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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새로 교장이 되신 선생님께

by 답설재 2011. 10. 29.

 

 

 

교장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교장이 되셨더군요.

 

오늘날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학교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지표 중에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할 만한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성실한 인간이 되자"고 하면 어떻습니까? '성실한 인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요? '그래, 이 참에 나도 한번 성실한 인간이 되어 볼까?' 그런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지표일까요?

 

네댓 가지로 나누어 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1. 스스로 해결하는 실력 있는 어린이

2. 새로운 생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

3. 더불어 함께하는 예의 바른 어린이

4. 마음씨 곱고 몸이 튼튼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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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장이 되었을 때 '학교 교육목표'라는 걸 아예 없앨까 한 적이 있습니다. 기껏해야 교장실이나 현관 같은 곳 한두 군데 써붙이기나 하는 학교 교육목표, '학교 교육과정(학교 교육계획)' 문서의 앞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렇다고 별 기능을 하지도 못하는 목표라면 구태여 있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만의 목표도 없는 학교가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묻는다면 국가 교육과정 기준에는 얼마든지 좋은 목표가 제시되어 있으므로 그 목표들을 구체화·지역화·학교화(學校化)한 실행목표를 설정하면 차라리 얼마나 실용적이고 분명한 목표가 되겠습니까? 실제로 학교란 바로 그 교육과정 기준을 달성해 주어야 하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일 이외의 업무 비중이 큰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에게는 '학교 교육목표'라는 지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만들어낼 수 있는 문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본의 아니게 그런 문서를 만드는 일에 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맡은 업무 때문에 그 목표를 없애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아예 그 업무조차 없애버리지 그랬느냐고 하면 교장도 마음대로 못하는 일도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이 맞는 것은, 두 학교의 교장을 하는 동안 실제로 그 목표를 묻는 사람도 없었고, 더구나 교장이니까 한번 정확하게 외워봐야 할 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나날이 하는 공부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이어지는 아이들의 생활과 학교 교육목표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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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할 것 같은 지표는, 제 생각에는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학교에서 제시하는 각종 지표가 '사실'일 경우입니다.  얼마나 좋은 학교이기에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도 그 학교 그 교실에 머물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 중에 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 아이는 몇 명이나 될까요? 교장선생님이 계시는 학교 아이들 중에는 과연 몇 명이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물론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나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란 우리 어른들보다 이 세상을 훨씬 더 좋게 보고, 학교도 우리 어른들보다 더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 세상에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학교를 가고 싶어하는 곱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생활하는 신비한 존재들이므로 우리는 그런 아이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말씀은 학교의 노력, 교육의 힘으로 학교를 좋아하게 된 아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의심스럽다는 뜻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과연 몇 명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겠습니까?

 

좀 엉뚱하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어느 교장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면 그 학교는 이미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로는 좀 틀린 학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야 이놈들아! 좀 조용히 해라!"  "선생님! 도대체 아이들이 왜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이래 가지고야 공부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청소 좀 시키세요, 청소! 청소도 공부의 한 가지입니다. 우선 깨끗하게 해 놓아야 공부가 되든 말든 할 것 아닙니까?"

 

그런 교장일수록, 학교 벽에는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라는 지표를 보기 좋게 써붙이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써붙이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오고 싶지 않고, 한시도 머물고 싶지 않은 학교인데……'  '다른 아이들은 가고 싶어 하는 학교, 머물고 싶어하는 교실이 나에게는 왜 그렇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거릴 아이도 있고, 자괴감을 느끼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가 자괴감을 주는 지표가 되고 있을 것입니다.

 

지저분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청소 같은 건 그냥 두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화장실 청소를 용역으로 처리하는 세태를 참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가정에서는 누군가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조용한 학교, 깨끗한 학교가 좋지 않을 리도 없습니다. 조용하고 깨끗한 곳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다만 교장이 그런 걸 챙기고 단속하고 잔소리하는 학교는 '이미 끝장난 학교'라는 뜻입니다.  솔선수범한다고 교장이 나서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교장이 나서서 청소나 하는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솔선수범할 것이 없어서이겠습니까.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  그 학교 교육, 그 학교 아이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도 않은 채 우선 그걸 학교 벽에 커다랗게 써붙인 학교는 말이 앞선 학교, 자랑부터 하고 싶은 학교입니다. 그 학교의 교장은 그런 사람입니다.

 

말이 앞선 교육자, 자랑을 늘어놓는 교육자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일에 우리가 얼마나 진저리를 쳤습니까? 심지어 ○○ 여왕 ◇◇◇ 선수를 우리 손으로 직접 길러낸 것처럼, 그게 자신이 지휘하는 교육정책의 힘에 의한 결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교육감도 봤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인물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꼴이란…… 오지선다형 문제풀이에 혈안이 되게 하는 교육이나 중시하다가 강연을 할 때면 그런 이야기를 해대는 그런 인간들이, 생각이 다른 교육자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교직사회를 만들기는커녕 선거를 위해 "내 편 네 편"으로 나누기나 했으니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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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11,000여 개교이니까 교장은 별로 대단한 자리는 아닙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그 학교를 떠나거나 퇴임을 하면 모두들 금방 잊어버리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할 동안에는 교장은 결코 별 수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영향력이야말로 엄청난 존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교장은 사사건건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거기다가 교직원회의도 열어야 한다면 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투덜댑니다. 교직원들이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 꼴이 보기 싫다면서 아예 회의 자체를 하지 않도록 한 교장도 있습니다. 그런 교장일수록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 교육장들의 시시콜콜 온갖 것에 대한 지시명령을 전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나 그런 내용을 담은 공문서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어느 것 한 가지 교장이 '마음대로' 해서 괜찮은 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그 학교 교육의 목표와 내용, 방법, 평가, 각종 교육지원활동 등에 대하여 방치해 둔다면 몰라도, 하나하나 짚어보면 사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껴야 할 일들은 바로 그런 일들입니다. 그런 일들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장이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비중이 크고 많은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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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교장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개선문을 통과하셨다"는 축하를 드리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교장이란 그리 대단한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펑펑' 놀아도 좋을 자리도 아니며, 단지 이제 드디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 교원이 되었고, 선생님들을 잘 지원해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그런 마음, 그런 역량을 갖추지 않은 채 교장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번 멋진 교장이 되어 보십시오. 아이들을 사랑하고 선생님들을 한없이 믿고 지원해 주시는 멋진 교장이 되십시오.

저는 날개는 없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을 궁금해하며 지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