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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학교장 경영관 Ⅱ

by 답설재 2010. 5. 27.

이 이야기와 관계가 전혀 없는 학교

 

 

 

요즘 교장·교감 자격연수기간이어서인지 '학교장 경영관'이란 단어로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경영관'이란 무엇일까요? '경영의 관점'? 그렇다면 학급담임에게는 학급을 경영하는 관점이 있어야 당연하고, 교장·교감·행정실장에게는 당연히 각자의 직무에 따라 학교를 경영하는 관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1

어느 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의 첫 부분입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 ◇◇를 키우면서 정치를 결심했다고 하는데.

 

10여 년 전 좋다는 사립초등학교에 넣으려고 갔다가 거절당했다. 유명하다는 여 교장이 다짜고짜 반말로 ‘엄마, 꿈 깨’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나지만, 아이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아를 차별하는 학교를 징계해야 한다고 해당 교육청에 항의했다. 그랬더니 듣기 좋은 말로 동정과 위로를 하면서 대충 때우려고 했다. 내가 판사라는 걸 알리니 그제서야 교육청에서 해당 학교에 서면으로 경고했다. 그때 비로소 인식을 바꾸는 변화를 위해선 정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보통 엄마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런 (부당한) 경험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이 정식 절차를 밟아 해결되기는 어렵다. 그 이후 약자들이 데모를 하거나 떼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웬만한 분은 잘 알 만한 정치인이지만 혹 편견이 생길까봐 그 정치인의 실명을 숨겼습니다. 우리 교육자들이 굳이 이 정치인의 말이 옳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교장이라는 주제에 저렇게 한 것이 우리 교육계라는 사회이고 보면, 교육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겨우 “일부 교장이 그렇다”는 상투적인 변명은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너무 많이 써먹어서 이제는 통하는 곳도 아예 없습니다.

 

10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럼 지금은 10여 년 전보다 좋아진 게 있기나 합니까? 교육감 선거? 교육장이나 교장 임용? 가르치는 방법? …… 글쎄요. 내가 교사로 출발한 41년 전에 비하면, 그 당시에는 ‘소사’(청부→기사님)가 종을 쳐주었지만, 지금은 자동으로 차임벨이 울리는 것만은 달라졌다고 자조(自嘲)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내가 교장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학교에서라도 똑똑한 아이가 자신의 힘을 앞세우지 않는 사회가 되게 하고, 학교에서만이라도 돈이 엄청 많은 집의 아이, 권력이 엄청 쎈 집의 아이가 그 힘을 과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는 학교가 되어야 하고, 교장부터 그렇게 처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2008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무슨 빵 모양의 저금통을 전교생에게 돌렸습니다. 빵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불우한 아이들을 돕자는 눈물겨운 취지의 저금통이지만, 그걸 잘 알지만, 왜 마음대로 돌렸느냐고 했더니 예년에도 그렇게 했고, 협조를 구하는 문서(공문)도 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전교어린이회를 개최해서 모금을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전교어린이회 담당교사는 그해에 첫 발령을 받은 H였습니다. 며칠 후, 전교어린이회를 개최하고 나서 교장실에 들어오더니 성금 모금 자체가 부결되었다고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까닭을 물었더니 여름방학 동안 놀다보면 그 저금통에 저금을 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기 쉽다는 이유를 댄 아이가 있어 모두들 그 아이의 의견에 동조해버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교사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겠네요.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할 수밖에요. 그게 자치회지요.”3

 

당연한 일입니까? 모든 학교가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맡겨서 결정하게 합니까? 이렇게 묻는 건 교장이 ‘교장이라고’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꼴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휘두르니까 교사들도 힘 있는 교사들은 휘두르게 되고, 아이들도 덩달아 휘두르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학교장 인사말에 이런 구절을 넣었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 꽃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가 올려다보는 저 별들이

모두 빛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성공하도록

도와주고 안내함으로써

우리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이 삶의 목적이고 진실임을

확인합니다.

 

 

“인사말에만 넣으면 뭐 하나?”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장 경영관인가 뭔가 거기에도 넣었었습니다. 그 부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단기적 명성, 소수 학생의 의도적 육성 및 성공을 경계하고, 언제나 원칙과 기본과정을 지켜 모든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한다.

어느 학생에게나 남양주양지교육의 모든 기회를 제공하고, 그 기회에서 두드러진 어린이를 칭찬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학교장 경영관’이라는 문서는 그 문서대로, 학교 홈페이지의 ‘학교장 인사말’은 인사말대로, 또 무엇은 무엇대로, 각각 다 다르면, 당연히 ‘학교장 경영관’과 교장의 실제 교육활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게 무슨 교장이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학교 현관에 세워두거나 붙여 놓는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팻말도 -진심은 무슨 진심- 집어치우게 했고 그 자리에 제 인사말을 붙여두게 했습니다.

 

뭐, 나는 그렇게 했다는 뜻인데 이제는 교장도 아니니까 다 그만입니다. 다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때 왜 그랬는가?” 물으면 뭐든지 기억나는 대로는 ‘교육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 자존심일 뿐입니다. 신문, 방송에 난 것처럼 그렇게 떼어먹은 돈 한 푼도 없고 정부에서 내려오는 돈을 어떻게 하면 알뜰하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에만 몰두했다고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내 자존심의 일부입니다.

 

모든 부모는 그 자녀가 차별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보십시오. 저 위에서 인용한 기사의 첫머리는 사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자식이 다운증후군이지만 이 정도는 된다”는 것부터 설명합니다.

 

•□□당 서울시장 경선이 있던 지난 3일, ○○○ 의원이 △△△ 시장에 패하고 집으로 돌아가 보니 딸 ◇◇가 엉엉 울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 ◇◇는 강남의 한 일반고등학교 특수반 2학년이다. ○ 의원은 “엄마가 졌다”고 눈이 새빨개져서 울고 있는 딸에게 “괜찮다”고 위로했다. 7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 의원은 “다운증후군은 증상이 천차만별인데 ◇◇는 인터넷을 뒤져 엄마의 패배 소식을 알아낼 정도는 된다”고 했다.

 

교장공모제 실시로 야단입니다. 전국적으로 각 시·도별로 50%를 공모제로 뽑기로 한 것 같은데, 서울은 전원을 공모제로 뽑기로 해놓고 무늬만 공모제지 실제로는 교육청에서 좌지우지하기 쉽도록 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느니 하는 기사도 보였습니다.

 

임명을 하고 싶으면 적어도 그 인물이 제시하는 ‘학교 경영관’이 남의 것을 베낀 것인지, 스스로의 교육관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임명하면 되고, 공모제로 선발하려거든 그 인물이 제시하는 ‘학교 경영관’을 설명하게 해서 제대로 된 경영관을 제시하는 인물을 뽑으면 될 텐데 도대체 뭐가 헷갈리고 뭘 걱정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헷갈리는 게 있고 걱정스러운 게 있다면 그건 각자의 무슨 권한이나 이권이 개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다 집어치우고 쓸어버리고 경영관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데만 집중해보십시오. 다 해결됩니다.

 

 

 

..................................................

1.『왜 행정실장을 교장, 교감과 함께 이야기하느냐?』고 하시려면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까『직무에 따라』라고 했으니까요. 이제 그런 것 가지고 교장 권위 세울 겨를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다고 알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2. 조선일보, 2010년 5월 10일, A33면, 朝鮮 인터뷰「서울시장 경선 도전 실패했지만… 정치인으로서 한 체급 높인 ○○○ 의원」
3. 그 H교사는 저의 그 반응을 다른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에게 잘 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겪어보면 알겠지요. '아, 교장들은 다 이렇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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