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신문 보기

구청장님께-방학엔 놀게 해주자는 제안

by 답설재 2010. 12. 2.

 

 

 

지난달 하순 어느 날, '겨울방학 초등생 학력 올리기' 기사를 읽었습니다(문화일보, 2010.11.26. 14).

제목만 보고는 걱정스러웠습니다. '과외공화국이라더니 드디어 구청에서도 과외를 하는구나.'

 

그러나 본문을 읽으며 이웃 K대학 평생학습관과 협력해 논술사고력·영어EQ·창의력 교실 등 3개 코스를 운영하고, S여대, D여대, D외고 등 3개 학교와 함께 원어민 영어교실을 진행할 계획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과외(課外)'는 '과외'겠지요.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교재가 활용된다는 설명만으로도 일반 사교육 업체의 과외 교습과는 다른 형태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지만, 사실은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 활동이 아니니까요.

 

기사를 읽고 잠시 이래저래 생각이 깊었었습니다.

'요즘은 일반 행정기관에서도 교육에 관심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구나.'

'참가비가 각각 5만원, 2만원씩이라 해도 매일 2시간 30분씩 수업을 해주면 저렴하기도 하고, 맞벌이 하는 가정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아이들은 좋아할까? 와! 나는 방학 때도 공부한다!'

'그 동네 학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제 이곳에서는 학원 하기도 어렵겠군.'

……

 

구청장님은 어릴 때 방학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좀 부끄럽지만 저는 시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낫지 그걸 가지고 뭘 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낮이고 밤이고 실컷 놀아붙이고, 그것도 지겨우면 잠깐씩 들에 나가거나 시키는 일만 겨우 해놓는 정도였습니다. 그것까지도 장난 같았다고 평가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방학 동안 이 숙제만큼은 꼭 해오라는 선생님의 부탁이 개학을 하루이틀 앞둔 날 또렷이 기억날 정도로 마냥껏 놀아붙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랐으니 그 모양 아니냐면 할 말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의 질이 달라졌고, 공부의 수준이 높아졌다면, 휴식과 놀이, 그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게 아니고 공부할 내용이 많아져서 그렇다면 왜 하필 노는 시간, 쉬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지 그걸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입니다. 그것도 특히 우리나라 아이들의 경우입니다. "일본도 그렇다", "싱가포르는 더 하다"고 하면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천국 같다고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도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기야 구청장님이 직접 결정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교육 문제니까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수들이나 교육행정가들의 조언과 자문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이번 겨울방학에 그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고 그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은 어떻겠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은 놀 시간도 없고, 놀 만한 장소도 별로 없고, 그래서 이젠 노는 방법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저 아이들의 얼굴이 저렇게 맑고 밝고 아름다운 것이 희한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제가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조금 안다면, 방학은 일단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간이고 아이들에게는 잘 노는 것도 너무나 소중한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무슨 말이냐? 방학을 하면 집에서 죽치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구청에서 공부를 시킨다면 좋기만 하지."

그런 어른들이 있겠죠. 그렇다면 그 아이들은 놀 곳도 없고 마땅한 놀이시설도 없고 놀아줄 상대도 없어서 더 죽을 지경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 숨막히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고마운 구청장님이기 때문에 그 구청장님께라도 저는 그걸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구청장님께서 방학 내내 신나게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신단다! 와, 신난다! 만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겨울방학 초등생 학력 올리기'를 하는 구청이라면 '겨울방학 초등생 신나게 놀게 하기'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