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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고성방가(高聲放歌)

by 답설재 2012. 4. 5.

 

 

 

선생님께서 사자성어(四字成語) 문제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국어시간이었겠지요?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불러서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짓을 이르는 말이다. 사자성어로 뭐라고 하느냐?"

"……"

 

 

 

답답한 선생님께서 사전에서 볼 수 있는 용례를 보여줍니다.

"우리 연습실의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면서 ○○○○로 신고가 들어왔다."

"……"

"오늘 새벽 술 취한 남자 한 명이 ○○○○를 하며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선생님께서 힌트를 더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모르겠느냐? 결정적인 힌트를 주겠다. '가'로 끝나는 말이다."

 

 

 

그제야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듭니다.

"그래, 이제 알겠느냐?"

"예. '그럴 수가'입니다!"

 

선생님은 기가 막혔습니다.

선생님의 표정을 본 아이들은 이렇게 감지했을까요?

'아하! 그 정도로는 안 되는구나! 강도를 높여야 하는구나!'

 

다른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미쳤는가!!!"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강도를 더욱 높여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다른 아이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인간인가!!!"

 

또 한 아이가 이제는 마지막 카드라는 듯이 발표했습니다.

"울아빤가……"

 

 

 

폼나는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아빠들이 부럽습니다.

이미 다 틀어져버려서 아프고 쓸쓸합니다. 저런 개그가 결코 개그 같지 않습니다. 이거야말로 차라리 스스로 몸 개그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결코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고성방가를 한 저 인간도 미친 것은 아니고, 더구나 저 아이들과 마찬가지인 인간이라는 것은 밝혀주고 싶은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