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누가 먼저 죽어야 하나

by 답설재 2012. 3. 12.

 

 

 

 

 

누가 먼저 죽어야 하나

-걸으며 생각하며 Ⅳ-

 

 

 

 

 

 

 

  아내와 말다툼을 하면 속전속결(速戰速決), 그 상황을 얼른 끝내고 만다. '속전(速戰)'보다는 '속결(速決)'에 더 힘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도 걸핏하면 말다툼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으레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저 생각이 달라지겠지.'

  '나중에 우리 사정이 좋아지면 괜찮겠지.'

  '내 속마음을 알게 되면 그땐 다른 생각을 하겠지.'

  …………

 

  그러다가 이제 세월이 예전과 달리 '휙! 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니까 이른이 내일모레고, 객관적으로 보면 건강도 그리 좋은 건 아니니까 마음으로는 그리 한가한 시간을 보낼 여유(餘裕)가 없게 되었다. 그게 속전속결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그동안 말다툼을 할 때마다 '아내는 저 생각만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을 뿐더러 '솔까말', 그래, 요즘 신식 용어대로라면 변한 건 나 자신이고, 아내쪽으로 말하면 변할 것도 없고 사실은 아내가 변하면 '우리'로서는 큰일날 일들뿐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Ⅱ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무리 백세(百歲) 시대라 해도 나이도 그만하면 지긋하고 하니 아예 다투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그런 결심쯤은 이미 수백 수천 번 했다.

 

  더구나 남의 결혼식 주례를 서면 으레 이런 내용으로 주례사를 한다.

  "서로 간에 상대편을 주연(主演)으로, 자신을 조연(助演)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 아내를 상대로 해서는 어느 것 한 가지, 따지고보면 먼지만큼 하찮은 일 가지고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한심한' 성격 때문에 그 결심은 하나마나라는 점이다.

 

 

 

 

  요즘은 한 가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

  '아니, 평생 모든 일에서 내가 이겨야 했고, 내가 신세를 지기만 했으니까 죽을 때만이라도 아내가 먼저 죽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는 건 죽을 때도 아내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욕심이다. 반면에 '죽을 때만이라도 아내가 먼저 죽도록 해야 한다'는 건 인간된 도리로서의 생각이다. 그 두 가지 생각 중에서 어느 쪽으로 결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Ⅳ

 

 

  이 상황이 된 것은, 지난해 12월, '죽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게 한 오츠 슈이치의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읽고부터이다.

  그 책에는 가령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건강을 지키려고 애써도 사람의 목숨은 때가 되면 반드시 끝이 찾아온다."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현실적으로는 균형 잡힌 태도로 간병하기가 쉽지 않다. 가족들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환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육체적·정신적 피로 때문에 지치기 마련이다."

  ……………………

 

  젊은이들이라면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할, 그러나 이제 죽음이 어떤 것인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의 죽음을 당하면, 저 내용을 감안하여 잘 할 만한 성의도 없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능력도 없으니까 내가 먼저 죽는 것이 이레저레 속편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다가도 금방 생각이 바뀐다.

  '아니야, 이건 심각한 일이잖아. 우리의 마지막 일이잖아. 마지막에라도 내가 저 사람에게 보답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이다. 생각은 금방 바뀌게 된다.

 

  '내가, 이처럼 행동이 가볍고, 인내심도 없고, 인정머리도 없는 놈이, 저 사람을 눕혀 놓고, 듣기 싫어할 소리 끝끝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환자도 주위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다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숨이 넘어가면서도 다 듣는다던데……'

  '남들이 봐도 그렇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를 보살핀다면 흉잡힐 일 할 리가 없지. 그렇지만 내가 그 처지가 되면 일이 뒤죽박죽이 될 것 아닌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 쉽상이겠지.'

  ……………………

 

 

 

 

  '내가 먼저 죽자.'

  '아니, 내가 나중에 죽어야 해!'

 

  결정한다고 그대로 될 리도 없다. 실현될 확률은 50%, 그러나 그걸 정하지도 않은 채 자꾸 세월만 보내는 것도 무성의하지 않은가……

 

 

 Ⅵ

 

 

  남의 이목(耳目)은 중요하다.

  그러나 누더기 같은 간병으로 "뭐  저 따위 인간이 있느냐?"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그동안 신세진 것, 받기만 한 정(情)을 다 나열할 줄도 모르는 주제이긴 하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갚아 보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 또한 도리가 아닐까?

  조금 더 생각해보고 조만간 두 가지 입장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아내가 잔소리를 하고는 설핏 측은한 표정을 보이는 게 참 싫다. 잔소리를 하려면 제대로 하고, 잠깐이라도 그런 표정을 보이지 않아야 차라리 내 마음이 편할텐데……

 

 

 Ⅶ

 

 

  농담입니다.

  '아직 젊은 사람이 버르장머리 없이……' 싶겠지요. 그러니까 농담 아니겠습니까. 진짜 같으면 농담이 되겠습니까?

  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한번 웃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농담도 못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