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교사의 갈등
선생님.
5월, 한 달 내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이 있더니 오늘은 기어코 눈에 충혈이 일어나고 뿌옇게 흐려 있습니다. 몹시도 피곤하다고 몸이 먼저 말을 해오나 봅니다. 쉬어야겠는데, 참 쉬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고, 맘은 천근만근, 몸도 천근만근… 따갑고 흐려진 눈으로 제 옆을 흘러가는 시간을 들여다봅니다.
선생님,
<다큐 3일>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72시간 동안 취재한 강원도 화천 한옥학교를 봤습니다. 과감히 생업도 접고, 학업도 접고, 산골에 들어가 한옥 만드는 것을 배우는 사람들의 신념을 들으며, 저를 끌어당기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제 자리가 거기 있는 듯한 느낌?
가르침을 주는 스승만 옆에 계시다면, 저도 묵묵히 종일토록 나무를 깎으라면 깎고 다듬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그런 일 같아요. 비로소 그 일을 발견한 것 같아요.
6월 11일에 수업발표대회가 있어요. 괜히 신청해서 화를 자초했어요. 지난번의 수업안 작성 대회보다 더 어마어마하대요. 어쩌면 좋죠? 하루하루 신경만 잔뜩 쓰이고,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도대체 즐거운 마음은 없고, 스트레스만 ‘잔뜩’이고…
숲속에 위치한 한옥학교, 그 안에서는 이런 소모적인 일 말고, 따로 또는 같이 묵묵히 나무와 소통하며 뭔가를 만들어 가는 일이 꼭 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은 확신이 들어요.
더 나이 들어서 비겁해지기 전에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을 찾아내서 도전해보고 싶어요. 교사 말고… 제 자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 제 영혼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
강원도 화천을 많이 생각하는 밤입니다.
선생님은 무얼 하실까요?
참, 이덕무 이야기를 읽었어요. 박제가, 유득공, 홍대용, 박지원 등등, 국사책에서 보던 실학자들의 이름이 교과서 속 딱딱한 국사 지식으로가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좋은 책이었어요.
선생님은 행복을 주는 일을 하고 계시겠죠?
쿵푸팬더 Ⅱ가 개봉됐어요. 거기 우그웨이 대사부가 나오는데, 전 그 사부가 꼭 선생님 같답니다. 시간 내서 그 영화 보러 가려구요. 영화 보면서 선생님 생각 하려구요.
잘 지내세요.
어쩔 수도 없지만 뵙고는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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