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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를 곤혼스럽게 하는 '글 쓰는 여우'

by 답설재 2011. 8. 17.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글 쓰는 여우'

 

 

 

 

 

  수필 한 편.

 

 

 

 

 

 

 

 

 

 

 

 

  『한국수필』 제197회 신인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도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땐가, '수필이란 소리없이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 정의한 어느 수필가의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그 미소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걱정으로 바뀌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을 한탄하기 시작했고, 고민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월간 『한국수필』 2011년 7월호의 갈피에 끼워진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략)…

  혹시나 저를 모른다고 하실까봐 조금은 겁이 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용기를 내어 펜을 듭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늘, 제 글의 스승님으로 받들기에 주저없이 부끄런 짓을 합니다.

  그 옛날, 안경 속에서 절 바라보시며 빨간 펜으로 제 원고지에 길을 터주신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후략)…"

 

  제 한심한 기억력을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알아맞추지 못하면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선고를 하듯 저 수필가는 미리 그렇게 썼습니다. 아름다운 한 여인이 꼭 밝혀야 할 깊은 사연을 지녀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한 마리의 하얀 여우로 둔갑하는 저 「전설의 고향」처럼……

 

  보십시오, 미소짓고 있는 저 수필가가 얼마나 총명해 보입니까. 저러니 아마도 적어도 몇십 년 전 그 나날, 설령 담임이 아니라 하더라도, 저의 그 초라했을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억하고 있을 저 여성은, 지금쯤 제 답을 기다리다가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그러면 그렇지' 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이지 저는 밥맛조차 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저 수필가는 손으로 쓴 자신의 편지와 『한국수필』 7월호, 또 한 가지, 그 부군이 직접 제작한 부채(烏竹扇)까지 동봉한 우편물을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제 사무실 책상 위에 '턱' 하니 갖다 놓았으니……

 

  (동봉한 부채는 저의 남편이 쓴 건데 남은 더위를 혼내 주세요!)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저 아이(?)가, 언제, 몇 년도에 글쓰기를 가르친 아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땐 키가 큰 편이 아니었고,

  아무리 어수선한 오후 시간이어도 새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보면서 제 말을 빨아들일 것처럼 듣고 있었던 그 기억들은 꿈결처럼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저 부채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