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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by 답설재 2009. 12. 9.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자료1>「어느 재벌가의 원정 출산」1


국내 최대 재벌가의 한 사람과 TV 유명 여자 아나운서 출신 부부가 첫째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까지 미국에서 낳았다. 첫째 아들은 결혼 후 유학차 미국에 가서 낳았다. 얼마 전 둘째 아들을 낳을 때는 출산 두 달 전에 미국에 갔다고 한다. 원정 출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원정 출산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자는 것이다. 재벌가 부부가 미국 시민권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이 탐나서 원정 출산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들의 자식이 미국 시민권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다.

…(중략)…

이 부부가 첫 아이를 낳은 뒤 얼마 안 돼 귀국했고, 이번 둘째 때도 곧 귀국한다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살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약 대한민국이 위험하게 된다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이 부부일 것이다. 이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국군이다. 그저 남자로 태어나서, 나이가 차서, 신체가 건강해서,2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따져보지도 않은 채 군에 들어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들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다. 이 부부는 제 재신과 생명은 국가에서, 국군에게서, 남의 집 아들들에게서 보호받으면서 자신들이 나라에, 국군에, 다른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의무는 지지 않으려 만삭에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가서 아이를 낳았다. 무엇을 더 챙기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가.

…(후략)…

 

 

<자료2> 극비 사항 소개3

 

저는 그랬습니다. 막내가 아들인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입대를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했지만 저도 남들처럼 그 애의 ‘아버지’이므로 참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어느 날 퇴근했더니 아내가 동사무소 직원의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방위를 해도 된다. 신체검사 결과 그런 소견이 있다. 의견을 동사무소로 알려 달라.”

저는 아예 국회의원이나 장관 부류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는지,4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아들에게는) 극비에 부치라고 부탁하고, 당시 기무사에 근무하는 K소령에게 “부디 우리 아이 좀 얼른 잡아가는 방법 좀 알아달라.”고 했습니다.

K소령은 빠지기는 어렵지만 ‘그걸 거꾸로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저는 그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신분에 따르는 도리 상의 의무)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그런 것 따지고 살았습니까. 어느 분은 국회 청문회장에서 “장관할 줄 알았다면 주변정리를 잘 할 걸 그랬다.”고 후회스럽다는 발언을 했지만, 그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따질 만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요? 그 후회가 적절한 것인지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논산 훈련소 가는 그날은 아득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훈련소 가까운 그 마을에서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국밥’은 썩 괜찮은 메뉴였는데 아들도 저도 서로 눈치를 보며 넘어가지도 않는 걸 억지로 넘겼습니다. 아들은 집에서는 언제나 남기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은 다 먹었습니다.5

그 아들을 연병장에 남겨두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운전기사가 건네는 말들에 대답하기가 참 귀찮았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그는 뭐하려고 자꾸 묻고 그 대화를 이어가려고 그러는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아침에는 멀쩡하게 둘이서 나갔지만 혼자 돌아오게 된 제 처지가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했습니다. 흡사 무엇을 몽땅 잃고 돌아온 사람 같았습니다. 옷을 갈아입는데 아내가 무언가를 물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대답도 않고 (그래도 남자라고) “어허, 이 사람이!” 하고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뚝 그쳤습니다.6

 

 

  1. 조선일보, 2009. 12. 2. A34면, 양상훈 칼럼. [본문으로]
  2. 이 글을 쓴 논설위원(양상훈)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신체가 그리 건강하지 않아도 군대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아래 글을 읽어보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본문으로]
  3. 이 블로그의 '내가 본 세상' 중 2008. 3. 18, 졸고「아름다운 해리 왕자」중 일부를 다시 게재합니다. 제 아들은 이 블로그에 관심이 없으므로 그에게 일부러 말하지는 마십시오. [본문으로]
  4. 그런 분들 중에는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은 경우가 일반인보다 더 많지 않습니까. [본문으로]
  5. 물어보나마나 저 때문에, 제가 그걸 다 먹으라고 그랬겠지요.(이런 각주는 원문에는 없었기 때문에 덧붙이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6. 그런 생각을 하면, 저는 그 아내에게 모든 것이 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