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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1970년대의 어느 날

by 답설재 2011. 9. 25.

 

 

 

 

 

       1970년대의 어느 날      

 

 

 

 

                                                                                 

 

 

 

 

 

 

  1970년대 중반이나 후반의 어느 날이었을 것입니다.

  옷차림이나 분위기나 다 촌스럽습니다.

  저 즈음엔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고, 힘들었고, 암울했으며, 살펴야 할 주변이 넓어서 지금 생각하면 정작 꼭 살폈어야 할 주변은 살피지 못했고, 그게 두고두고 가슴아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의식하지 못한 채 무작정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그때만 해도 머리칼이 저렇게 멀쩡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저는 변하고 말았습니다. '변하는구나' 싶으니까 사정없이 변해서 "어?" "어?" 하다보니까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내일 아침의 제 모습에 대한 짐작에도 확신이 없는 희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늘 긴장한 상태에서 지켜보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정말이지 저는 자신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젠 머리칼이 더 희게 되거나 말거나 더 빠지거나 말거나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말하자면 포기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놓고 이제 와서 지켜본들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오늘은 아내가 정장을 한 벌 새로 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저 사람이 도대체 쓸데없는 일을 가지고 왜 저러는 걸까?'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언제가 될지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 옷 다 입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왜 그래, 응?" 그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머리칼이 많은, 제대로 붙어 있는 사람들도 어느 날 결국 이렇게 변하게 되고 마는 건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당하지 않은 분은, 부디 정신을 차리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처럼 어느 순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한 힌트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도 어떻게 해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형수술 많이 하기, 미친 척하고 마치 웃으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많이 웃기, 골프를 자주 치고 해외여행 많이 하기, 돈을 많이 벌어서 그걸 끌어안고 부모형제와 친지 등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힘'으로 삼기, 친구를 많이 사귀고 모임을 많이 만들기, 애완견 키우기…… 그런 일들이 왕도가 되는지 어떤지,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도 정말이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무심했던 것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노인들에 대한 무성의, 무관심, 방관, 기피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저는 노인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떄문입니다. 힌트가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건 정말이라는 걸 알려드립니다.

 

  저보다 한참 선배인 분이 이 얘기 읽으면, "자네는 아직 멀었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자신의 변화를 잘 지켜보게." 그럴 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건 그렇게 말할 선배의 생각이고, 이건 제 생각입니다. 저 같으면(제가 지금보다 젊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보며 살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