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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내와 내가 가야할 길: 걸으며 생각하며(Ⅰ)

by 답설재 2011. 8. 19.

 

 

 

 

 

아내와 내가 가야할 길

- 걸으며 생각하며 (Ⅰ) - 

 

 

 

 

 

 

  이런 상태로라도, 심장이나 어디나 아무래도 말짱하지는 않아서 '헉헉'거리면서라도 오래오래 살아보자고 동네 이곳저곳 '핫둘! 핫둘!' 힘차게 걸어다닌다면 남 보기에 역겨울 것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아줌마'도 아닌 주제에……

 

  그렇지만 지금 죽으면 아무래도 좀 일찍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정신을 차리고 '기본적인 정리'는 하고 죽어야 할 것 아닌가, 꼭 그런 뜻은 아닙니다. '정리'래야 뭐 특별할 것도 없으므로, 회한 같은 것만 다 버리고, 잊고, 하면 될 것입니다.

 

 

  딱 한 가지 참 난처한 건, 제 아내가 무서움을 많이 타는 것입니다. 아내는 거실 바닥이든 소파든 어디서든 곧 잠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밤이 되면 구석진 곳은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런 곳은, 이렇게 작은 집이지만 제 발길 아니면 그야말로 발길이 닿지 않을 것 같은 곳이 됩니다.

  아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도 흔히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하고 묻기도 합니다. 특히 장난감 같은 쬐끄만 장농에서는 날씨가 궂거나 개거나 습도의 차이 발생에 따라 걸핏 하면 '뚝' '뚝' 소리가 나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 죽으면 저 사람이 어떻게 지내겠습니까. 이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있겠습니까?

  자식 중의 한 명을 택해 함께 지내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동을 못하게 되고, 붙잡아 가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제 자식들이 못된 것들이어서 그렇지는 않습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냥 그렇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신문에도 났지 않습니까? 아파 병들었을 때 자식의 신세를 지고 싶다는 부모는 100명 중에 겨우 6명이었잖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영 쓰러지게 되면 그 순간 이후엔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은, 아직은, 조금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저곳 병이 들어 그리 원활한 몸이 아니므로 '핫둘! 핫둘!' 팔다리를 힘차게 휘두르지는 못하고, 그저 느릿느릿 동네 길을 걸어 보거나 저 천마산 기슭을 조금 오르다가 내려오곤 합니다. 그것조차 어느 길 모퉁이나 산비탈에서 기우뚱할까 봐 아내는 스틱을 꼭 가지고 다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아내를 위해 연명해야 한다는 것처럼 읽히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이 블로그를 열어보지 않는 것 같으니까 다행이지만, 만약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걸 알게 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죽고사는 문제에 그까짓 내가 무서움 타는 게 대수냐", "뭐 얼마나 생각해 주는 것처럼…… 기가 막힌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젊었던 날, 어디 출장을 간 날 저녁에 연락해보면 아내는 아주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귀가한 날에는 평소처럼 일찍 잠이 듭니다. 게다가 아내는 저와 정반대로 '아침형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조용한 저녁, 아내는 저쪽 거실에서 저렇게 TV 연속극을 보고 있고, 저는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까 어느 날 저녁 저 사람 혼자 저렇게 앉아 있게 되는 것인가 싶고, 그러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죽는 건 아무래도 너무 일찍하다'는 생각이, 언제까지이겠습니까.

  내년쯤엔 '이제 적당한 때구나'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럼 5년 후? 아니, 10년 후?

  그러고 보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고, 언제나 '그래,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어쩔 수 없겠지'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어제는 천안 목천, 제 뼛가루가 묻힐 공동묘지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을 마련한 지 꼭 10년 만이었습니다. 그동안 분주했고, 특히 최근에는 몸이 불편해서 그곳에 가볼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우스울 것입니다. '나는 아직 멀었으니까……' 저도 그럴 수 있는 입장이면 좋겠습니다. 어제까지는 저도 그런 입장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