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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金春洙 「내가 만난 이중섭」

by 답설재 2011. 5. 13.

 

「길 떠나는 가족」, 1954, 종이에 유채, 연필, 20.3×26.7㎝, 삼성미술관 Leeum(2005), 『이중섭 드로잉: 그리움의 편린들』, 133쪽.

 

 

 

 

아, 담배…… 담배를 피우는, 담배에 몰입한 '이중섭'

 

 

내가 만난 李仲燮

 

                                                     金春洙

 

光復洞에서 만난 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金春洙 詩集 『南天』(槿域書齋, 1977), 88~89쪽.

 

 

 

DAUM에 소개된 '이중섭' 이미지 10개 화면 중 첫째 화면

 

 

西歸浦에 가면 '이중섭미술관'에 가 보십시오. 西歸浦에만 가면 '이중섭미술관'에 가보십시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는 李仲燮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성악가 김동규는 TBC 방송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이중섭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이중섭은 삶을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끊임없이'라고 했을 때 '아, 이중섭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워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려는가보다' 했는데,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하는 걸 인상깊게 들었습니다.

 

우리는 음악가나 시인, 화가를 얼른 일어나 맞이하고, 아무리 잘난 체하는 사람도──정치가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부터 앞자리에 앉히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삶이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는 걸 우리들 자신의 삶으로 체험하며 살아가지만, 그들은 그럴 뿐만 아니라 거기에 더하여 그걸 작품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는 것 아닐까, 그 방송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화가, 시인, 음악가 같은 예술가들이──온 삶으로 표현하며 살아간 이중섭처럼──그렇게 표현하는 걸 가만히 앉아서 읽고 듣고 바라볼 수 있으므, 우리는 그들에게 나름대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그 외로움 서글픔 그리움에 대한 위로를 받고 있으므로 미안하고 고마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해야 하겠다는 듯 그 아침나절에 김동규는 12분이 넘는 PABLO de SARASATE의 Carmen Fantasy도 들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