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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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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벌 아이디어

by 답설재 2011. 3. 3.

체벌에 대한 논란이 좀 사그라든 것 같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심각한 면이 있겠지요.

'교사들이 쏟아낸 대체벌 아이디어' 기사를 봤습니다.

반성문에 친구와 교사의 사인 받기, 학생·부모·교사가 함께 나눔일지 쓰기, 권장도서 읽기, 한자·영어문장 쓰기, 운동벌 하기, 가령 축구 리프팅 10번, 탁구 스매싱 자세 연습 100번, 배구 오버핸드패스 100번 등

 

 

#

 

글쎄요. 저로서는 의문인 종목이 대부분입니다. '운동벌', '학습벌'로 분류되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공부를 더 시키는 꼴이니까요. 제안한 교사들도 '벌을 주는 동시에 학습 효과도 거둘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는데, 제가 학생이라면 참 따분할 때는 차라리 책을 읽고 싶거나 운동을 하고 싶어지고, 그럴 때는 '슬슬 무슨 잘못이나 한번 저질러 볼까?' 싶어질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진 그럼 그런 애들 두고 뭐 하고 있었습니까? "이놈아! 그런 몹쓸 짓 했으니 이 공부 더 해라!" "그게 싫으면 이 운동을 하겠니?" 그러면 되었을 것 아닙니까? 

 

딱 1년이 지났지만 이미 퇴직한 저로서는 잘 모르는 면이 있겠지요. 그래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벌은 벌다워야 한다!'

'그렇지만(벌은 벌다워야 하지만) 운동벌, 학습벌이라는 것도 운용하는 교사에 따라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기에 제안되었을 것이므로 획일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은 체벌에 대한 견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자녀든 학생이든 어린 것들을 결코 때려서 기르고 가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들 중에는 피가 흐르도록 종아리를 때리면서도 그 아이와 부둥켜 안고 화해하고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

 

'대체벌', 아무래도 아직은 낯선 벌입니다. 더구나 '운동벌', '학습벌'이라니요. 그게 통하게 되면 학교는 정말로 훨씬 더 좋은 곳, 낙원 비슷한 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선생님, 권장도서를 읽으면서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는 권장도서를 읽지 않아도 되도록 하겠습니다."

"엄마, 오늘 한자도 쓰고 영어문장도 쓰면서 제 잘못을 크게 반성했어요. 앞으로는 정신차릴게요."

"(친구에게) 축구 리프팅 10번을 하고나니까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더라니까?"

"그래? 나도 전에 탁구 스매싱 자세 연습을 100번 하고 나니까 다신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더라."

……

희한하지 않습니까? 제 머리로는 그런 상황을 상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하여 순화되어 간다면(잘못을 반성하게 된다면), '반성문에 친구와 교사의 사인 받기', '학생·부모·교사가 함께 나눔일지 쓰기'는 어떻습니까? 너무 가혹한 벌이 아닐까요? 공부를 더 하거나 운동을 해도 벌이 되는데 누가 반성문 써서 교사와 친구의 사인을 받거나 부모님, 선생님과 함께 '나눔일기'를 쓰겠다고 하겠습니까?

 

자꾸 '삐딱한'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그러니까 차라리 그만두겠습니다. 

 

 

 

문화일보, 2011.2.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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