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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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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패」

by 답설재 2010. 12. 29.

 

 

 

「한국의 실패」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때의 기사입니다.

  우리나라가 꼭 유치하고 싶어했지만, 기온이 50℃에 육박하고 영토가 겨우 경기도만한 카타르가 그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이 있었지만 카타르는 홍보 동영상을 감동적인 드라마로 구성했고, 우리는 스토리도 감동도 없는 지루한 홍보물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기사에서 카타르의 동영상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특히 스토리 영상은 이란 영화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 같은 유의 서정적인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동네 놀이터에서 맨발로 공을 차는 아이들, 개최지를 발표할 시간이 오자 서둘러 집으로 뛰어간다. 일하던 동네 할아버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청년들의 눈도 모두 TV를 향한다. '월드컵엔 이스라엘 팀도 오고, 아랍 팀도 와서 함께 경기를 하겠지.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하는 어린이의 말이 자막으로 흐른다. 중동에서의 월드컵이 왜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감성으로 설득한다.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고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 뒤로 흰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반면 한국의 동영상은 …(후략)…」

 

  더 읽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걸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관계자들이 좋은 공부를 했겠지. 다음에는 정말로 잘 대비하겠지.'

  씁쓸한 마음을 그렇게 달랬습니다.

 

  사실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 사진 사이의 부제(副題)들입니다.

  「보여주려는 쪽 생각만 담고」

  「자랑만 나열해」

  「……」

  「여기저기서 간섭·주문…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간 경우」

 

  우리 교육이 그 꼴 아닌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얼 어떻게 배우고 싶은지 물어보기나 하는가,

  가르쳐주려는 쪽 그러니까 기성세대들이 판단해서 선정한 지식을 생짜로 주입시키는 데 혈안이 된 교육, 그런 지식을 나열해 놓고 한없는 강의와 문제풀이로 일관하는 교육, ……

 

  만약,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식으로 나열한 지식 패키지와 카타르 식 감동 드라마로 된 지식의 패키지를 보여주며 "얘들아, 어느 것을 배울래?" 묻는다면 큰일이 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지요.

  저는 단지 …… 교육이 그 모양이면 나중에 하는 일도 그 모양이 아닐까, 우리가 회의하는 공부를 잘 시키지 않고 대학입시준비에 매몰된 주입식 교육을 하고, 그것조차 "맞느냐 틀리느냐?" "○×를 해라", "잔소리 말고 ①②③④⑤ 중에서 딱 한 가지만 골라라!" 그런 교육을 일삼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도 '죽자사자' 저러는 것이 아닐까, 그런 현상이 이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좀 걱정스러워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걱정 말고 네 걱정이나 해라, 그러시면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하기야 "얘들아, 우리 식으로 배울래, 카타르 식으로 배울래?" 그걸 물어보는 얼빠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안심하고 있겠습니다. 다만 저는 단지 …… 단지 ……

 

 

 

 

조선일보 2010.12.11. 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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