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설날 J 선생님의 전화

by 답설재 2010. 2. 14.

J 선생님이 새해 인사 전화를 한 건 차례를 마친 한적한 시간이었습니다.

J 선생님은 참 좋은 분입니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고 함께 지낼 땐 좋은데, 헤어지기가 어려워서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지냈습니다. 물건이나 책도 그렇지 않습니까? 만났을 땐 좋은데, 잃어버리거나 버려야 하거나 헤어질 땐 어렵습니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그것도 헤어지기 싫은데도 헤어져야 한다면…….

그럼에도 이 학교에 와서 또 좋은 사람들을 발견한 건 참 난처한 일입니다.

 

J 선생님은 '설날이니까 교장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와 내가 함께할 일은 공식적으로는 이미 모두 끝났습니다. 마지막 일은 지난 11일의 졸업식입니다. 달력을 보며 생각해봐도 우리가 함께할 일은 이제 남아 있지 않습니다.

 

J 선생님도 그걸 알고 있을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쓰러질 가능성에(심장을 고치고 난 후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서) 너무 겁먹지 말고 그날 그 졸업식 일정의 한 가지 한 가지 절차를 차근차근 더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이라 하더라도 두고두고 생각해볼 만한 것을 더 많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산책도 못할 지경이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 곧 어지러워져서 '이 졸업식장에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주저앉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므로 더 많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더 깊이 생각해볼 만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살펴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 때문에 포스터 만드는 데는 아주 이골이 났을 것입니다>

 

<졸업식을 하기 전에 교감실에서 외부에서 온 표창장과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제가 미래관에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들의 축하연주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가령, P교육대학교 졸업 성적이 1등이었다는 Y 선생님은, 졸업식 이전에 입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고 복무기간이 더 긴 공군을 지원했는데, 아이들이 그걸 알까요?>

 

<격려사(회고사)>

 

<저 쪽 창가에 서 있는 여성이 제 동기인 전 선생님입니다. 기념할 만한 일이 아닙니까? 정겨운 그는 42년 전 안동에서 만나 함께 공부했고, 이날 제 마지막 행사 진행을 지켜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펴본 메모지에는 이 블로그의 글들을 다 읽어본 감회로써, "꼬리내리지 말고 살라. 내 남편이 그럴 땐 기쁘기보다 측은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J 선생님.

  잘 이루어내기를 바랄게요. 그대에게 늘 행운이 함께하기를…….

 

 

  <2011년 어느 날에 덧붙임>

  교육이라면, 너무나 가슴 절절해서, 초라한 삶이지만 교육자로서 살아오며 투쟁하고 번민하고 느껴온 것이 눈물겹고 속상해서  내 영혼을 물려받는 멘티가 있다면 한번 밖에 없다는 이 생애에서 얻은 것들을 그에게 다 주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이 벌판에서 영혼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뚫려버린 그 빈 곳을 사정 없는 비바람이 불어갑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교실』  (0) 2010.03.29
우리를 지켜주는 것들  (0) 2010.03.02
<파란편지> 900일  (0) 2010.02.13
국격(國格)  (0) 2010.02.02
하이힐 폭행  (0) 201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