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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세계 주요국의 동향에 비추어본 오스트레일리아의 교과서 제도

by 답설재 2012. 6. 22.

  오스트레일리아의 교과서 제도를 알아보는 가는 '행복한' 연수단에서 사전에 그 개요를 알아보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다음과 같은 원고를 써 보냈습니다. 주제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매번 달리할 수는 없으므로 종전의 원고에서 해당되는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다만 이 원고의 핵심은 뒷부분의 'Ⅳ. 교과서 자율채택제의 의미 해석'에 두었습니다.

 

 

 

세계 주요국의 동향에 비추어본

오스트레일리아의 교과서 제도

 

 

 

Ⅰ. 교과서에 대한 인식

 

 

  1. 교과서의 의미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학생용의 서책․음반․영상 및 전자저작물 등’이 교육과학기술부의 ‘교과서’에 대한 정의이다. 이러한 정의는 교육 자료에 대한 일반적 인식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가령 이전에는 ‘학교에서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학생용의 주된 교재와 그 교재를 보완하는 음반․영상․전자저작물 등’으로 정의했었다. 또 교과서를 포함한 ‘교과용도서’의 명칭과 의미에 대하여 ‘각 학교 및 이에 준하는 각 학교의 학생용 도서와 고등학교, 사범학교, 고등기술학교를 제외한 각 학교 및 이에 준하는 각 학교의 교수용의 괘도, 지구의류 등’(1950.4.29, 대통령령 제336호), ‘각 학교의 학생용 도서와 교수용의 괘도, 지구의류 등’(1959.2.23, 대통령령 제1453호), ‘각 학교의 학생용 도서’(1963.7.3, 각령 제1371호), ‘교과서, 지도서 및 인정도서’(1977.8.22, 대통령령 제8660호)로 규정한 때도 있었으므로, 이러한 변화는 교과서나 교과용도서의 의미가 관련 법령에 의하여 그 적절성이 추구되어온 것을 나타낸다.

 

  위와 같은 ‘교과서’의 법률적 정의에 비해 “학생들이 배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교과 영역의 학습내용을 책자로 엮은 것” 혹은 “국가의 교육이념이나 목표를 구현하는 수단이며 도구인 동시에 학생들의 지적 성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기본적인 자료”라는 정의 등 교과서의 가치와 기능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양한 정의가 이루어져왔다. 실제로 1980년대의 문교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소개하여 교과서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 교과서는 어느 한 사회나 국가의 교육이념이나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의 기본정신에 알맞게 편집된 학습 자료로서 학생용 도서이다.  ◦ 교과서는 학교교육의 장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교재 중에서 가장 계통적으로 만들어진 중요한 교재의 하나이다.  ◦ 교과서는 교육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포괄적으로, 균형 있게 담고 있는 공식화된 교수․학습 자료이다.  ◦ 교과서는 교과가 지니는 지식, 경험의 세계를 쉽게 그리고 명확하고 간결하게 편집해서 학교에서 학생들이 학습의 기본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한 교재이다.  ◦ 교과서는 교육과정의 목표 및 내용 등 학생들의 발달 수준에 알맞게 풀이하고 편집한 학교 학습의 도서이다. ◦  교과서는 학생들이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배워야 할 학습내용으로 구성된 학생용 도서이다.

 

  교과서에 대한 이와 같은 다양한 정의는, 교과서는 교육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비중을 지니고 다양한 양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영향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2. 교과서의 현실적 비중

 

  우리나라만큼 교과서 혹은 교과서의 내용을 중시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세계적 수준이듯 직접적으로 교과서를 접하지 않는 일반국민들까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대해서만큼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국가․사회적 배경 아래에서는 교육학자들이 학습지도의 기본원리에 따라 “교과서는 성전(聖典)이 아니고 교육과정의 목표와 내용을 구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학습 자료의 하나일 뿐”이라는 개념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 교육적 의도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무모한 시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는 그야말로 ‘성전’일 수밖에 없으며 교과서의 내용은 교육과정의 목표를 불문하고 ‘금과옥조(金科玉條)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교과서가 차지하는, 이처럼 거의 절대적인 비중에 대해 교육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다. 다만, 그러한 비판과 새로운 관점의 연구들이 교과서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뚜렷한 사례가 한국교육개발원 사회과연구실의 보고(1977)로서, 이 연구에서는 교과서를 ‘학생들이 지니고 스스로 탐구해나가기 위한 ① 교재내용의 일종, ② 자료의 일종, ③ 학습방법의 지침, ④ 일반 수업 절차의 지침 등’으로 간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자체의 빈약성, 학급 인원의 과다, 빈약한 교구 시설, 자료의 부족, 교사의 지도능력 문제 등으로 교과서를 여전히 구태의연하게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보고서의 머리말은 변화해야 할 교과서관(敎科書觀)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다양한 학습자료를 넉넉히 쓸 수 없는 상황 하에서 교과서는 학생들의 지적 성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기본적인 자료일 뿐 아니라 국가의 교육이념이나 목표를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교과서는 두 가지의 기능을 가진다. 첫째는 꼭 필요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요, 둘째는 지적 발달을 자극하고 촉구해주는 일이다.…….

  교과서는 여러 가지 학습자료 중의 중심적인 자료의 하나로 그 위치가 달라져가고 있다. 적은 양의 지식을 배워 가지고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발견, 창조해낼 수 있게 하는 효능을 가진 그러한 ‘적은 양의 지식’을 수록해야 좋은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3. 교과서관의 변화

 

  교과서관(敎科書觀)의 변화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흔히 ‘닫힌 교과서관’ ‘열린 교과서관’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곽병선 등은 ‘닫힌 교과서관’과 ‘열린 교과서관’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설적인 교육현상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표 1> 교과서관의 재정립

에서(닫힌 교과서관)

으로(열린 교과서관)

주어지는 교과서

선택되는 자료

틀에 박힌 인간

창의적인 인간

권위 있는 내용을 담은 책

교육과정 자료

획일성

다양성

규제

자율

 

 

  곽병선 등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 교과서 정책은 시대에 따라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국가가 주관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하여 과목당 획일적인 교과서 발행을 근간으로 한 국정제와 제한된 종수 범위 내에서 심사에 통과된 심의본에 한하여 발행을 허용하는 검인정제였으며, 이것은 교과서 발행에 관한 한 국가 통제가 엄연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닫힌 교과서관’의 시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과서관의 변화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이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 교육과정이 개정되고 새 교과서를 편찬할 때 발표되었던 ‘제○차 교육과정에서 기대하는 교과서’라는 <표2>와 같은 자료가 오랫동안 제시된 것을 보면 그 취지를 반영하고자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표 2> 제7차 교육과정에서 기대하는 교과서

구분

전통적인 교과서

바람직한 교과서

교과서관

금과옥조형 교과서∙교과서중심학교교육에적합한교과서

∙지적 영역 중심의 교과서

∙ 교육과정 구현을 위한 다양한 자료 중의 하나(주된 자료)인 교과서 지향

∙교육과정 중심 학교교육에 적합한 교과서

∙기능․태도영역에유의하고창의력․사고력 배양 강조

진술형태

지식 요약형, 개념 압축형, 강의 요강형 교과서

∙다양한 사실․사례 제시형, 학습과정(절차와 방법) 중시형 교과서

단원전개

∙모든 교과서에 하나의 전개 체제 적용

∙단원․주제의 성격에 따른 다양한 전개 체제 적용

내용선정

∙지식 중심, 교사 중심의 내용 선정

∙교과서 내용의 실생활과의 유리

∙핵심개념과 관련된 실생활 경험, 사례 중심, 학생 중심 내용의 선정

∙교과서 내용의 실용성, 유용성 추구

내용조직

∙지식 체계별 단선형 조직

∙문장과 삽화의 단조로운 구성

관련 지식과 실생활 경험을 통합하여 조직

∙다양한 편집 체제의 도입

연구개발

과 정

∙기초연구가 소홀히 된 교과서

∙기초연구를 보다 중시한 교과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이 자료가 국가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오랫동안 거의 그대로 제시되어온 것은 우리나라의 교과서관이 교육과정의 개정에 의해서도 기대한 만큼 변화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지식 전달 자료로서의 교과서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여 교과서의 질이 교육의 질을 가늠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것은, 최근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가 교육과정이 평가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교과서가 거의 절대적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Ⅱ. 교과서 제도 비교

 

 

  1.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상의 우리나라 교과서 제도

 

  우리나라 교과서의 법률상의 위상과 기능,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교육의 다른 어떤 요소보다 막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 (대통령령) 중에서 ‘교과용도서의 선정’에 관한 다음과 같은 규정(제3조 제1항)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학교의 장은 국정도서가 있을 때에는 이를 사용하여야 하고, 국정도서가 없을 때에는 검정도서를 선정․사용하여야 한다. 다만, 국정도서․검정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제16조(인정도서의 인정)의 규정에 의하여 인정받은 인정도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규정이 내포하는 의미와 같이 우리나라의 교과서는 국정도서와 검정도서, 인정도서로 나누어지며, 학교(교사)에서는 그러한 교과서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영 제2조는 또 우리나라의 학교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서의 개념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즉 교과서 및 지도서를 ‘교과용도서’라 하고, ‘교과서’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학생용의 서책․음반․영상 및 전자저작물 등’을, ‘지도서’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교사용의 서책․음반․영상 및 전자저작물 등’을 말한다. 또 ‘국정도서’란 ‘교육과학기술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도서’, ‘검정도서’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검정을 받은 교과용도서’, ‘인정도서’란 ‘국정도서․검정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하기 위하여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인정을 받은 교과용도서’를 말한다.

 

  국·검·인정제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정제란 국가기관이 직접 교과서를 편찬하거나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연구개발형’이라 하여 대학이나 연구소, 학회 등 특정기관에 위탁하여 편찬함으로써 국가가 교과서 저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정한 교과목(초등학교에 해당) 혹은 고등학교 전문교과 과목이나 특수학교 교과서처럼 시장의 수요가 적어 경쟁력이 없는 교과서를 국정제로 편찬하고 있다.

  검정제는 국가가 교과서 저작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방식으로, 민간이 저작한 교과서의 적합성 여부를 국가기관이 검정한 후, 부적합할 경우 탈락시키거나 저작자로 하여금 수정․보완하게 하는 제도이다.

  인정제는 민간이 저작한 도서를 국가기관이 교과용도서로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로, 현재 우리나라는 방송통신고등학교 등 극히 일부의 도서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관여하여 심사하고 대부분의 도서에 대해서는 인정권을 시‧도 교육감에게 위임하고 있으며, 한 시‧도에서 인정받은 도서는 다른 시‧도의 학교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정제로 편찬되어오던 교과서의 대부분을 최근 검․인정제로 전환하고 있다. 국정제․검정제․인정제 등 우리나라의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와 같은 교과서 편찬 제도 외에 ‘자유발행제’도 있다. 자유발행제는 국가 또는 지방정부에서 정한 교육과정 기준에 따라 집필되기는 하지만 국가가 교과용도서의 저작이나 사용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 제도이다.

 

 

  2. 교과서 편찬공급 제도 국제비교 

  가. 교과서 편찬 제도

 

  우리나라의 교과서 편찬 제도가 국정제와 검․인정제를 병행하고 있다는 것은, 교과서의 편찬·채택·공급에 관한 전체적 성격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로는 그 다양성을 장점으로 인정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러한 다양성이 꼭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교과서 편찬 제도는, 교과서 편찬 과정에 대한 국가의 관여 정도나 관여 방식에 따라 그 성격이 분류된다. 자유발행제의 경우에는 민간 출판사나 저작자가 교과서를 발행하면 학교(교사)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교과서를 인정하는 기관이 국가나 주, 교육구가 아니고 바로 학교(교사)라고 할 수 있다. 또 인정의 근거도 국가나 주의 교육과정 기준이나 별도로 설정하는 교과서 인정기준이 아니고 학교(교사)에서 학문적, 교육적 필요에 따라 그 교과서를 채택하게 된다. 국정제, 검정제, 인정제와 자유발행제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표 3> 교과서 발행제도 비교

구 분

국정제(國定,

government-issued textbook system)

검정제(檢定,

textbook

authorization system)

인정제(認定,

textbook adoption system)

자유발행제

발행자

국가/

     

출 판 사

 

저 작 자

 

교과서

저작의

근거

국가/주 교육과정

별도의 심사기준

 

 

학문적․교육적 필요

     

교과서

발행 절차

저작→심의→발행

     

저작→검정→발행

 

   

저작→발행→인정

   

 

저작→발행→사용

     

교과서

인정자

국가/주

 

별도 기관

 

   

교육구

   

 

학 교

   

교 사

     

교과서

채택자

국가/주

     

교육구

       

학 교

 

교 사

   

교과서

채택의

근 거

없음(의무적)

     

교과서 목록

 

채택자의 자유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 편찬 제도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처럼 국정제, 검정제, 인정제를 병행하는 나라도 있지만, 그 나라의 교육제도와 정치적․경제적 상황이나 역사적․문화적 배경 등의 차이에 따라 나라마다 매우 다르다. 극히 드물지만 국정제만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고, 검정제 혹은 인정제, 자유발행제만을 시행하는 나라도 있으며, 검정제와 인정제, 혹은 국정제와 인정제의 병행 등 나라마다 다양한 형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 교과서연구센터(1999)의 「외국의 교과서 제도 및 교과서 사정에 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미국․캐나다 등 유럽과 아메리카 지역 나라들은 초․중등학교의 모든 교과서를 민간 출판사가 발행한다. 그 중에서 독일과 노르웨이는 검정제이고, 프랑스는 검정제도는 없지만 각 지역의 교과서검정위원회가 교과서 목록을 작성하여 각 학교로 하여금 채택하게 하며,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주에서는 교육위원회가 인정교과서 목록을 작성하여 각 학교에 배포한다. 영국, 스웨덴, 프랑스 및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는 자유발행제를 시행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필수교과 교과서는 국정제이지만, 민족적․지역적 특성이 강한 교과의 교과서는 주, 지방, 또는 공화국의 교육담당국이 편찬하고 있으며 연방교육성 인정 교과서도 있다.

 

  아시아에는 우리나라처럼 초․중등의 교과서 제도가 서로 다른 나라가 많다. 중국과 싱가포르는 초․중등 교과서 제도가 같지만 우리나라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초등과 중등의 교과서 제도가 서로 다르다. 태국, 말레이시아는 초등 교과서는 국정제이나 태국의 경우 전기 중등은 국정제이고 후기 중등은 국어, 국사, 도덕만 국정제이며 다른 교과는 검정제이다. 말레이시아의 중등학교는 국어, 역사 등 일부 교과서만 국정제이고 나머지 교과서는 검정제이다. 중국은 국정제이지만 최근 각 지방정부나 민간에서도 교과서를 편찬하여 국가의 검정을 받게 하고 있다. 또 싱가포르는 사회, 공민, 도덕 및 모국어(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만 국정제이고 다른 교과서는 인정제이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초등의 주요 교과(도덕, 국어, 수학, 과학, 사회)만 국정제이고 다른 교과서는 모두 검정제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영국처럼 자유발행제를 시행하여 연방이나 주 정부는 교과서의 발행, 채택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중등은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이 자유발행제이고 초등의 경우 국정교과서도 있고 민간이 발행한 교과서도 있으나 국정교과서의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고 각 학교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참고로 최근에 알려진 여러 나라의 교과서 편찬 제도에 관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표 4> 세계 주요국의 교과서 발행제 현황

             발행제

  국가

국정제

검정제

인정제

자유발행제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노르웨이

     

독일

 

   

영국

     

프랑스

     

핀란드

     

캐나다

   

 

미국

   

○†

○‡

                                                                                  미국 : † 캘리포니아 주 등 18개 주, ‡ 콜로라도 주 등 24개 주

 

  나. 교과서 공급 제도

 

<표 5> 주요국의교과서제도 비교

국가명

초등교과서

중등교과서

발행․검정 등

공 급

발행․검정 등

공 급

발행자

검정

인정

자율

채택

무상

지급

무상

대여

유상

발행자

검정

인정

자율

채택

무상

지급

무상

대여

유상

국가

민간

국가

민간

영 국

 

   

 

         

 

 

독 일

 

     

   

     

 

프랑스

 

 

   

   

   

 

러시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미 국

 

 

 

   

 

 

 

캐나다

 

 

   

   

 

   

 

중 국

       

       

한 국

       

   

   

 

일 본

 

   

   

   

 

태 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① 지방에 따라 지방위원회가 채택한다.

② 전기 중등

③ 후기 중등

④ 주마다 다르다.

⑤ 1980년대 전반까지는 국정제만 있었으나 현재는 각 지방, 개인도 교과서 발행 가능

⑥ 전기 중등 교과서 및 후기 중등의 국어, 국사, 도덕 교과서에 한함.

⑦ 후기 중등 교과서(국어, 국사, 도덕 제외)

⑧ 저소득층의 자녀

⑨ 국어, 이슬람교 교육, 도덕 교육, 국사, 아랍어 교과서

⑩ 사회, 공민․도덕 및 모국어(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교과서

⑪ 사회, 공민․도덕 및 모국어 이외의 교과서

⑫ 사회, 싱가포르사(史), 공민․도덕 및 모국어(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교과서

⑬ 사회, 싱가포르사, 공민․도덕 및 모국어(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이외의 교과서

⑭ 주요 5교과(도덕, 국어, 수학, 과학, 사회)

⑮ 주요 5교과 제외

                                ⑯ 학교에 따라 다름.

                                ⑰초등학교 교과서는 모두 국정제인 제7차 교육과정기에 조사된 결과임. 중등도 국어, 사회, 도덕에 한함.

                                실업계 고등학교 가정․농업․공업․수산․간호 교과서 64종, 특수교육용 21종이 문부과학성 저작임.

                                ⑲일본 교과서연구센터의 자료에는 우리나라의 중등 교과서는 유상 지급이고 일본은 무상 지급인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우리나라와 일본은 중학교 교과서는 무상 지급하고 고등학교는 유상 지급하고 있으므로 필자가 두 나라

                                   중등 교과서 공급 형태를 유상과 무상으로 나타내었음.

 

   일본 교과서연구센터(1999)의 「외국의 교과서 제도 및 교과서 사정에 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는, 의무교육 단계의 교과서는 무상 대여제를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와 노르웨이에서는 후기 중등교육 교과서는 유상이지만 영국, 독일, 스웨덴, 핀란드, 미국, 캐나다는 초․중등 모두 무상 대여제를 실시한다. 러시아는 무상 배포제를 실시했으나 재정난 등으로 유료화하는 경향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교과서 공급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태국은 의무교육 단계에서는 무상 지급 혹은 무상 대여를 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의무교육제도가 없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는 유상으로 공급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초․중등 저소득층의 자녀에게는 무상으로 대여한다.

   뉴질랜드는 모든 학교에서 무상 대여를 실시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학교에 따라 무상 대여하는 경우도 있고 유상 공급하는 경우도 있다.

 

  다. 여러 나라 교과서 정책의 특징

 

  일본의 ‘교과서연구센터’가 조사대상으로 한 17개국의 교과서 제도를 비교한 위의 결과에서 현저한 특징을 찾아보면, 교과서 발행․검정면에서는 초․중등을 막론하고 국가가 교과서를 편찬하거나 검정하기보다 민간 출판사가 발행한 교과서를 국가가 인정하거나 자율채택하게 하는 나라가 더 많다. 이러한 경향은 국가의 발전이 안정된 나라, 앞서가는 나라일수록 더 강하며 특히 인정제보다 학교(교사)에서 교과서를 자율채택하게 하는 ‘자유발행제’가 우세하다. 또한 교과서 공급면에서는 초등의 경우 우리와 같은 무상 지급 형태는 적고 대부분 무상 대여를 하고 있으며, 중등의 경우에도 무상 지급은 거의 없고 대부분 무상 대여 혹은 유상 지급을 하고 있다.

  일본 교과서연구센터의 위와 같은 조사․분석 결과를 개괄해보면,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 정책은 나라마다 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대체로 오랫동안 전통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오스트레일리아의 교과서 제도

 

 

  1.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적 배경 및 학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연방에 속하는 나라로, 1788년 이후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발족하여 독립하였다. 6개의 주와 2개의 특별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나 특별구별로 교육제도가 다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학제는 다음과 같다.

 

 

 

   출처: http://aei.gov.au/AEI/CEP/Australia/EducationSystem/SystemDiagram/default.htm(2011.2.28)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제도 면에서는 영국연방 국가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즉 1988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제정하고 각 주 정부에서는 이에 따라 지침을 정하여 각 학교로 하여금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하게 하는 점 등은 오스트레일리아도 영국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학제는주(state)나 특별구(territory)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국가 교육과정 문서상의 권장 학제는 유치원 및 예비학교(1~2년, 5세 이하)-초등학교(7~8년, 6~14세)-중학교(2년, 15~16세)²-고등학교(2년, 17~18세)³-고등교육(3년~, 19세 이상)으로 되어 있다. 6~16세까지의 교육인 ‘Foundation Year-Year 10’이 의무교육 과정이다.

 

  ◦ 초등학교 Foundation Year-Year 8: Foundation Year-Year 2의 초등 저학년 과정(세상에 대한 자연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과정)과 Year 3-Year 8의 초등 고학년 과정(구체적 사고능력을 확장시키는 과정)임.

  ◦ 중학교 Year 9-Year 10: 성인기로의 원활한 이행을 유도하는 과정임.

  ◦ 고등학교 Year 11-Year 12: 대학 진학이나 그 외의 진로(직업세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으로 4개의 units로 구성된 course를 거치게 됨. 각 course는 주 및 특별자치구 단위로 학생의 필요와 흥미를 반영하여 제공함.

 

 

  2. 오스트레일리아의 교육과정·교과서 제도

 

  가. 교육과정

 

  오스트레일리아 교육과정·평가 보도국(The Australian Curriculum, Assessment and Reporting Authority, ACARA)에서 초·중등학교를 위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¹을 개발하여 발표하고 오스트레일리아 교육청소년개발청년업무관련위원회(The Ministerial Councils for Education, Early Childhood Development and Youth Affrairs, MCEECDYA)에서 승인한다. 법적 강제성을 지닌다기보다는 교육과정에 관한 대강의 기준을 제시하는 문서로서, 각 주의 교육청은 이 문서를 바탕으로 지침을 작성하고 각 학교는 이 지침을 바탕으로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한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ACARA(2010). The Shape of the Australian Curriculum v2.0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총론 수준의 문서로서 각 학교급의 교육목적 및 목표뿐만 아니라 범교육과정 영역, 핵심역량, 교수-학습, 평가, 교육과정 운영, 교육과정의 질 관리, 교육과정의 세계화, 교과별 교육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다. 이는 최신 버전으로 2009년에는 v1.1이 발표된 바 있고, v2.0은 v1.1을 폐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범교육과정 영역이란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관계, 지속 가능성 등을 다루는 영역이며, 핵심역량이란 문해력, 수리력, 정보 및 의사소통기술 역량,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윤리적 행동력, 개인적·사회적 역량, 다문화적 이해력을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교육청소년개발청년업무관련위원회(The Ministerial Councils for Education, Early Childhood Development and Youth Affrairs, MCEECDYA)에서는 2008년에 Melbourne Declaration on Educational Goals for Young Australians을 발표했다. 이 선언을 근거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문서가 개발된다. 이 선언에서는 교육과정에 포함될 교과로 영어, 수학, 과학, 인문학 및 사회과학(역사, 지리, 경제, 시민정신 등), 예술(댄스, 드라마, 미디어예술, 음악, 영상예술 등), 언어, 건강 및 체육, 기술(디자인과 기술, 정보 및 의사소통 기술 등) 등을 제시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교과 교육과정(각론)은 ACARA(2009). The Shape of the Australian Curriculum: English, Mathematics, Science, History와 같은 형식이다.

 

  나. 교과서 제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일본 교과서연구센터의 자료에서 본 바와 같이 민간 출판사가 자유롭게 개발·발행하고 있다.

  각 학교는 학교 나름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교과서를 채택하고, 때로는 국가 교육과정 및 주 교육청 지침에 따라 구성된 학교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교사들이 자유롭게 제작하여 학생에게 배부하기도 한다. 교사는 다양한 도서, 신문, 잡지, 인터넷 자료 등 모든 자료를 총망라하여 활용할 수 있다.

  또 연방교육부 및 지역교육청 단위로 교과용 보조 교재를 제작하기도 한다. 유명 출판사에서 교육자와 교사들을 필진으로 하여 국가 교육과정에 맞는 교재를 제작하고, 사회적인 쟁점이나 특정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은 공익출판사에서 제작한다. 이렇게 제작된 교재는 각 학교의 교과목별 교사회에서 선정하고, 교장이 최종 승인하며, 학교의 예산으로 서점이나 출판사를 통해 일괄 구입한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무상 또는 유상으로 대여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교육과정·교과서 제도 참고 사이트 (하이퍼 링크 목록) 

http://www.deewr.gov.au/Pages/default.aspx (호주교육부)

http://www.mceecdya.edu.au/mceecdya/

(호주교육청소년개발청년업무관련위원회)

http://www.acara.edu.au/default.asp (호주 교육과정 및 평가 보도국)

http://www.australiancurriculum.edu.au/Home (호주 교육과정 및 평가 보도국-v1.1)

http://www.aqf.edu.au/ (호주자격관리국)

http://www.auskec.org/ (시드니한국교육원)

 

 

 

Ⅳ.교과서 자율채택제의 의미 해석

 

 

  1. 자율채택제란 어떤 제도인가?

 

  ‘자율채택제’를 적용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교과서 제도에 대한 설명을 보면 우리나라의 교과서 제도와 어떤 점이 다른지 별로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교과서의 개발에 대한 국가의 관여가 없을 뿐으로 교과서가 활용된다는 사실, 교과서 외의 다양한 학습자료가 개발·활용된다는 점은 우리와 유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크게 보면, 교과서 제도에는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정부가 나서서 일부러 교과서를 만드는 방법과 구태여 정부가 나서서 만들지는 않는 두 가지가 있다. 정부가 나서서 교과서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자유발행제’ 혹은 ‘자율채택제’를 의미하며 교사의 판단에 따라 교육과정에 제시된 목표 달성에 적합한 자료들을 동원하는 경우이다. 정부가 나서서 교과서를 만들지 않게 되면 우선 검정이고 인정이고 심사할 필요도 없어진다. 다만 교과서가 없으면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의 문제만 남는다.

 

  국·검·인정의 교과서가 사라지면 학교가 당장 문을 닫을 지경이 될까? 필자는 결코 비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낙관적이다. 수업을 잘 하는 교사일수록 교과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며, 교과서가 없으면 차라리 자유로워지고, 더 다양하고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수업을 전개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은 그리 낮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는 난처한 일이지만 혹 수준이 좀 낮은 교사들 때문에 비관적이거나 불안하다면 교육과정에 따라 교사용지도서 혹은 지침서를 잘 만들어 공급하는 방안도 있다. 이 관점에 의하면 중·고등학교의 경우 지도서 검인정이 줄어들게 된 것은 애석한 일로 해석된다. 지금까지 잘 개발되어 활용되어온 지도서를 왜 없앴을까?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무슨 성전(聖典)인양 여기면서도 여러 종류의 자율학교에서는 별로 제약을 받지 않는 ‘학년별·교과별 시간배당기준’을 아예 전체적으로 없애버리고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간을 편성하여 가르치도록 하되, 교육과정의 목표만은 철저히 달성하게 하는 교육과정의 자율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그 교육과정 목표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지도서나 지침서를 잘 만들어 공급하고 그 결과를 철저히 평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교과 교육학자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각 교과별로 수준 높은 수업을 전개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앞으로 국가가 관여하는 교과서가 없으면 어떻겠는가?”를 물으면 “큰 일 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각 교과별로 교육과정 전문가 혹은 교육학자들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하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덤벼들 것이 분명하고, 어느 교과목을 막론하고 해당 교과목 정규 교과서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설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몇 십 년 전부터 특히 몇몇 교과는 굳이 교과서가 꼭 있어야 할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총론적인 세미나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기도 했으나 어느 교과도 먼저 교과서를 없애거나 그 형태를 바꾸자는 연구를 제안한 적이 없다. 어떤 교과목은 그런 제안을 하는 순간 ‘매국노’로 전락할지도 모르므로 이 방안은 현재로서는 일단 현실성이 전혀 없는 걸로 간주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이런 방안도 있다는 건 분명히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며, 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 교과 교육과정 운영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최전방에 교과 교육학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 두고 싶다.

 

  자유발행제는 교육과정 관리 방법을 ‘목표 중심’ 또는 ‘내용 중심’으로 구분하는 경우 목표 중심 교육과정 관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목표 중심’이란 어떤 교과서 혹은 어떤 교재를 동원하든 목표를 잘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목적이 된다. 이에 비해 ‘내용 중심’이란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교육과정상의 목표는 간접적인 역할을 할 뿐 실제로는 교과서로 구체화되는 교육과정 ‘내용’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교사는 그 내용을 잘 설명하고 학생들은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최선의 목적이 된다. 이러한 나라에서 “우리도 목표 중심 교육과정 관리 방법으로 전환하여 교과서의 역할을 축소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최근의 교과서 정책을 비판하면서 “어떻게 교과서 제도를 그렇게 바꾸고 교과서 정책을 그렇게 다루느냐?”고 개탄하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국정교과서를 줄이고 인정교과서를 늘이는 것조차 못마땅해 한다.

 

  덧붙이면, 국·검정제보다는 인정제 혹은 자율채택제가 더 선진적이라는 관점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 교과서 제도는 국·검정 중심에서 점차적으로 검·인정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나, 인정제를 느슨하게 운영하면 그게 바로 자유발행제라는 사고방식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국정제를 적용하다가 바로 자유발행제로 전환한 나라도 얼마든지 있으며, 인정제를 적용해서라도 정부가 좀 관여하겠다는 제도와 전혀 간섭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겠다는 제도는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궁극적으로 어떤 제도를 지향해야 하나? (이상적인 수업, 이상적인 교실)

 

  우리의 교과서와 교과서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하면서 느끼게 되는 크고 무한한 ‘한계’가 있다. 교과서 중심 수업, 지식 전달식 수업, 획일적 강의 중심 수업 등으로 표현되는, 대학입시 준비교육으로는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암담함이다. 수업이 바뀔 수 없다면 교과서의 수준 향상 또한 거의 무용(無用)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좋은 교과서를 개발하면 좋은 수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과서의 다양성은 결코 교사의 자유로운 선택만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언제나 단 한 권의 교과서를 받아서 그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수능 등에 출제될 만한 핵심을 암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교과서 자율채택제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교사는 또 그 교과서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설명해주는 지식주입식 교육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좋은 교과서’에 대한 이상(理想)은, 학생들도 개인별로 자유롭게 필요한 교재를 선택할 수 있어야 실현될 수 있다. 교사의 ‘해설’이 사라지고 학생들의 사고·탐구가 주요 활동이 되는, 그런 수업, 그런 교실을 그려보면, 어떤 학생은 그 교과의 시간에 가장 쉽게 보이는 한 권의 교과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다른 학생은 동일한 그 교과의 시간에 두세 권의 교과서를 동시에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과서의 활용이란 학생 개인별로 모두 다른 상태이며, 교과서란 학생들이 개인별로 소지하도록 배부되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학교에서 온갖 교과서를 풍부하게 구입하여 비치해 주는 것이 이상적이기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육과정에 의해 설정한 수업목표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며, 어느 특정 교과서를 선정·채택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고 요약해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와 안내에 따라 개별학습을 하고 소집단, 혹은 전체학습에 참여한다. 정부에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교재를 구입해주며, 교과서는 수많은 교재 중의 일부이고, 학생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교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재의 다양성’이란, 공급면의 다양성(교사의 자율적인 선정·채택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학습의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경우의 다양성이라야 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학교와 교원들의 성과는 ‘어느 대학교에 몇 명의 학생을 입학시켰는가?’와 같은 ‘무지막지한’ 자료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시켰는가?’로 판단된다. 이 학교(이 글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학교)에서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어 교과서 내용전달에 치중하는 오늘날 한국의 학교들을 바라보면 “교과서 혹은 교과서 제도의 개선이 왜 필요한가? 아주 멋진 교과서를 한 권만 개발하여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의문을 제기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어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개미의 공동생활’에 대한 학습을 시키고자 한다면 어떤 책이 필요할까?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떤 책을 제공해 주는 것이 좋을까? A교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너희에게는 이 책이 가장 좋을 게 분명해! 이걸로 일사분란하게 공부해!” 다음으로 B교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몇 권의 책을 제시할게. 너희들이 의논해서 그 중에서 한 권을 골라 읽도록 하자.” 그러나 C교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걸 내가 왜 지정하겠니? 너희들은 모두 다 다르니까 각자 가장 좋은 책을 골라서 읽도록 해.” 개미 연구와 국어·사회·수학·과학 같은 교과는 성격이 다른가? 교과서 제도는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가? 나라의 사정(경우)에 따라 다른가?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면 개미의 공동생활에 국한하여 보면 어떤가?

 

 

 

   저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처음으로 국가 교육과정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주별로 그 지침을 적용하는 일에 열중하던 1990년대 중반에 뉴사우스웨일즈와 빅토리아 주 정부를 시찰한 바 있으나,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므로 이와 같이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원고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원고는 이번에 직접 오스트레일리아를 시찰하시는 분들을 위한 사전 연수 자료의 하나로 작성한 것이므로 저의 기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임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