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L 선생님은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특히 눈이 크고 예쁘지만 그 눈매가 칼날 같았는데,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 오는 길에 동료와 설전(舌戰)을 벌였기 때문에 눈에 날이 서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전을 벌인 것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우리 교육을 성토(聲討)하며 왔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L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귓가를 불어가는 바람소리를 듣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랄까요…… 그렇게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주고, 소나무 숲속처럼 조용하고, 시원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그러나 정신차려 듣지 않으면 그 내용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한번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이내 "그 부분은 다시 한번 들려주시겠습니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러므로 그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정신차려서 들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날, 지난 4월 초순 어느 날,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L 선생님은 제 독자입니다. 아마도 학교 교육과정에 관한 제 글을 읽은 순간부터 저와 친한 사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설픈 글이겠지만 제 글을 읽어본 교원들 중에는 제 글에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고도 합니다. L 선생님은 전화로 제 글을 일일이 베껴써본 것처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우연히 그분이 쓴 글 한 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 글의 분위기가 제 글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제 분신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글을 함께 쓴 것 같기도 하고, 흡사 제가 그렇게 써라고 이야기해준 것 같기도 했습니다.
Ⅱ
L 선생님은 어쨌든 처음 만난 여 선생님이었는데, 우리는 그분이나 저나 정말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저로 말하면, 그 선생님이 초면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연유로 오랫동안 제 가까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의례적이거나 탐색적인 대화도 없이 막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분이 한 이야기 중에서 핵심이 아닌 것은 딱 한 가지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식당의 종업원이 우리를 기둥 옆의 좌석으로 안내하자 어떻게 여왕을 그런 자리에 앉히려고 하느냐는 듯 단호한 태도로 "싫다!"고 했고, 저는 그런 그녀를 옹호하고 싶은 느낌으로 그 종업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지금까지 교사로 살아오면서 억눌러왔던 그 감정을 제게로 와서 한꺼번에 다 풀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Ⅲ
저는 L 선생님의 교육관(敎育觀)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얼마든지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날 그 식당에서 내게 무엇을 얘기했는지 구체적인 것은 도무지 한 가지도 기억해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요약한다면, 그녀는 교육에 대해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녀의 뜻을 펼치기가 어려웠으며, 이해해 주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 것 같습니다.
L 선생님의 교육관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교육관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당장 한두 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Ⅳ
우리는 점심을 먹고 바로 헤어졌습니다. 점심값은 당연히 제가 냈습니다. 왜냐하면 L 선생님은 열렬한 제 독자이고, 제게는 그것이 한없이 고마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L 선생님은 한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했고, 한참동안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 눈물은 쌓인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저를 만났기 때문이었고, 그러므로 자연스런 것이어서 저는 그분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덧붙이면 그런 그 선생님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냥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Ⅴ
"진정한 교육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선생님께서 시도하신 일들이 떠올라요. 선생님은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미 다 하신 일들인데 그들은 이제 와서 새로운 것인양 그걸 혁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L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 때 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다른 점이 있긴 합니다. 그들은 한 학교당 몇 억원씩의 예산을 주고받고 있고, 학교에서는 혁신파와 기존 세력 등의 패거리를 지어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저는 별도의 예산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나라 교육이, 이 나라의 국력과 함께 발전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치면 세계에서 가령 20위 안에 든다면 교육도 20위 안에 들어야 제격이지 그렇지 못하면 '불한당'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발전, 그 길이 제 눈에는 분명해 보이는데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그 한스러움을 안고 퇴직해야 하는 것이 또한 한스러웠습니다.
그런 제 뜻을 이해해주는 멘티를 두고 싶었는데, 동료들은 오해만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L 선생님이 제 멘티이고, 드디어 그 멘티를 만났으므로 이제 그 한스러움을 좀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시시한 주제에 "교육에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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