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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과서의 창의성·다양성(Ⅲ)

by 답설재 2010. 9. 6.

 

 

 

교과서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Ⅲ)

 

 

 

 

    ☞ 「교과서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Ⅱ)」에서 계속    

 

 

 

Ⅲ. 교과서의 창의성·다양성 구현을 위한 정책의 방향

 

 

  ‘교과서의 창의성·다양성 구현을 위한 교과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필자의 능력 범위를 너무나 벗어난 주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해 간략한 언급을 하고,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전체적인 문제와 연계하여 꼭 검토해야만 할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교과서 정책의 방향에 대한 제안

 

  우리나라 교과서 정책 혹은 교과서 제도 개선의 목적은, ‘교육과정의 취지에 맞는, 좋은 교과서를 선정·공급하는 것’으로, 이러한 정책·제도 하에서 교과서는 여전히 ‘지식을 담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 이러한 관점은, 지난 1월 12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09 개정 교육과정’ 고시에 이어서 발표한 이른바 '2010년 교과서 선진화 방안'에도 나타나 있다.2

 

  이 방안을 발표하게 된 배경은 두 가지이다. 우리 교과서는 그동안 ‘질적․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거듭하여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으나, 학생들이 많은 지식이 요약․압축된 교과서를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참고서를 구입해야 했으며 이는 고스란히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는 따분하며 재미없고 어려운 책이라는 인식이 있어 왔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다음은 ‘우리는 미래사회로의 변화를 선도해 나갈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데, 미래의 창의적인 ‘산지식’을 교과서에 적시에 반영하고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국정과 검정 교과서가 주축을 이루는 현행 교과서 시스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이와 같은 배경 아래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 2011년 국어, 영어, 수학 과목부터 가정에서도 활용 가능한 e-교과서를 기존 서책형(종이) 교과서와 함께 CD 등의 형태로 보급

∙ 2011년부터 국정도서 145종(특목고 및 전문계고)과 검정도서 39종(고교 과학, 음·미·체 등) 총 184종의 도서를 인정도서로 전환

∙ 검정교과서 출원자격을 완화하여 민간출판사(저작자) 뿐만 아니라 학회나 공공기관도 검정교과서 출원을 허용할 예정

∙ 검정심사 과정은 종래 폐쇄형 합숙심사에서 개방형인 재택심사로 전환하고 검정심사 결과보고서도 공개

∙ 2011년 검정에 출원되는 교과서부터 가격을 사전에 심의하고 필요한 경우 교과서 가격의 조정을 출판사에 권고함으로써 교과서 가격안정화를 도모

∙ 일선 학교에서의 교과서 채택 비리를 근절하고, 교과서 선정 및 채택 과정의 공정성,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법률상 근거규정 마련

 

  ○ 권장·조장·허용 성격의 정책에 대한 기대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이 방안의 실현을 통해 ‘우리 교과서가 보다 쉽고, 재미있고, 학생들에게 친근한 미래형 교과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교사들이 현장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직접 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과서 선택권도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그동안 문제가 되어 왔거나 현장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과제를 중심으로 최근까지 보기 드문 획기적인 내용의 해결방안을 담고 있는 이번 방안을 검토하면서, 우리 교과서가 보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창의성이나 다양성을 추구하자면, 교육과학기술부의 교과서 정책이 지금까지의 규제 완화적 성격에서 위임·위탁 성격의 확대와 함께 앞으로는 권장·조장·허용 성격의 변화로 전환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국·검·인정도서 중 인정도서를 더욱 확대하여 인정도서 중심의 교과서 체제가 되게 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예로 들면, 상당 부분의 국정도서와 검정도서를 인정도서로 바꾸고 시·도별로 인정도서 발행 업무를 분담하도록 했지만, 시·도 교육청은 물론 학회나 연구회, 출판사 등 여러 기관·단체를 대상으로 한 공모와 지원의 형태로 인정도서의 범위를 확대하면 그 대상이 되는 교과목의 도서는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인 도서들이 경쟁적으로 개발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교과목에 따라 여러 가지의 인정도서가 출현할 수도 있고, 국정도서와 인정도서, 검정도서와 인정도서가 병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교과서 정책을 권장·조장·허용의 성격으로 바꾸어 가려면 우선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의 관련 제한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초․중등교육법’과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으로써 국·검정 교과서 위주의 엄격한 국가 관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교과서 정책을 인정도서 중심 체제로 전환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즉 인정도서의 확대를 초·중·고 보통교과로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에서 ‘인정도서’의 정의(제2조제6항)와 ‘교과용도서의 선정’에 관한 조항(제3조제1항)을 적극적인 관점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규정에서 인정도서는 “국정도서·검정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하기 위하여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인정을 받은 교과용도서”로 정의하고 있고, “학교의 장은 국정도서가 있을 때에는 이를 사용하여야 하고, 국정도서가 없을 때에는 검정도서를 선정·사용하여야 한다. 다만, 국정도서·검정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한 것은, 인정도서의 위치를 국정도서·검정도서와 동일한 것으로 해석하는 규정이라고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며, 학교에서도 교과용도서의 비중을 국정도서→검정도서→인정도서의 순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장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편찬한 도서, 혹은 검정하거나 인정한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해도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나라보다는 엄격한 통제가 가능한 조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인정도서 확대의 목적 재검토3

 

  ‘2010년 교과서 선진화 방안’은 국정과 검정 중심의 교과서 체제는 미래의 창의적인 ‘산지식’을 교과서에 적시 반영하고 교육시키는 데 부적절한 반면, 인정도서는 국·검정도서에 비해 ‘학습자 친화적이며 보다 유연한(flexible) 도서’로,4 ‘앞으로는 교사들이 자체 제작한 학습자료나 시중에 나와 있는 일반 서적도 인정 절차만 거치면 교과서로 사용될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직접 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어서 지식, 흥미, 창의력을 키워주는 수준별 맞춤수업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이러한 관점은, 교과용도서 중 인정도서의 정의를 적극적인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관점과 합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로써 교과서의 목적이 ‘지식을 담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탐구적·창의적·미래지향적인 학습을 유도하고 수업 방법을 개선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자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5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지금까지 추진한 바와 같이 고등학교(특목고 및 전문계고) 선택과목 국정도서부터 인정도서로 전환하는 방법(이 조치에 대해서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업무부담부터 경감시키자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외에 초·중·고 보통교과의 국정도서 혹은 검정도서를 인정도서로 전환하는 방법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되면 당연히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일대 혁신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또 현재와 같이 고등학교 전문교과목 교과서부터 인정도서로 바꾸는 관점만으로는 보통교과의 교과서를 인정도서로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교과용도서, 특히 인정도서에 대한 관점을 많이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제7차 교육과정 이래 초등학교(3·4학년 사회과) 지역교과서는 행정절차상 인정도서일 뿐, 실제로는 중앙정부의 국정도서 업무를 지역별로 분산 위임한 또 다른 형태의 국정도서(인정도서심의회 심의 없는 인정도서)에 지나지 않는다. 그 교과서를 보다 유연하게 개발·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시·도(또는 시·군)의 여러 기관·단체(교육연구단체 등)를 대상으로 한 개발계획 공모, 여러 종류의 인정도서 인정 및 각 학교의 선정·채택, 출판사·저자·학회·기관·단체 등을 대상으로 검정 형태의 심사제 도입 실시, 인정도서의 취지에 맞는 지역사회의 각종 도서 혹은 학습자료의 수집 및 인정 목록 작성·제시 등 얼마든지 창의적이고 새로운 방법이 있음에도 오랫동안 예전의 그 조치를 불문율처럼 답습하고 있다.

 

  교과서 혹은 학습자료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는 매우 한정적이고 통제적인 면이 숨어 있다. 그처럼 한정적이고 통제적인 사고방식은 변화와 발전을 정체시키고 창의와 다양성을 가로막는다. 지금까지의 인정도서 확대 시책 속에도 그러한 통제·규제 완화적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러한 조치들은 현장교육 혁신 중심의 인정도서 확대 조치로 전환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교과서 행정부터 국·검정 중심에서 검·인정 중심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 검정심사기준의 강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초등학교 5, 6학년(실과, 체육, 음악, 미술)/고등학교 1학년 검정도서 검정기준’(2008.11)을 보면 공통기준은 헌법정신과의 일치, 교육기본법 및 교육과정과의 일치, 지적재산권의 존중, 내용의 보편타당성 등 4개 영역으로 구성된 7개 관점별로 심사하여 1개의 영역이라도 불일치 또는 위배되는 내용이 있으면 불합격 판정을 하도록 되어 있다. 또 각 교과별 기준은 교과서의 경우 ‘교육과정의 준수’(배점 15), ‘내용의 선정 및 조직’(25), ‘창의성’(13),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15), ‘교수·학습 방법 및 평가’(20), ‘표기·표현 및 편집’(12) 등 6개 심사영역으로 구분하여 제시된 14~23개 심사항목별로 심사하여6 각 영역별 점수가 해당 배점의 60% 이상이면서 총점이 80점 이상(만점 100점)인 도서를 합격본으로 판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 심사기준은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당연히 새로 결정되므로 전체적인 윤곽은 거의 변함이 없다 하더라도 세부적인 내용이나 표현은 변화되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 검정기준은 일본이나 미국(예 :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다른 나라의 검정기준에 비해 매우 소략한 것이 사실이다. 가령 일본의 경우에는 공통기준 중 ‘내용의 선정·취급 및 조직·분량’에 관한 항목만도 16개 항목이 제시되고 있고,7 미국의 텍사스 주나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검정의 절차나 검정심사기준은 매우 구체적이고 엄격하고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8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검정기준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매우 소략한데도 불구하고 검정에 참여하는 출판사나 학자들이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나라 검정 교과서는 종류만 많고 실제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는 지적에 대해 일반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의 통제와 규제 때문에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비판을 하고 있으며(심층적 면담을 들어보면, 추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모험’을 하기보다는 전례대로 처리하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생각으로 창의성의 발휘를 자제했다고 토로한다), 가령 공통기준 중 ‘내용의 보편타당성’을 예로 들면 “학문상의 명백한 오류나 관련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있는가?”라는 심사관점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내용의 보편타당성과 관련하여 아무런 혼란이 일어날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이고, 그 영역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정되어 검정에 합격한 도서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내용의 보편타당성과 관련하여 그동안 수많은 논란이 끊이지 않고 등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교과서 검정기준은 더욱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제시되어야 하며, 그렇게 정교화한 기준을 미국이나 일본처럼 강력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은 그처럼 분명한 기준만 충족하면 검정을 통과할 수 있어야 마음 놓고 창의적인 교과서를 만들 수 있게 되며, 그처럼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기준을 모두 제시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교과서가 시장에 출판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교과서 검정을 하는 기본취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역별로 점수를 매기는 심사는 그 점수가 현장의 교과서 선택·활용에 반영되지 않는 한 무의미한 것이며, 강력한 세부기준을 모두 통과하면 합격본이 되도록 하는 것이 검정의 기본 취지를 반영하는 심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2. 교육과정 요소 중 내용과 방법 부문의 자율화

 

  국가 교육과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 위상을 유지해야 하며, 범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개정 절차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초․중등교육의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으로 교육의 질적 기회 균등 보장, 교육내용의 체계 및 일관성 유지, 교육의 일정 수준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한 객관적 질 관리의 기준, 교육의 중립성 확보, 국민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 구현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9 이러한 이유로 지방교육자치가 발달하고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발달한 나라도 국가 교육과정만은 더욱 강화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과정․교과서 정책은 매우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2003년 10월, 종래의 일시적․전면적 교육과정 개정방식을 바꾸어 급격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교육내용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면서 국민 각계각층의 교육과정 개정 요구를 탄력적,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현장적합성이 높은 교육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교육과정 수시․부분 개정체제를 도입한 이후 특수목적고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 개정(2004.11.26.), 공고 2․1체제 교육과정 및 국사 교과 교육과정 개정(2005.12.28), 수학․영어과 수준별 교육과정 개정(2006.8.29.),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2007.2.28), 보건교육을 위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2008.9.11), 초․중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 개정(2009.3.6), 2009 개정 교육과정 고시(2009.12.17)를 연이어 추진했다.

 

  이러한 교육과정 개정 과정을 살펴보면, 교육과정 수시개정의 취지에 따른 긍정적 측면은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의 중앙집권형 교육과정 정책에 대한 반작용과 함께 자칫 교육과정 기준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지는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교육과정 기준은 ‘초․중등교육법’ 제23조에 의해 개정․관리되는데 비해10 다른 법률에 의한 교육과정의 ‘총론’ 혹은 ‘각론(교과․영역)’의 개정․관리가 병행된다면 이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못하고, 각 교과 교육과정에서도 이해 당사자들만의 의견을 중심으로 비교적 용이하게 개정을 추진해 나간다면 범국민적 합의로써 이루어져야 하는 초․중등교육의 성격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교육과정 기준에 소홀하면 교과서 정책에 대한 인식 또한 더욱 소홀해질 수 있다는 데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정위원회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바로 이러한 우려를 고려한 주장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러한 맥락이라면 국가가 언제까지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교수·학습방법까지 일일이 관리해야 할 것인지, 과연 그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고, 특히 교과서 인정제, 혹은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는 선진적인 나라들의 예에서 보듯이 교육과정 구성 요소 중 목표와 평가, 지원 영역은 국가가 더욱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 영역은 대폭 자율화하는 것이 발전을 촉진하는 선진적 방향일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교과서 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가가 직접 편찬한 도서가 국정도서이고 국가가 심사한 도서가 검정도서, 국가가 인정한 도서가 인정도서라면, 국가가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에 관한 자료가 되는 교과용도서에는 최소한으로 관여하는 방법이 인정도서 제도 혹은 자유발행제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구체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에 대한 관여를 줄일수록 창의성, 다양성이 발휘될 것은 당연하며, 교육선진국이 인정제나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3. 교수·학습방법과 교육의 혁신

 

  교과서의 다양성·창의성과 그 구현을 위한 교과서 정책을 생각해보면서 느끼는 무한한 한계가 있다. 교과서 중심 수업, 지식 전달식 수업, 획일적 강의 중심 수업 등으로 표현되는, 대학입시 준비에 치중하는 초·중등교육으로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암담함을 느끼는 것이다. 수업이 바뀔 수 없다면 교과서의 창의성, 다양성은 무용한 것일 수밖에 없다. 교과서를 창의적으로 다양하게 만들면 수업이 창의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는 반문은 무책임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서의 창의성, 다양성은 결코 교사의 자유로운 교재 선택만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理想)은 학생들도 개인별로 자유롭게 교재(학습자료)를 선택할 수 있어야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교실을 가상해보면, 그 교실에서 어떤 학생은 그 교과의 시간에 가장 쉽게 보이는 한 권의 교과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다른 학생은 동일한 그 교과의 시간에 두세 권의 교과서를 동시에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과서의 활용이라는 것이 학생 개인별로 모두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때의 교과서는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며, 학생들에게 개인별로 배부되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온갖 교과서를 풍부하게 구입하여 비치한 상태의 교과서를 말한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보고 그 시간을 위해 설정한 수업목표에 따라 수업을 진행할 뿐이며, 어느 교과서를 채택, 선정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고 요약해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 교사의 지휘와 안내에 따라 학생들은 철저한 개별학습과 유익한 소집단, 혹은 전체학습을 합리적으로 실시한다. 국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교재를 구입해주며, 교과서는 수많은 교재 중의 일부이고, 학생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교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재의 다양화’에서 공급면의 다양화(교사의 자율적인 선정·채택 등)는 특별한 의미가 없으며 ‘학습의 다양화’로 이어지는 경우의 다양화만 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학교, 혹은 교원들의 성과는 ‘어느 대학교에 몇 명의 학생을 입학시켰는가?’로 판단될 수도 있지만, 이 학교의 성과는 학업성취도평가 등을 통해 ‘국가기준인 교육과정의 목표를 얼마나 많이 혹은 철저히 달성시켰는가?’로 판단된다. 이 학교의 ‘학교교육과정계획’이라는 문서는 실천을 위한 이정표로서의 구실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학교평가, 교원평가를 위한 계획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계획은 실천(교육과정 운영)과 평가로 철저히 이어진다. ‘교과서 중심 학교교육’에서는 계획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고, 실제에서는 교과서의 지식을 암기하는데 중점이 주어지며, 평가는 온갖 시책의 구현과 연계되어 이루어지지만, ‘교육과정 중심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 학교의 교육계획은 실천, 평가와 일원화되어 철저한 순환과정을 이룬다(계획⇄실천⇄평가⇄계획……).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 교육목표는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다. 과학시간에는 당연히 실험·관찰과 보고서 작성이 이루어지고(당연히 주로 실패 원인에 대한), 사회과에서는 과제해결이나 현장학습의 보고·전시·평가·토론이 중심을 이룬다.

 

  이런 유형의 학교에서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어 교과서 내용전달 중심 교육을 하는 한국의 대부분의 학교를 바라보면 교과서의 창의성, 다양성에 관한 언급 자체가 무용한 일이 아닐까 싶어지기까지 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 학교는 교육과정(국가기준)의 다음과 같은 교육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학교이다.11 그러므로 그 학교의 교육목표는 겉치레로 설정된 목표가 아니다. 이 교육과정의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실천적 하위목표로서의 학교교육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 개척 능력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데 중점을 둔다.

  ⑴ 성숙한 자아의식을 토대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기능을 익혀 진로를 개척하며 평생학습의 기본 역량과 태도를 갖춘다.

  ⑵ 학습과 생활에서 새로운 이해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과 태도를 익힌다.

  ⑶ 우리의 문화를 향유하고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다.

  ⑷ 국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기른다.

 

 

 

 

  1. 주 5) 참조. [본문으로]
  2.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2010.1.12). '2010년 교과서 선진화 방안' [본문으로]
  3. 김만곤(2010). 「2010 교과서 선진화 방안의 과제와 전망」, 한국교과서연구재단, 『교과서연구』제59호(2010.3), 42~47쪽. [본문으로]
  4. 교육과학기술부(2010)에서는 인정도서가 학습자 친화적이고 보다 유연한(flexible)한 반면, 비교적 간편한 심사와 채택 절차 등으로 인해 교과서로서의 질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있기 때문에 전문 학술기관 등을 과목별 인정도서 감수기관으로 지정·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교육과학기술부 위 보도자료 참조). [본문으로]
  5. 교과서의 목적이 단순히 ‘지식을 담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탈피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이 요약·압축된 교과서' '(교과서에) 미래의 창의적인 ‘산지식’을 적시에 반영하고 교육시키기 위해서는'이라는 설명을 보면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아직은 교과서의 기능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설정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교육과학기술부의 위 보도자료 참조). [본문으로]
  6. 지도서의 경우에는 ‘교육과정·교과서 안내’, ‘구성 체제’,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 ‘교수·학습방법 및 평가’, ‘자료의 제공 및 안내’, ‘표기·표현 및 편집’ 등 6개 심사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심사항목의 수는 교과서와 유사함. [본문으로]
  7. 일본의 교과서 검정기준(문부과학성, 1999) 중 [선택․취급 및 조직․분량]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16개 항으로 되어 있다(김만곤·김차진·강환동·주용준(2006).『검정도서 수정·보완체제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한국교과서연구재단 연구보고서), 16~18쪽). ①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된 목표, 내용 및 내용의 취급 사항에 비추어 부적절한 곳, 학생이 학습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내용은 실을 수 없음(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을 취급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② 정치 및 종교의 취급에서는 공정하고, 특정 정당 및 종파 또는 그 주의(主義) 및 신조에 편중된다든지 그것들을 비난한다든지 하는 곳이 없을 것 ③ 화제 및 제재의 선택․취급에서는 학생이 학습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없도록 특정 사항, 사상(事象), 분야 등에 편중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져 있을 것 ④ 도서 내용에 학생이 학습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없도록 특정의 것을 특별히 과도하게 강조한다든지, 단면의 견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다룬다든지 하는 곳이 없을 것 ⑤ 도서 내용은 엄선되어 망라적, 나열적으로 되어 있는 곳이 없을 것 ⑥ 화제 및 제재가 다른 교과에도 연계되어 있을 경우에는 충분한 배려없이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고 있지 않을 것 ⑦ 도서 내용에 다른 교과,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는 다른 분야 또는 다른 영역, 도덕 및 특별활동의 내용과 모순되는 곳 및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곳이 없을 것 ⑧ 도서 내용에 심신의 건강이나 안전 및 건전한 정서 육성에 대해 필요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등 학교교육 전반의 방침에 반하고 있는 곳이 없을 것 ⑨ 도서 내용(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을 제외함)은 전체적으로 계통적, 발전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학교교육법에 따른 수업 시수 및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는 내용 및 내용의 취급 사항에 비추어 전체의 분량 및 그 배분이 적절하게 되어 있을 것 ⑩ 도서 내용의 조직 및 상호 관련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을 것 ⑪ 도서 내용 가운데 설명문, 注, 자료 등은 중요한 기술과 적절히 관련지어 다루고 있을 것 ⑫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지 않은 내용을 다룰 경우에는, 그 외의 내용과 구별되어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임이 명시되어 있을 것 ⑬ 실험, 관찰, 실습, 조사 활동 등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학생이 스스로 해당 활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배려가 이루어져 있을 것 ⑭ 인용, 게재된 교재, 사진, 삽화, 통계자료, 그 밖의 저작물은 신뢰성 있는 적절한 것이 선정되고, 저작권법상 필요한 출처 및 저작자명, 그밖에 필요에 따라 출전(出典), 연차 등 학습상 필요한 사항이 제시되어 있을 것 ⑮ 도서 내용에 특정 기업, 상품 등의 선전 및 비난을 하게 될 우려가 있는 곳이 없을 것 ⑯ 도서 내용에 특정 개인, 단체 등의 권리 및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곳이 없을 것 [본문으로]
  8. 김만곤 외(2006), 위의 연구보고서, 21~30쪽. [본문으로]
  9. 교육과학기술부(2008),『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 Ⅰ』및『중학교 교육과정 해설 Ⅰ』. 12~13쪽. [본문으로]
  10. 초․중등교육법 제23조 (교육과정 등) ①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②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며, 교육감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정한 교육과정의 범위 안에서 지역의 실정에 적합한 기준과 내용을 정할 수 있다. ③학교의 교과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본문으로]
  11. 교육과학기술부(2009.12.17.), 2009 개정 교육과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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