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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 얼굴 Ⅸ (국민배우 안성기)

by 답설재 2011. 5. 30.

 

조선일보, 2011.5.24.C7. 베스트셀러 「기호식품 넘어 생활필수품으로… 대한민국 대표 커피로 자리 잡다-동서식품 '맥심'」에 나온 사진

 

 

 

그에게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물으면 언제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온화하게 부드럽게 그러므로 착하게 생각하라고 권유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겠지요. '나이는 나보다 많은 것 같은데 왜 저렇게 까칠할까?'

 

 

 

 

오래 전에는 그가 광고에 나오는 경우는 동서식품 '맥심' 말고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광고 한 가지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겠고, 그의 명성으로 보면 다른 광고에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도 그렇게 했습니다.

광고에 많이 나오는 것이 적게 나오는 것보다 더 좋은 건지, 한꺼번에 수억 원을 받는 것이 수천 만원, 수백 만원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건지…… 그런 걸 떠나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가 저렇게 커피잔을 들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까 '잘하는 척' 커피를 마셔대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하도 마시니까 하루에 예닐곱 잔씩 마셔대도 괜찮고, 목구멍으로 커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마셔도 잠만 잘 오고, 설탕과 프리마를 섞지 않은 원두커피는 호사스러운 경우이고 전철역에 들어가면 거르지 않던 자동판매기 커피까지 세상의 그 어떤 커피도 나름대로 맛과 향을 자랑하고 있으니까 그만큼 마셨으면 여한(餘恨)이 없다고 해야 할 텐데도 그가 저처럼 아름답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도 원수지은 것처럼 말고, 저렇게 여유롭게 온화한 마음으로 마셔볼 걸……'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내겐 그가 지금 들고 있는 저 잔(盞) 같은 달항아리빛 커피잔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마시지 뭘 그러느냐 하면, 아무래도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하루에 한두 잔은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 아내는 "그렇지 않다. 그걸 권장한 것이 아니라 마지못하는 경우라면 그 정도 마셔서는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나의 경우 어느 것 한 가지도 잘 한 것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아내의 그 주장마저 꺾을 수는 없는 형편이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혼자 있을 때 작정하고 커피콩 가는 기구를 꺼내어 제대로 한 잔 만들어 마신 날 밤,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아 고생한 적도 있었으니 내심으로도 '이제 마시지 말아야 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날 밤에는 아내에게 커피 얘긴 꺼내지도 못하고 잠을 설치게 된 무슨 핑계를 대어 모면했습니다.

'아, 잘 나갈 때 더 좋게 마실 걸…… 안성기처럼 마시며 살 걸……'

 

 

 

 

 

 

 

내가 나가는 사무실 문을 열면 정면 파티션에 이 화보가 붙어 있습니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맥심 광고 말고는 이런 광고에는 나왔습니다. 하기야 오래 전부터 유니세프(UNICEF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 한국위원회의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도 유니세프에 성금을 내는 것이 분명하지만 한 번도 몇 억을 냈네, 하고 액수로 경쟁하는 듯한 혹은 우리 같은 사람은 평생을 가도 엄두도 못내게 하는, 그런 발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점은 안성기가 책을 읽는 모습이 담긴 이 화보가 그곳에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도 밤낮없이 붙어 있는데 실제로 이 화보를 쳐다본 것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허구한 날 그 문을 들어서며 무엇을 쳐다본 것일까요? 문을 밀고 들어설 때만은 눈을 감은 것도 아닌데……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왔고 더구나 아이들 교과서 만드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만도 30여 년인데……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 ……

그를 만나면 커피 한 잔 하자고 할 것 같습니다. '언제 만나지기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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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2017.2.17.

이제 다른 광고들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나도 커피를 좀 마시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아침에 원두커피 한 잔만 조심스럽게 마시다가 이젠 '어떠랴' 혹은 '설마' 하며 오후에도 더러 한 잔씩 마시고 외식을 하면 입가심을 한다는 핑계로 험하다고 여기던 그 믹스커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너도 그러는데 나라고…….'

그런 심사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