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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설날 유머 ‘삼식쉐끼’ 근데 이게 유머라고?

by 답설재 2012. 1. 21.

어느 신문 ‘2012 설 특집’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설날”, “친척들과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눌 때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유머 한두 개쯤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소개한 ‘하하 호호… 인터넷 유머’의 첫 번째 자료입니다.

 

 

     <세끼 먹는 남편, 삼식쉐끼>

 

남편이 집에서 식사를 몇 끼 하느냐에 따라 마누라들의 남편에 대한 호칭이 달라진다는데….

-한끼도 안 먹는 남편 : 영식님

-한끼 먹는 남편 : 일식씨

-두끼 먹는 남편 : 두식이

-세끼 먹는 남편 : 삼식쉐끼

-세끼 먹고 간식 먹는 남편 : 간나쉐끼

-세끼 먹고 간식 먹고 야식 먹는 남편 : 종간나 쉐끼

-시도 때도 없이 먹는 남편 : 십쉐끼

-세끼 먹고 간식 먹고 야식까지 먹으면서 마누라는 쳐다도 안 보는 남편 : 쌍노무 쉐끼

 

 

 

 

신문에서 보기 전에 두어 번 들었던 '유머'입니다. 들을 때는 이야기해 주는 사람의 입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좀 실없는 미소를 짓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반응을 보이기조차 싫었습니다. 좋아하며 들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 같은 경우는 '님'과 '씨'가 붙은 ‘영식님’ '일식씨'를 뺀 나머지 ‘두식이, 삼식쉐끼, 간나쉐끼, 종간나 쉐끼, 십쉐끼, 쌍노무 쉐끼’가 모두 해당되는데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꼭 노인을 염두에 둔 유머가 아니라고 변명하겠습니까? 그럼 도대체 누굴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까?

 

이 '저질' 자료가 설날 특집으로, 말하자면 온 가족,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써먹을 유머 자료로 신문에 버젓이 실리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남의 가슴을 쓰리게 하는 걸로 유머를 삼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까짓 거 막대 놓고 얘기해도 좋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야, 이것들아! 너희들도 겪을 날이 곧 온다. 살아보면 머지않다. 어느 날 그 순간이 별안간 앞에 와 있을 것이다. 이런 거 가지고 그러는 게 아니다. 에이, 철없는 것들. 쌍노무 쉐끼라니…… 네 주변엔 그 쌍노무 쉐끼가 없나? 집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이 그렇게 밉나?”

 

 

 

 

유머는 익살스럽게 하는 얘기니까 가볍게 그냥 웃어 넘기면 됩니까?

그렇다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그 가까운 사람 앞에서, 그것도 설날에, 이걸 유머라고 가볍게 한번 써 먹어 본 다음에 그 사람 표정을 보고 더 이야기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누군 집에서 삼시 세 끼 꼬박꼬박 얻어먹고 싶은 줄 압니까? 그걸 꼭 그렇게 치욕스럽게 해야 합니까? 아니, 우리도 평생을 직장생활하며 외식 많이 했지 않습니까? 좀 염체없는 짓인지 모르겠으나 지금부터라도 집에서 밥 좀 얻어먹는 게 그리 못 되먹은 짓입니까? 그렇게도 저질스러운 일입니까?

 

나는 지금 이 글을 웃자고 쓰는 건 아닙니다. 이런 걸 유머라며 지껄이다 보니까 하나둘 무너지게 되고, 그 하나둘 때문에 와르르 무너지게 되고, 애어른이 없는 사회가 되고(유머라며 조부모, 퇴직하고 들어앉아 있는 부모 앞에서도 지끌여댈 테니까), 막돼먹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드디어 집에서는 밥알을 헤아려 입에 넣어주는 왕자·공주인데 밖에 나가면 다른 아이들을 괴롭혀 자살시키는 이른바 '10대 안의 악마'도 생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에이, 정말 씁쓸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