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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광화문의 독서상

by 답설재 2012. 10. 18.

 

 

 

 

세종문화회관 뒷뜰 의자에 앉아 있는 독서상입니다.

이 독서상의 모습과 닮은 모습의 저 젊은이를 풍자하기 위한 사진은 결코 아닙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저 젊은이는 지금 핸드폰으로 중요한 정보를 검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공부, 뭐라고 하면 됩니까?

교과서를 외우는 것! 그건 아닐 것입니다. 교과서야 경전(經典)도 아니지 않습니까?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피히테는 18세기의 인물입니다.

 

"암기는 어떤 다른 정신적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 요구된다면 심성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심성의 고뇌가 된다. 학생들이 이러한 고뇌를 마지못해서 받아들였으리라는 사실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전혀 관계도 없고 거의 흥미도 없는 사물과 그 특성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고뇌에 대한 대가로서는 결코 유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의 학습에 대한 혐오는 이러한 인식이 장차는 필요하리라는 위안, 이러한 인식을 매개로 해서만 빵과 명예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위안에 의해서, 그뿐 아니라 눈앞의 상벌에 의해서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줄기차게 암기교육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우선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외울 건 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럴듯합니다. 그렇지만 외우지 않아도 좋을 것도 외우고, 쓸데없는 것까지 외우고, 외우는 활동(심성의 고뇌가 되는 활동) 외의 학습은 공부다운 공부로 취급해 주지도 않는 게 문제지요.

그래서 나는 외우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싫고 역겹고 지겹고 원망스럽고 (다른 적절한 용어가 더 없을까요?) 어쨌든 "매우!" 혐오스럽습니다.

 

 

 

공부란 '읽는 것'이 아닐까요?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세상을 읽는 일, 그게 공부가 아닐까요? 잘 생각해보면 교육에 관한 한 체육이나 음악, 미술도, 과학도 수학도 다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공부 중에서도 좋은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역사적인 인물의 대부분이 독서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은 것만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 조상들이 흔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을 관리로 선발한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치관이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된 것인지, 최근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학기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학생이 16%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하면 학원 가고 스마트폰 하느라고 그렇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해서 교육이 되겠습니까? 이걸 '교육'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합니다. 있긴 뭐가 있습니까? 다 하기 좋은 말일 뿐입니다.

나의 경우에는 평생 재미가 있겠다 싶은 책 위주로 읽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당장 대학입시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가 싫었고, 조심스러웠고, 다른이들이 그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지금 아이들 망치려고 저러나!'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그게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나라 같으면 중고등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했을 때,

"그러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습니까?"

하고 되물으면, 이렇게 덧붙여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 교과서나 참고서, 문제집을 많이 읽어봐라. 그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대학에 가는 것과는 관계가 없지. 아니 대학에 가려면 독서는 하지 않는 게 대체로 유리하지.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사례가 ○○○이라는 사람의 행적이지. 그는 분명히 둔재이긴 하지만 제딴은 독서를 많이 하다가 대학입시에 실패했고, 그러다가 집에서 쫓겨나는 일까지 벌어졌단다. 그 후의 생활은 나름대로 파란만장이었지."

 

 

 

그럼에도 저는 책을 읽어야 한다, 아니 책을 읽으면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읽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세상을 잘 읽고 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지위도 높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책을 통해서 세상을 읽을 수 있어야 힘없는 사람도 사람으로 보이고, 가난한 사람도 사람으로 보이고, 불우한 사람도 사람으로 보이고, 나보다 남을 앞세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함께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가령 선생님이라면 어떤 아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없는 아이, 불륜에 의해 태어난 아이, 우리와 관계가 좋지 않은 나라에서 온 아이……도 '내 새끼'처럼 사랑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좋겠는데……

 

 

 

프랑스 같은 나라는 좋은 책 100권을 읽어야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답니다. 그런 나라가 한둘이 아니지만 미국의 학교들은 좋은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는 공부를 다반사로 한답니다.

우리도 교과서와 EBS 교재, 문제집, 참고서 같은 걸 다 합하면 100권은 될까요? 그걸 가지고 '경쟁'을 합니다.

 

"우리도 따지면 100권!"

이건 그냥 기가 막혀서 한 이야기입니다. 까짓거 마음에 두진 마십시오.

저 독서상의 처녀가 뭘 저렇게 읽고 있는가 싶어서 등 뒤로 가서 살펴봤습니다.

시집입니다. 펼쳐진 페이지의 시는 윤동주의 「서시」입니다.

 

 

 

 

 

* 피히테․황문수 역,『독일 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범우사, 1994, 2판5쇄),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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