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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주례 이야기

by 답설재 2012. 4. 18.

 

 

 

 

 

주례 이야기

 

 

 

 

 

 

  지난 토요일(4.14)은 모처럼 주례를 맡게 된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몇 차례 거절해 오다가 이번에은 그런 내색도 하지 않고 덥석 승낙한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일주일 전부터 한동안 아무렇지도 않던 몸 상태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기운이 없는 건 둘째 치고 머리가 많이 아프고, 그게 너무 심한지 때로는 구역질이 나기도 했고, 이명(耳鳴)이 더 심해져서 '이러다가 소리라도 들을 수 있겠나?' 싶었고, 먹성이 좋아서 아무리 아파도 무얼 먹고 싶은 마음은 변함 없었는데 이젠 먹는 것조차 귀찮았습니다. 심지어 핏줄에 철망을 집어넣은 가슴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두어 주일 활동을 무리하게 한 것도 자꾸 생각나고, 호기롭게 운동을 조금 더 한 것도 그렇고, 음식에 욕심을 낸 것도 석연치 않고, 본성대로 자그마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작용한 것 같고, 하여간 몸이 그렇게 된 이유로 떠오르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활동에 대해서는 명심해야 할 것이, 병원을 드나들게 되고부터는 하루에 서너 시간의 활동이 적당한데, 집을 나서면 정상이 아닌 자신을 잊어버리고 이것저것 덤벼들어서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아, 무리했구나!' 후회하게 되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한 일입니다. 따지고 들면 운동이나 음식이나 크고작은 일로 인한 스트레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주제를 알아야 할 일들일 뿐이지요.

 

 

 

 

  '눈앞에 닥친 이 일만은 끝내고 그만두어도 그만두어야지.'

  그것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싶으면, 학교에 근무할 때나 교육부 근무를 할 때나 늘 갖던 생각이었습니다. 그게 현직에 있을 때의 버릇 중 한 가지였습니다. 그 버릇대로 이번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병원에 실려가더라도 주례는 서주고 실려가야 할 텐데…………'

 

  생각과 달리 몸 상태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날짜는 자꾸 가는데 컨디션은 그대로였습니다.

  아내는 자고나면 물었습니다. "좀 나아요?"

  그러면 "응" 해놓고 똑같은 증세를 나타내니까 아내는 아내대로 자꾸 물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식장에 도착해서 약 30분 정도만 서 있으면 되고, 주례사는 길어야 5분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미련한 생각도 했습니다.

  "주례사 할 것은 준비해 놓았어요? 잘 해 주어야 할 자리인데…………"

  아내의 걱정이 더 컸습니다.

  그러나 만사가 귀찮아서 그것조차 준비하지 않고 어느덧 금요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래 원고를 써서 읽는 것은 싫어하지만 남의 앞에서 말할 것은 언제나 메모해 두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것조차 못하고 마는가 싶어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이 결혼의 주례를 부탁한 신부의 아버지는, 1990년대에 만난 사람입니다.

  그는 남의 회사 지도를 그려주며 살던 사람으로, 그 성실성이 남다르구나 했더니 언젠가 지도 전문의 자그마한 출판사를 차렸고, 그때부터는 이런저런 지도를 그려서 간헐적으로 가져와 자랑하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 성실성만으로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다가 사회과부도나 지리부도 검정 심사에 왕창 떨어지면서도 굴하지 않았고, 한편으로 독도에 관심을 가지더니 드디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독도 세밀도를 그려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 혼신을 다하는 것 같았습니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그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학벌이 높지도 않고, 나이조차 나보다 한참 아래가 분명한 그를 존경하게 되었는데, 그런 그가 어느 날 둘째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고, 자신이 아는 1000여 명을 일일이 검토한 결과로 나를 주례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아,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주례를 서주어야지.'

 

 

 

 

  그 결혼에 호감을 가진 이유에는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의 딸이 어떤 사람인가는 '그 아버지에 그 딸'일 테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위가 될 사람인데, 그는 중졸이었습니다. 그것도 시골 중학교만 졸업하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학업을 중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걸로 끝낸 것이 아니고, IT산업 연구원이 되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고 인터넷 강의를 들어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결혼을 할 처녀총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봤더니 서로 상대방의 인물이나 섹시함 같은 건 말하지도 않고, 관점이 분명하고 열정적이고 성실하더라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아, 이 결혼은 참 교육적이구나!'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는데 몸은 그 상태로 어질어질하고 머리가 아픈 것도 여전했지만 견딜 만은 했습니다. 일찍 나섰으므로 전철역에서 파는 2000원짜리 월간잡지 한 권을 샀습니다. 주례를 서는 날이니 그 책을 보면서 '좋은 생각'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화창한 날씨가 이들 부부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것 같다는 얘기부터 했습니다. 참 멋진 사람들이어서 주례를 서고 싶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배우자의 모자라는 점을 채워주며 살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상대방의 미흡한 점, 단점을 보게 되므로 상대방의 현재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서로 그가 주인공이고 나는 조연(助演)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사장이고 고급관리여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사장이나 고급관리를 위해 살아가지는 않는다,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한 인간은 세상의 중심이다, 그런 얘기를 해주었고, 얼른 자녀를 두셋은 둔 다음에 설계한 삶을 실현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이들을 축하해주러 온 모든 사람들의 가정에도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인사로써 주례사를 마쳤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 그 부부에게 멋지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말을 한번 더 해주었습니다.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인사할 때마다 진심을 담고 있는지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그게 버릇이 되었습니다.

  메일이나 댓글이나 전화로 상대방이 내 건강을 빌어주면, '당신이야말로 할 일이 많으므로 나보다 더 건강해야 한다'고 대답해 줍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나는 좀 아파도 되는가?' 그런 우스꽝스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지만 이제 갓 출발하는 그들 두 사람이 나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례를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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