예습을 하면 큰일난다는 뜻이 아닙니까?

 

사실은, 그렇다고 해서, 예습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해서 그걸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선행학습이 좋은 게 분명하다면, 그게 좋은 거라고 교육학적으로 판명이 나서 온 나라가 이제부터 선행학습에 몰두하기로 했다면 이 나라 교육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교육이 단 하룬들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선행학습의 폐해가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아니, 그 폐해를 몇 가지로 따질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학교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특별법이라도 정해서 막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지금까지는 왜 막지 않았습니까?

학부모들이 하는 일, 학원에서 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막을 도리가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선생님들 중에는 "학원에서 그것도 배우지 않았니?" 하고 묻는 경우가 있다는 말조차 떠돌았습니다. 선생님들만 방치한 것도 아닙니다. 선행학습을 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의 학습에 흥미를 잃기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 정상적인 교수학습이 이루어질 수 없고, 결국은 그 아이의 학습습관을 망쳐버리게 된다고 강조해도, 학부모들은 끄덕도 않았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렇지만 내 아이는 내가 알아서 할게. 우리 아이는 남의 아이보다 하나라도 먼저 배워서 앞서가야 해. 그러니 제발 간섭하지 마! 내 돈으로 내가 가르치겠다는 걸 누가 막아!"

 

학부모들은 그럼 왜 학원에 보내서 선행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까?

어떤 학교는 선행학습으로라도 실력을 쌓아오지 않으면 '배치고사'라는 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나타내게 되고, 그런 학생은 하급반에 배치하기 때문에 반편성에서 이미 낙오자가 되는 경우조차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수반, 영재반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이유가 되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 5, 6학년 때 이미 중학교 수학을 배운다는데, 내 새끼를 그냥두고는 배길 수가 없기도 합니다. 불안해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5학년이 치르는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7명이 받았는데, 최우수상은 아니고, 우수상도 아니고, 겨우 장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7명 중 이 아이 딱 한 명만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경우였습니다. 나머지 6명은 모두 학원에서 영재반 학습인가 뭔가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수학 교과서가 두 권인 것이 불만입니다. 도대체 문제를 풀 줄 알면 그만이지 뭐 하려고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많이 풀어봐야 한다고 하면, 그럼 계산기로 풀면 실수를 하지 않을 것 아니냐? …………

 

그러다가 교육청 대회에 나갈 두 명을 뽑을 땐 이 아이가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교육청 대회는 언제 하는가? 이 아이가 그 대회에서 뽑혔는가?

그 따위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하면 하는 거고, 뽑히면 뽑히는 거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까짓거 '선행학습'이 영향을 미치는 대회라면, 거기서 뽑히면 꼬박꼬박 어디 가서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면, 부디 뽑히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라도 좀 놀고, 보고 싶은 책도 보고, 아이들이 나오지도 않는 아파트 마당에서라도 좀 더 놀아보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누구냐고 묻고 대답하는 걸 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육은 그런 것 하나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자식 있는 사람은 큰소리 하지 않도록 하렴."

 

 

 

 

선행학습 금지 특별법 제정!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건 꼭 좀 실현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실은 무시무시한 특별법 같은 걸로 하지 말고, 옛날처럼 생활목표를 정하고, 이번에는 그걸 꼭 좀 지키는 그런 방법으로 하면 더 좋긴 하겠습니다. 세상이 좀 부드러워지면 더 좋겠다는 뜻입니다.

 

온 국민이 지킬 생활목표! "질서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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