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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A교사에게 보내는 답장

by 답설재 2011. 6. 5.

 

 

 

 

 

A교사에게 보내는 답장

 

 

 

 

 

 

 

  A 선생님.

  많이 지친 것 같습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을 쉬게 해야 합니다. 그게 사실은 어렵습니다. 나도 정년퇴직까지 했으면서도 자꾸 욕심을 내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옥학교 프로그램은, 나도 봤으면 싶었습니다. 프로그램 소개만 읽고 ‘언젠가 한번 방송된 내용이지’ 하고 덮고 말았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고,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것도 생활의 여유 혹은 취미활동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취미활동이 직업이 되고, 그걸로 자아실현을 하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한옥학교에서의 그 생활이 여유나 취미활동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일이긴 해도, 그곳에 가 있는 것 자체가 짜증나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면 교사들처럼 한 달에 2,3백만 원을 받게 되고 그걸로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그곳에 가 있는 것 자체가 사람에 따라서는 지옥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보다 쉬운, 가령 바닷가 모래알을 헤아린다 해도 그 바닷가가 지옥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내가 보기에, 내가 경험한 바로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교사만큼 쉽고 아름다운 직업도 없습니다. 동료나 상사가 괴로움의 근원이라면 가능한 한 마음에서 멀리하면 훨씬 좋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지내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을 만나야 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아이들은 교사에게 괴로움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도 교사에게는 괴로움인 그 행동이 사실은 교사의 따듯한 손길을 갈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고귀한 존재가 아이들이고 따라서 교사도 덩달아 고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퇴임한 나에게는 그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도 그 만남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에 거리낌 없이 아이들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교사입니다. 교사는 더구나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온갖 활동을 함께할 수 있고, 심지어 평가까지 합니다. 교사들은 그 호사스러움을 모르고 지내기 쉬우며, 한심한 경우에는 마치 그 교실을 지옥같이 느끼기도 합니다.

 

 

 

 

  화천의 한옥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목재와 소통하며 산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소통은 학교에 비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학교는 예쁜 아이들과 소통하는 곳 아닙니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존재인 그 아이들, 거짓말을 하면 당장 표가 나는 아이들, 나쁜 짓조차 어른이 시켜야 겨우 해내는 아이들, …… 나는 그 아이들을 설명할 길이 없고, 다만 학교는 그런 꽃 같은, 곤충 같은, 시냇물 같은, 별 같은 아이들과 소통하며 지낼 수 있으므로 한옥학교에 비하면, 좀 저속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업연구도 선생님을 억누르는 것 같습니다. 한번 해볼 만한 일입니다. 수업은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며 연출하는 종합예술입니다. 준비가 많으면 더 좋겠지만 성공 여부가 꼭 준비의 양과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예술의 경과와 결과가 어떻게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운명이나 운수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 종합예술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초조하고 불안하고 피곤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이들 곁에 있을 수가 없어 유배지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곳에서 학교에 있는 선생님을 한없이 부러워합니다.

  가혹한 말일지 모르나, 그렇게 좋은 '학교'에서 그 영혼을 치유하기가 어렵다면 한옥학교에선들 치유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덕무 이야기를 읽었습니까? 교과서처럼 딱딱한 책을 읽으며 외로운 싸움으로 세상을 고쳐 나가는 학자들도 있고, 선생님처럼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나처럼, 부드러운, 쉬운, 재미있는 책들만 골라 읽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학자들은 싫어도 그걸 읽고 있으며, 우리는 세상살이가 까칠하다면서 머리를 부드럽게 하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 그런 재미있는 책을 골라 읽고 있습니다.

 

 

 

 

  A 선생님.

  부디 생각을 바꾸기 바랍니다.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새로운 눈으로 그곳이 참 좋다는 걸 발견하면 될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학교가 좋았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몸 담고 있었던 학교들도 다 까칠한 학부모들이 찾아와 항의하기도 하고, 교육청에서 쓸데없는 일도 시키고, 선생님들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허둥지둥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학교였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학교들이 동화책 『쿠오레(사랑의 학교, 데 아미치스)』에 나오는 학교인 줄 알고 지냈습니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에 달렸습니다. 순전히 그것뿐입니다.

 

  내 설명이 어렵습니까?

  마음을 누르고 달래며 살아갑시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 깊이 행운을 빌고 있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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