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선생님이 새해 인사 전화를 한 건 차례를 마친 한적한 시간이었습니다.
J 선생님은 참 좋은 분입니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고 함께 지낼 땐 좋은데, 헤어지기가 어려워서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지냈습니다. 물건이나 책도 그렇지 않습니까? 만났을 땐 좋은데, 잃어버리거나 버려야 하거나 헤어질 땐 어렵습니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그것도 헤어지기 싫은데도 헤어져야 한다면…….
그럼에도 이 학교에 와서 또 좋은 사람들을 발견한 건 참 난처한 일입니다.
J 선생님은 '설날이니까 교장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그와 내가 함께할 일은 공식적으로는 이미 모두 끝났습니다. 마지막 일은 지난 11일의 졸업식입니다. 달력을 보며 생각해봐도 우리가 함께할 일은 이제 남아 있지 않습니다.
J 선생님도 그걸 알고 있을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쓰러질 가능성에(심장을 고치고 난 후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서) 너무 겁먹지 말고 그날 그 졸업식 일정의 한 가지 한 가지 절차를 차근차근 더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이라 하더라도 두고두고 생각해볼 만한 것을 더 많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산책도 못할 지경이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 곧 어지러워져서 '이 졸업식장에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주저앉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므로 더 많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더 깊이 생각해볼 만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살펴봅니다.
J 선생님.
잘 이루어내기를 바랄게요. 그대에게 늘 행운이 함께하기를…….
<2011년 어느 날에 덧붙임>
교육이라면, 너무나 가슴 절절해서, 초라한 삶이지만 교육자로서 살아오며 투쟁하고 번민하고 느껴온 것이 눈물겹고 속상해서 내 영혼을 물려받는 멘티가 있다면 한번 밖에 없다는 이 생애에서 얻은 것들을 그에게 다 주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이 벌판에서 영혼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뚫려버린 그 빈 곳을 사정 없는 비바람이 불어갑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교실』 (0) | 2010.03.29 |
---|---|
우리를 지켜주는 것들 (0) | 2010.03.02 |
<파란편지> 900일 (0) | 2010.02.13 |
국격(國格) (0) | 2010.02.02 |
하이힐 폭행 (0) | 2010.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