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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학생중심 수업설계를 위한 관점

by 답설재 2011. 11. 18.

이 가을이 지나가는 비가 내립니다.

 

어제 오전에는 교육부 편수관을 지낸 사람들(그러므로 노인들)의 모임인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친목 단체)의 창덕궁 견학에 참여했고, 오후에는 거절하기가 참으로 난처한 어느 곳의 교원연수회에 나가 강의를 했습니다. 수업 컨설팅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의 소양을 높여주는 강의를 해야 하는데, 제 힘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 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다음 원고가 그 내용입니다. 겪은 일에 의견을 덧붙인 것입니다.

 

 

학생중심 수업설계를 위한 관점

 

 

‘학생중심’이라는 말의 뜻을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학생중심 수업설계’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필자의 소박한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면서 연역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아무래도 좀 간접적·귀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학생중심’ ‘학생중심 수업설계’의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합니다.

 

 

  □ 두 가지 사례

 

사례 1. 역할놀이학습과 연극학습

 

보고회가 끝나고 공개 수업 참관 시간이 되자, 전국에서 몰려온 교장과 교사들 대부분이 도덕 수업을 공개하기로 되어 있는 우리 교실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전국적으로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교실 뒤와 옆은 물론 창 너머로 복도에서도 들여다보는 속에서 동물원에 갇힌 짐승 신세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그런 꼴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내가 하려는 수업은 시민 두 명이 간첩을 만난 상황을 설정하고, 시민 1,2와 간첩 배역을 정하여 시민이 간첩의 마음을 돌려 귀순시킨다는 내용의 역할놀이 학습이었습니다. 수업 공개를 위하여 대부분의 아이들이 똑똑한 목소리로 자기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켜 두었으므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간첩을 만난 시민’에 대한 역할놀이 연습을 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사전 연습을 해두면 재미가 없어 수업에 맥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미리 짜놓은 전략 한 가지는, 평소에 비장의 카드 구실을 하는 똑똑한 아이들을 얼른 등장시키면 결국 한 시간의 수업을 끌고 가기가 어려워지므로 수업의 전반부에서는 그저 그런 수준의 아이들을 많이 등장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시작하자 그 전략이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 간첩을 귀순시키는 장면 연출이 끝날 때마다 전체 아이들이 역할 수행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그러한 연출을 두세 번 되풀이해야 하는데, 시민 역할을 맡은 두 명의 아이가 번갈아 가며 말하는데도 한 명의 간첩에게 밀려 처음부터 계획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간첩은 북한이 다 함께 어우러져 우리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니 어떠니 하면서 점점 더 자신만만해지는데, 시민 두 명은 우물쭈물 몇 마디 하더니 그만 말문이 막혀 시간만 끌고 있으니, 그 상태로 그 연출을 끝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어 알게 되었지만 덩달아 나도 얼굴이 달아오르다가 하얗게 질렸다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대기만 하였는데, 기가 막힌 것은 드디어 시민 두 명이 간첩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학습이라고는 하지만 1970년대 중반이었고, 그것도 전국 공개 보고회였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구경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수업 참관을 하는 사람들은 잠시 들렀다가 가는 손님들처럼 이 교실 저 교실로 흘러왔다 흘러가는 법인데 이 날은 한 사람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토론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다른 아이들을 등장시키겠다고 선언하며 아이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 봐라. 간첩을 할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처음의 간첩이 말하는 걸 지켜본 아이들은 이제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듯 똑똑한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손을 내리게 하고 먼저 시민부터 뽑겠다고 했더니 몇 명이 손을 들긴 했지만 아무래도 기대에 미치지 못할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들은, 방금 간첩을 하겠다고 너도나도 손을 든 아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 간첩으로 뽑힐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말하자면 2류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시간의 수업을 어떻게 마쳤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한 느낌을 갖습니다.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전체 토론회 시간에 수업을 참관한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었습니다. “계획대로만 가지 않는 살아 있는 수업을 보았다.” “선생님께서 당황한 만큼 우리도 당황한 가운데 초조하게 수업을 지켜보았다.” “그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했다.”

 

아이들의 생각과 아이들의 이야기로 ‘진정한 학습’을 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이 역할놀이학습입니다. 가령 독도 문제를 가지고 우리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만나 회담을 하는 장면을 설정했다면, 독도 문제에 대한 사전 연구를 충분히 시켰다 하더라도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을 맡은 사람에 따라 대화가 달리 전개될 것이므로 회담 결과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역할놀이를 본 나머지 학생들이 토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할놀이학습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겉으로 보아서는 역할놀이학습과 유사하나 역할놀이학습도 아니고 연극학습도 아닌 ‘앵무새놀이’를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교사는 각 배역에 맞추어 미리 준비해둔 대본을 주거나 대사를 만들어 외우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간단한 역할놀이를 시키기 위해 흡사 연극을 할 때처럼 왕과 왕비의 복장을 마련하게 하고 무대를 궁궐처럼 꾸미기도 하는 오류를 저지릅니다. 말하자면 역할놀이와 연극 연습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사들은 연출의 상황만 제시하고 실제 연출은 아이들의 생각에 맡겨서 진행하는 역할놀이학습을 상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멋대로 말하다니, 아이들은 모든 것을 교사가 가르치는 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보기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례 2. 우리 집에도 문화재가 있다니!

 

초등학교 3학년을 담임할 때였습니다. 문화재 학습을 한번 제대로 해보려는 생각으로 ‘집에 문화재가 있는 사람은 각자 학교에 가져와서 살펴보자’는 과제를 내었습니다. 집에 있는 문화재라니, 아이들에게나 부모들에게나 대체로 어처구니없는 과제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튿날 아침이 되자, 어떤 아이는 옛날 책을 가지고 왔고, 엽전, 가짜임이 분명한 마패, 다보탑․석가탑․불상 같은 각종 불교 문화재 모형, 한복, 구식 다리미 등 잡동사니까지 다 모이게 되어 아침부터 교실이 여간 소란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짜 마패는 문화재가 아니다.” “문화재다. 다만 모형일 뿐이다.”와 같은 토론으로 이미 학습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될 무렵 한 아이가 묵직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보자기에 싸 들고 아주 조심스럽고 힘겨운 걸음걸이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무얼 그렇게 가져오나 물어보았습니다. “벼루요. 할아버지께서 ‘이건 깨지면 큰 일 난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가져오셨어요.”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 애의 어머니가 겸연쩍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걱정 말고 귀가하시라고 했습니다. 대충 파악되었으므로 그 벼루를 소재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벼루는 왜 종인이네 어머니께서 직접 학교까지 가지고 오셨을까?”

“종인이네는 왜 그렇게 소중히 다루고 있을까?”

 

아이들은 그 물음에 아주 쉽게 대답했고, 우리 고장, 우리나라 전체로도 그렇게 소중한 물건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집에 가서 당장 그런 물건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했고, 우리 고장, 우리나라 문화재 그림이나 사진을 늘어놓고 이런 것들이 왜 소중한지도 이야기했습니다. 학습 소재만 잘 제공해주면 아이들은 얼마든지 재미있게, 실감나게, 분명하게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 사례를 보며 생각하는 의문들

 

사례를 더 이야기해 드릴까요? 필자의 경험을 사례로 소개하여 쑥스럽습니다. 양해하시고 이 사례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들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답변해 보십시오.

 

▶ 주입식 수업에 대하여

 

◦ 어떤 형태의 수업이 ‘주입식’입니까?

- 왜 주입식에 대한 이론은 별로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까?

- 그런데도 왜 주입식이 끈질기게 유행하고 있습니까?

- 그렇다면 주입식은 좋은 것입니까?

- 이른바 가치·태도에 관한 학습에서는 주입식이 유효합니까?

- ‘도전 골든벨’도 학습입니까?(아주 대어놓고 하는 경우)

 

◦ 다음과 같은 수업은 주입식이 아닐까요?

- 수업안대로 성공적으로 몰아가는 수업, 즉 학습목표 제시 → 활동1 → 활동2 → 활동3 → 골든벨 퀴즈……의 순서를 잘 밟아가는 수업

- 교사의 발문에 따른 질문과 대답만 허용되는 수업

- 관찰자가 안정적으로 참관할 수 있는 수업, 즉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수업

 

◦ 필자의 생각

- 주입식 수업은 아무리 화려하고 심지어 활동적이어도 ‘수업다운 수업’ ‘창의성을 유도하는 수업’은 아닙니다.

- 가치관·태도 형성에 관한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수업에서는 주입식 수업이 오히려 더욱 지양되어야 합니다. 끊임없는 반복과 훈련은 비인간적일 수 있기 때문이고 교육적 효과가 적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 국어, 체육, 음악, 미술 수업에서는 주입식 교육이 더욱 지양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교과들의 수업은 인성교육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 학습자료에 대하여

 

◦ 왜 다양해야 합니까? ① 보기에 좋으니까 ② 만고불변의 진리이니까 ③ ……

◦ 필자의 생각

- 아이들마다 사고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다양한 사고의 장(長)을 마련해 주려는 것이다.

 

▶ 특정 수업 유형에 대하여

 

◦ 우리나라에서 도입·적용해보지 않은 수업 유형을 알고 있습니까?

◦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수업 유형,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 유형은 어떤 것입니까?

◦ 가령 예전의 ‘열린학습’은 아주 몹쓸 방법입니까?

◦ 필자의 생각

- 어느 수업 유형도 만능은 아닙니다. 대부분 항상적으로 적용되어야 마땅한 방법들입니다.

 

▶ 수업의 대상에 대하여

 

◦ 어떤 아이를 주 대상으로 수업해야 합니까? 우수한 아이입니까? 그 아이라도 대학에 보내야 하니까? 똑똑한 놈은 장차 10만 명은 먹여 살리니까?

◦ 그렇다면 저능한 아이입니까?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도 괜찮습니까?

◦ 그러면 이제 중간층입니까? 그럼 우수한 아이와 저능한 아이는 어떻게 합니까?

◦ 대화란 무엇입니까? ‘묻고답하기’입니까? 왜 해야 합니까?

◦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교실에서의 대화는 교사가 주인공이고, 교사가 주도하는 것이 옳습니까?

 

▶ 여러분은 또 무엇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싶습니까?

 

 

□ ‘학생 중심’, ‘학생 중심 수업 설계’의 의미

 

◦ ‘학생 중심’ ‘학생 중심 수업 설계’란 어떤 뜻을 가진 말입니까?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착한 아이 나쁜 아이On Being Good’(1931)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복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진취성을 몽땅 잃어버릴 것이다. 아니면 권위에 대한 분노가 쌓여가다 결국 그 진취성이 파괴적이고 잔인한 성질로 변해버리거나.

 

어디서 자주 들어본 듯한 말이 아닙니까? 어쨌든 옳은 말이라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학습의 주도권을 넘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교사의 생각대로 ‘멋진’ 자료들을 동원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고 과정을 중시하는 학습자료를 제공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학습주제에 가장 효율적일 학습방법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교사와 우수한 아이들 간의 독점적인 대화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교실은 장차 성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곳이기 이전에 현재 그것도 가상이 아닌 실제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좋은’ ‘탐구적인’ 생활을 하는 아이라야 장차 ‘좋은’ ‘탐구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버트런드 러셀은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미 중요해진 사람을 개선할 수 있는 희망이란 없다. 그는 더 이상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을 발전시키는 일이 일반적으로 이미 늙고 이미 중요해진 자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 이처럼 바쁜 세상에 이런 생각으로 가르치면 많이 가르칠 수도 없고,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됩니까? 우리가 언제 한번 시도해 본 적은 있습니까?

 

 

위 내용도 그렇지만 아래의 자료는 읽지 않아도 좋은 내용입니다.

 

 

<자료1> 역할놀이학습

 

역할놀이학습은 학생들에게 구체적 상황(흔히 문제 상황)을 실제로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학습 방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그 놀이가 지닌 의미, 가치 등을 분명히 깨닫게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 학습방법은 여러 가지 다른 역할을 해보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에 일반화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에 관한 개념을 습득하게 할뿐만 아니라, 역할을 체험해보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습득해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역할놀이학습에 적당한 주제(문제 사태)의 예를 들어보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분명한 ‘우리 고장의 의회’나 ‘우리 마을 자치회’, ‘모의재판’, ‘남북 정상 회담’ 등 수없이 많고 다양합니다. 샤프텔(G. Shaftel)은 역할놀이학습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① 집단 워밍업(문제 사태 제시)

② 역할 수행자의 결정

③ 무대 설치

④ 청중의 참관 준비

⑤ 역할 수행(연출)

⑥ 토의 평가

⑦ 재연출(수정된 역할 수행 또는 첫 연출에서 지시된 다음 단계의 역할 수행에 의한 다른 가능성의 탐색)

⑧ 재토론(평가 및 반성)

⑨ 경험의 교환과 일반화

 

“얘, 우리 가족놀이하자.”(문제 사태 제시 ; 아이들은 이런 놀이라면 익숙하므로 그 문제 사태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구할 필요는 없다).

“내가 엄마 할게.”(역할 수행자의 결정)

“여기서 놀자.”(무대 설치 ; 집을 짓고 가구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 사금파리와 흙, 풀잎만 있으면 되니까.)

구경꾼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이들은 구경꾼이 있는 상황을 좋아하지도 않는다(청중의 참관 준비).

“여보, 어서 일어나요! 식사할 시간이에요!”(연출)

“이제 내가 엄마 할게.” 아빠가 되었던 아이가 말한다. 그 아이는 자기가 엄마가 되면 남편에게 또 다른 형태의 잔소리를 늘어놓을 자신이 있는지도 모른다(토의 평가).

“여보, 피곤하지만 어서 일어나요. 시계 좀 보세요.”(재연출)

 

아홉 가지의 어느 단계에도 원고 준비는 없습니다. 그냥 한 아이는 우리나라 대통령, 다른 한 아이는 일본 총리가 되어 한․일간 무역이나 북한 문제, 독도 문제를 두고 한․일 정상 회담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혹 무역 문제를 다룬다면 한‧일간 무역에 관한 통계표 같은 것들을 준비하고 독도 문제를 다룰 경우 독도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준비하게 하면 더 전문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할놀이의 성격이 그런 것인데도 미리 말할 것을 써서 외우게 하거나 원고를 써주면, 그건 희곡에 따라 연극을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대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게 되고 엉뚱하게 연기를 잘하고 잘못하는 거나 따지는 국어 수업이 됩니다. 역할놀이 학습은 원고를 가지지 않고 그냥 그 문제 사태에 대해 아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혹은 미리 생각하거나 조사해 둔 것을 참고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진행하게 되므로, 역할을 맡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연출이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연기는 둘째 치고 대화의 내용과 대화의 전개에 중점을 둡니다. 거기에 묘미가 있고, 학습의 취지가 있습니다. 좀 복잡한 주제라면 며칠 전에 문제 사태와 역할 수행자를 정해주고 문제 사태에 대한 조사를 해오게 하면 더욱 심도 있는 역할놀이 학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유아기에는 그렇게 잘 하는 역할놀이도 교실에서 시키면 잘 하지 않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잘 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통제하여 한 길로 가라는 지시 일변도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문제가 제시되면 아이들은 먼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전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가 잘못 가르치는 데서 발생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나 기초‧기본 학습에서나 너무 많이 가르치려고 하고 그만큼 분주하기만 하여 한 가지로 설정해둔 바로 그 정답이 아닌 대답은 늘 부정하고 맙니다.

 

 

<자료2> 옛날의 조사·발표학습

 

옛 교과서에서 문화재 학습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면 서울 남대문(숭례문) 사진이 당연한 듯 실려 있습니다. 그때에는 우리나라 국보 1호는 남대문, 보물 1호는 동대문(흥인지문)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 시험 문제에도 그런 것을 출제하였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국보 2호나 3호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보물 1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국보가 보물보다 절대적으로 더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우리는 보물 1호가 국보 1호를 제외한 어떤 국보보다 무조건 더 중요하다는 듯 그렇게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시청각 교재의 활용이 강조되면서 남대문 사진을 환등기 같은 것으로 보여주는 수업이 앞서가는 수업으로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학생들이 백과사전이나 학생백과사전 같은 자료에서 남대문에 대한 설명을 찾아 공책에 옮겨 적게 하여 검사를 해주거나 큰 종이에 옮겨 적은 것을 발표시키는 수업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시청각 기기를 통해서 보면 당연히 더 신기해 보입니다. 또 선생님 설명이나 듣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스스로 책을 찾아보는 것이 무언가 다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학습자료 활용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긴 하지만, 학습 효과로 보면 별 차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이나 대체로 주입식 수업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공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어야 한다면 차라리 훌륭한 설명을 듣는 것보다 무엇이 낫겠습니까.

 

서울남대문 - 南大門 국보 제1호. 서울특별시 중구(中區) 남대문로 4가(南大門路四街)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 건물. 정면 5간, 측면 2간, 중층(重層)의 우진각 지붕 다포(多包)집이다.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며 원래의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다. 1396년(태조 5) 창건되었으나 지금의 건물은 1448년(세종 30)에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1961~63)에 있었던 해체 수리에 의한 조사에서 79년(성종 10)에도 비교적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 문은 중앙부에 홍예문(虹蜺門)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石築基壇)위에 섰으며 현존하는 우리나라 성문 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석축 윗면에는 …(하략)…(동아출판사, 1992,『동아원색대백과사전』초판 11쇄).

 

우리는 아이들이 이런 내용을 베껴 오는 것을 ‘조사’라고 하였고, 그것을 공부 시간에 읽는 것을 ‘발표’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였습니다. 또 그런 수업을 보고 ‘매우 활동적‘이라고 했었습니다. 그걸 읽는 아이는 뜻도 모르고 읽고 있고, 듣고 있는 아이들은 지루하고 심심하기 짝이 없어 떠들거나 장난을 치면 “남의 발표를 잘 듣지 않는다”고 꾸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입식 수업만 탈피하면 그만인 것도 아닙니다. 수업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잘 가르친다는 것은 세상에 어떤 일보다 어렵습니다. 멋진 계획을 세워 계획대로 진행하는데도 그 의도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생각도 못한 효과가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이래서 교사들은 그렇게 어렵고 괴로우면서도 학교와 교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