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성적'과 '살벌한 엄마'

by 답설재 2011. 10. 24.

성적이 떨어졌다고, 그 아이를 낳은 '엄마'가 "그 아이의 책상에 톱질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너는 살아봤자 사회에서 쓰레기야. 아무리 주워 키운 자식도 그렇게는 안 크겠다."

분을 참지 못한 그 엄마는 구타도 서슴지 않았고, 밥을 먹고 있을 때나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 발길질을 해댔답니다.

 

드디어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이 엄마의 비뚤어진 교육열로 파탄을 맞게 된 부부에게 이혼을 해버리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교육을 핑계로 자녀에게 인격적 모독과 구타를 했고, 자신의 훈육 방법을 나무라는 남편을 일방적으로 매도했으며, 아들에게도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갈등을 심화시킨 점 등을 고려하면 이 가정이 파탄을 맞게 된 주된 책임은 이 엄마에게 있다고 밝혔답니다.

항소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동아일보, 2011.9.29.A14.

 

 

 

 

신문기사는 '살벌한 엄마'라고 표현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 같아서 그렇게 이름붙였을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본 우리나라 '엄마'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원 세상에! 별 희한한 엄마가 다 있네!" 그랬을까요? 혹 "별 미친 사람 다 봤네." 그런 험악한 한 마디를 덧붙인 엄마는 없었을까요?

그렇다면 '톱질한 그 엄마'를 경계선 저쪽에 두고, 모두들 자신은 경계선 이쪽에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육청의 장학사님들, 교육장님들, 교육감님들, 교육과학기술부의 기라성 같은 행정가들과 장관님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도 궁금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자라면, 특히 이 나라 교육계의 지도자라면 이 엄마가 받은 법원의 판결에서 그리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주 살벌한가, 많이 살벌한가, 그저 그런가, 조금만 살벌한가, 참으로 바람직하게 전혀 살벌하지 않은가로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교육행정가들의 잘못도 이런 식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한다면, 좀 무책임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 그런 교육자들은 우루루 선 이쪽으로 건너온다 하더라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가 없는 교육청의 높은 분들이나 교육과학기술부의 높은 분들이라도 이 말의 뜻을 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선발을 위주로 한 평가에 얽매여 있는 한, 1등을 한 학생이 최고로 '좋은 사람' 혹은 '착한 사람' '멋진 사람' '모범인 사람'으로 취급되는 한,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세상을 살아갈 재미도 없어야 하는 인간인 사회로 흘러가는 한, 학교란 곳은 무엇이든 수많은 활동의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한,

………………

더 쉽게 말한다면, 학교란 곳이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공부를 시키지 않고, 세상의 엘리트들이 만든 지식을 머리가 터져 나가도록 많이 많이 외워서 시험지의 문제를 푸는 데 활용하는 '훈련'에 치중하는 한,

 

그 누구도 저 '엄마'가 받은 판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더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좀 가혹한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피사'(PISA), 혹은 '팀즈'(TIMMS)라고 해서 국제학력평가연구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계 주요국 학생들의 성적을 비교해보는 연구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 평가에서 매번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학력비교연구에서 좋은 성적을 자랑할 필요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공부의 결과가 아니고, 더구나 그런 학력비교연구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성적은 좋은 반면 부끄럽게도 "공부를 하는 것이 거의 행복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번 그 결과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면서 성적은 좀 낮아지더라도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고 학교생활이 행복하다"는 항목에서 높은 반응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노벨상! 노벨상!" 하는데 즐겁게 공부할 수가 없는 학교에서 어떻게 노벨상을 받을 인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공자도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거꾸로 된 질문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초에 발표된 2009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중국의 상하이가 읽기, 수학, 과학 전 영역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간 부동의 1위였던 핀란드조차 제쳐버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누가 중국 상하이의 교육이 세계 최고이고 핀란드보다 우수하다고 하겠습니까.

 

 

좀 늦었지만, 어쩌면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교육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교육자들이 교육행정을 바로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 유명한 교육학자들이 교육행정가들을 제치고 나서서 '진정한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저런 엄마가 나오는 것은 우리 교육이 잘못된 탓이며, 이대로 자꾸 가면 안 된다"는 걸 강력하게 주장해 주면 좋겠습니다.

 

물론 1등을 하는 학생이 존중 받는 학교, 그런 학생이 그 적성대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세상이어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꼴찌를 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결코 불행할 것까지는 없는 학교,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다못해 세금을 누가 더 많이 내게 될지는 나중에 봐야 할 일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