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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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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육의 승리를 위한 기원

by 답설재 2011. 3. 16.

 

 

 

일본 교육의 승리를 위한 기원

 

 

 

사진 출처 : 조선일보 2011.3.14.A13, 「3·11 일본대재앙 : 바다야, 어쩌란 말이냐」 사진설명 ▲ 지난 11일 강진에 이어 발생한 쓰나미가 이와테(岩手)현 미야코(宮古)시 방파제를 넘어 도로에 서 있는 차들을 덮치고 있다. 방파제 밖의 물 높이가 육지보다도 높다. (사진=마이니치신문)

 

 

 

 

 

  사상 유례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악의,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그렇지 않을까 싶은 일본의 대재앙을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저들의 조상이 예전에 우리를 상대로 저지른 일들을 상기하게 되는 것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러나 가차없는 자연, 인간의 과학기술쯤은 가소롭다는 듯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위력으로 예보 10분만에 밀어닥쳤다는 그 단호함에 대해, 그동안 바로 그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잘난 체하던 우리들 인간으로서의 무력한 모습을 보며 가슴아프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저 재앙이 얼른 끝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앞서거니 뒷서거니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나가는 '즐거운' 날을 기다리는 마음도 깊다.

 

  일본은 무서운 나라다. 특히 교육이 그렇다. 교육만을 생각하면 우리가 저들과 겨루어 이겨낼 수 있을까 싶은 것이 솔직한 토로이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부터 철저하게 가르친다는 일본의 교육이, 인간으로서의 기초·기본을 제대로 형성해 준다는 것을 이번의 참사 속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연일 일본인들의 훌륭한 시민의식을 전하고 있다.

 

  ○ 침착한 일본인들 '상상초월' : 초등학생들 가방 머리에 이고 훈련하듯 매뉴얼대로 대피소에, 최초 경보 발령한 후 건물 안에 머물던 시민들 30분 안에 대피소에 모여, 지하철이 멈춰 서고 "걸어서 다음 역까지 피난하겠습니다" 역무원의 안내에 따라 철로 위를 줄을 맞춰 걸어간 시민들,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도 마치 예행연습하듯 움직인 시민들1

  ○ 선우정 기자가 가본 '질서 있는 일본인' : "지바~센다이 400㎞ 도로 끼어드는 차 한 대도 없어", 주유소·수퍼·화장실… 수백 미터 행렬 가지런히 새치기 한 명도 없어2

  ○ 세계 언론, 철저한 대비·침착한 대응 극찬 - "日 시민의식, 인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 보여줬다" FT, NYT·WP 등 "그들의 인내·용기 대단하고 경이로워", "이런 사태 극복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바로 일본"3

  ○ 빛나는 시민의식 : 내려앉은 도로서 파란불 기다려 길 건너, 사재기·약탈·새치기 찾아볼 수 없어4

  ○ 흔들림 없는 日 시민의식 : 라면·주먹밥 먹을만큼만 구입… 강력사건 하나도 없어, 피난소 담요 부족하자 둘러 찢어 나눠 덮고, 1시간 넘게 전철 기다려도 새치기·아우성 없어5

  ○ 일본의 재난관리시스템 : 유치원 때부터 대비 훈련, 몸에 익도록 반복 또 반복…, 라디오·물·비상식량 든 '재난가방'은 직장인 필수품6

  ○ 가는 곳마다 줄, 줄… 미야기 주유소 앞 700m 차량 행렬7

  ○ 절제·준법·질서·배려 "日서 배워야 할 4대 가치", "집단의 룰 지키는 게 타인에 폐 안 끼치는 길" 생각, 언론도 달랐다 : 시신·부상자 현장보도, 선정적 기획기사 없어8

  ○ 불평도 눈물도 경적도 없어… 구조된 후에도 "폐 끼쳐 죄송"9

 

  그곳은 영화에서처럼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상황이 전개되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화장실 대란… 악취·배설물에 인간다운 생활은 '사치' : 피난소엔 암모니아 냄새… 공공화장실마다 '장사진', 백화점·편의점도 폐쇄해, 먹는 것 다음으로 큰 고통」 같은 수많은 기사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루스 베네딕트(1946년)는 질서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비난·조롱, 경탄·칭송을 떠나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먼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가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질서와 계층 제도에 대한 그들의 신뢰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어서, 우리들이 계층 제도를 하나의 가능한 사회 기구로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본인의 계층 제도에 대한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 관계 및 인간과 국가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어서 가족, 국가, 종교 생활 및 경제 생활 등과 같은 그들의 국민적 제도를 기술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우리들은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 있다.10

 

  그는 또 일본인의 자제력(스스로에 대한 속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썼다.

 

  미국에서 우리들은 이 목적(자신의 자의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확보. 가령 일본에서는 갓난아이와 노인에게는 최대의 자유와 관대함이 허락된다)을 확보하기 위해서 장년기에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증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은 개인에게 가해진 속박을 최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인간은 그 체력이나 돈 버는 능력이 정점에 도달하게 되지만, 일본인은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취향대로 누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속박이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슈요修養)이요, 자유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굳게 믿는다. 이처럼 일본인은 가장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시기에 도달한 남녀에게 최대한의 속박을 가하는데, 이것은 결코 이 속박이 일생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가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년기와 노년기는 '자유로운 영역'이다.11

 

 

  일본인들의 질서에 대한 그 신뢰, 자제력에 대한 그 신념, 그 외에도 우리가 얼른 생각해낼 수 없고 우리는 실천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은 잘 모르는 일본인 스스로의 시민의식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잘 발휘되기를, 그것도 바로 '교육(敎育)'의 힘으로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고 싶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교육'이야말로 인간이 하는 다른 어떤 활동보다 빛나는 것임을 보여주기를 기원하고 싶은 것이다.

 

  일본은, 정부에서 "그렇다!"고 하면 국민들은 그렇게 믿는 나라,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 그렇게 실천하는 나라, 자국의 국민들에게만은 떳떳하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정부를 가진 나라, "가르치는대로 실천하면 좋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는 교육을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이여! '교육의 힘'으로 일어나라! 끝까지 '교육의 힘'을 보여라!)

 

  (일본 얘기만 했다 하면 평생 분풀이나 비난, 비판을 일삼다가 처음으로 이런 글을 쓰고 보니 왠지 좀 쑥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언제 또 이럴 일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사진 출처 : 중앙일보, 2011.3.15(화). 14면(이 사진은 매일경제 1면 등 다른 신문에도 많이 실렸다). 사진 설명 : 쓰나미가 덮친 일본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에서 14일 한 소년이 생수 두 통을 양손에 든 채 굳은 표정으로 폐허 속을 걸어가고 있다. 게센누마를 비롯한 미야기현 일대에선 이번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로 이날 하루에만 약 400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게센누마 AP=연합뉴스]

 

 

 

  1. 매일경제, 2011.3.14.A4. [본문으로]
  2. 조선일보, 2011.3.14.A14. [본문으로]
  3. 문화일보, 2011.3.14.8면. [본문으로]
  4. 위의 신문. [본문으로]
  5. 조선일보, 2011.3.15. A6. [본문으로]
  6. 위 신문. [본문으로]
  7. 문화일보, 2011.3.15.8면. [본문으로]
  8. 위 신문, 9면. [본문으로]
  9. 매일경제, 2011.3.16.A6. [본문으로]
  10. 루스 베네딕트, 김윤식·오인석 옮김, 『국화와 칼 : 일본문화의 틀』(을유문화사, 1994, 초판16쇄), 46쪽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중에서. [본문으로]
  11. 위의 책, 238쪽 '어린아이는 배운다' 중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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