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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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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관료주의

by 답설재 201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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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일이 일본 문제로 채워진 것 같습니다.

 

「原電 격납기 손상… 도쿄서도 방사선 검출」

「日 증시 10.5% 대폭락」

「"최후 보루마저…" 최악 시나리오 접어들었다 : 2호기 연료봉이 녹아 격납용기 뚫고 나오면 대재앙, 4호기 폐연료봉 불타면 '죽음의 재' 퍼져」

「도쿄전력(원전관리 민간회사) 빈말만 믿은 日정부, 5일 지나서야 통합대책본부 발족 : 폭발사고 잇따르는데 제때 주민대피 조치 안 해 국민들 被曝 방치한 셈, 관리 시스템 신뢰 붕괴, 관방장관 "나도 정보 부족"」

「"原電서 유출된 방사성물질量 인체건강 미칠 수준 이르렀다" 日정부 대변인 발표」

「후쿠시마 지역 요오드제 23만 병 긴급 배포」

「<후쿠시마 르포> "쓰나미는 버텼어도 방사선은 못 버텨" 후쿠시마 탈출 행렬」

「<요네자와 르포> "실종 남편 찾는 건 사치… 당장 떠나야 아들이라도 살려"」

「<센다이 르포> "이겨낼 수 있어요" 그들은 조용히 내일을 말하고 있었다」

「<센다이 르포> "아기 침대가 있었어… 어딘가 아기가 있을 텐데" 한국 구조대, 필사적으로 폐허를 뒤지다」

「<야마가타 르포> 상상초월 대재앙엔 '매뉴얼 사회' 일본도 어쩔 수 없었다」

「日주가 이틀 새 710조원, 아시아 1000조원 증발 <일본 증시 곤두박질>」

「<세계 증시 동반 하락> 日 해외 투자금 회수 땐 세계 주가·자산 가격 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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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의 한 신문에서 뽑은 기사 제목입니다.1 하루치가 이렇습니다. 평상시라면 저 중 한 가지만으로라도 얼마나 놀랄 일이겠습니까?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다 긴박하고 엄청난 일들입니다.

그 속에 정부를 비판하기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은 기사도 보입니다. 「日언론 정부 비판 시작 : 그동안 국익 내세워 자제, 원전 폭발 등 사태 악화에 "위기관리능력 부재" 질타2

 

3·11 일본 대지진 5일째에 드디어 그런 비판이 나왔다면 있을 법한 일입니다. 일본 정부라고 실수·실패가 없겠습니까. 사고만 났다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비난을 받는 정부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란 으레 그런 것이라면, 그런 나라의 언론은 아예 상시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를 비판·비난할 각오와 준비를 갖추고 있을 나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뻔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 정부의 공무원은 아무리 잘 해도 칭찬을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고, 그런 언론에게는 '걸리면 끝장(죽음)'이고, 국민들은 정부나 언론만 쳐다보면 짜증부터 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렇지는 않다면 다행이지만, 우리 언론도 이번 일에서 보여준 일본 언론의 모습을 거울삼아 독자들의 마음과 국익을 위해 좀 자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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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일본의 관료주의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3

 

"일본의 통치 엘리트들은 미국의 세련되지 못한 관료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미국의 엘리트 집단은 정치인이다. 정부의 임명직 고위직과 의회의 관리들이다(두 집단 모두 우연하게도 다른 선진국들과는 전혀 다른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통치 집단은 관료주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그들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는 또, 비판을 위한 전제이긴 하지만, 일본의 공무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4

 

"…… 오스트리아나 전성기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공무원 중심의 관료주의가 주도하는 국가다. 정치가들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들은 언제나 무능한 사람으로 의심을 받는다. 만약 정치가들이 무능하거나 부패한 사람으로 판명되면, 그것은 일찌감치 예상된 일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부패했다거나 무능력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엄청난 충격을 준다. ……"

 

언젠가 이 블로그에서 일본인들은 민원 문제로 관청을 방문할 때 결코 고위직을 찾지 않는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고위직이든 말단이든 민원에 대한 관점은 같고, 그 대답도 같기 때문입니다. 하위직이든 고위직이든 동일하게 안 되는 건 "안 된다", 되는 건 "된다"고 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담당자만 만날 수 있어도 고마워할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그동안은 일본과 '달랐습니다'. 담당자가 안 된다고 하면 "여기 제일 높은 사람 나오라고 해!" 호통을 치기가 예사였고, 그것은 말단과 고위직의 말이 다른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행정이 엉망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세계적으로 그렇지 않은 특별한 나라 중의 하나가 일본이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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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사에서 간 나오토 총리가 처음에는 잘 대처하는 듯하다가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한 면을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고, 어제오늘은 내각이 흔들린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의 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참 어려운 시기가 되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 문제의 파악과 진정이 일단락되고 나면, 그 다음에 할 일과 할 말들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주체해야 할 피해 상황이 너무도 참혹해서 국민들이나 정부나 절망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일본 정부가 관료주의의 그 위력을 잘 발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약하다 해도 정부가 마음을 다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국민들이 따를 것 아니겠습니까.

 

 

 

중앙일보, 2011.3.16. 1면.

 

 

중앙일보, 2011.3.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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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11.3.16.
2. 그러나 기사 내용을 읽어보면 '질타'는 아니고 '비난' 정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신문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언론은 과장하고 과격하게 표현하고 그러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3. 피터 드러커·이재규 옮김, 『Next Society』(한국경제신문, 2003, 제1판63쇄), 340쪽.
4. 위의 책, 286~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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