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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L 선생님의 눈물

by 답설재 2011. 6. 7.

 

 

  L 선생님은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특히 눈이 크고 예쁘지만 그 눈매가 칼날 같았는데,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 오는 길에 동료와 설전(舌戰)을 벌였기 때문에 눈에 날이 서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전을 벌인 것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우리 교육을 성토(聲討)하며 왔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L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귓가를 불어가는 바람소리를 듣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랄까요…… 그렇게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주고, 소나무 숲속처럼 조용하고, 시원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그러나 정신차려 듣지 않으면 그 내용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한번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이내 "그 부분은 다시 한번 들려주시겠습니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러므로 그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정신차려서 들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날, 지난 4월 초순 어느 날,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L 선생님은 제 독자입니다. 아마도 학교 교육과정에 관한 제 글을 읽은 순간부터 저와 친한 사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설픈 글이겠지만 제 글을 읽어본 교원들 중에는 제 글에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고도 합니다. L 선생님은 전화로 제 글을 일일이 베껴써본 것처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우연히 그분이 쓴 글 한 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 글의 분위기가 제 글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제 분신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글을 함께 쓴 것 같기도 하고, 흡사 제가 그렇게 써라고 이야기해준 것 같기도 했습니다.

 

 

 

 

  L 선생님은 어쨌든 처음 만난 여 선생님이었는데, 우리는 그분이나 저나 정말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저로 말하면, 그 선생님이 초면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연유로 오랫동안 제 가까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의례적이거나 탐색적인 대화도 없이 막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분이 한 이야기 중에서 핵심이 아닌 것은 딱 한 가지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식당의 종업원이 우리를 기둥 옆의 좌석으로 안내하자 어떻게 여왕을 그런 자리에 앉히려고 하느냐는 듯 단호한 태도로 "싫다!"고 했고, 저는 그런 그녀를 옹호하고 싶은 느낌으로 그 종업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지금까지 교사로 살아오면서 억눌러왔던 그 감정을 제게로 와서 한꺼번에 다 풀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L 선생님의 교육관(敎育觀)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얼마든지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날 그 식당에서 내게 무엇을 얘기했는지 구체적인 것은 도무지 한 가지도 기억해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요약한다면, 그녀는 교육에 대해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녀의 뜻을 펼치기가 어려웠으며, 이해해 주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 것 같습니다.

 

 

L 선생님의 교육관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교육관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당장 한두 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바로 헤어졌습니다. 점심값은 당연히 제가 냈습니다. 왜냐하면 L 선생님은 열렬한 제 독자이고, 제게는 그것이 한없이 고마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L 선생님은 한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했고, 한참동안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 눈물은 쌓인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저를 만났기 때문이었고, 그러므로 자연스런 것이어서 저는 그분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덧붙이면 그런 그 선생님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냥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교육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선생님께서 시도하신 일들이 떠올라요. 선생님은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미 다 하신 일들인데 그들은 이제 와서 새로운 것인양 그걸 혁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L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 때 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다른 점이 있긴 합니다. 그들은 한 학교당 몇 억원씩의 예산을 주고받고 있고, 학교에서는 혁신파와 기존 세력 등의 패거리를 지어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저는 별도의 예산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나라 교육이, 이 나라의 국력과 함께 발전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치면 세계에서 가령 20위 안에 든다면 교육도 20위 안에 들어야 제격이지 그렇지 못하면 '불한당'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발전, 그 길이 제 눈에는 분명해 보이는데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그 한스러움을 안고 퇴직해야 하는 것이 또한 한스러웠습니다.

 

  그런 제 뜻을 이해해주는 멘티를 두고 싶었는데, 동료들은 오해만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L 선생님이 제 멘티이고, 드디어 그 멘티를 만났으므로 이제 그 한스러움을 좀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시시한 주제에 "교육에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