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없는 국책연구기관
핸드폰으로 희미하게 찍힌 사진은,「정권 '입맛'따라 연구결과 오락가락, 줏대 없는 국책연구기관」이란 기사입니다. 1 조금만 보면 이렇습니다.
최근 발표된 세종시에 대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가 전(前) 정부 때 실시했던 연구와는 상반된 결과를 보임에 따라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행정학회와 16일 개최한 세미나에서는 세종시 원안(原案)에 따라 행정부처(9부2처2청)를 이전할 경우 연간 최대 5조원 가량의 행정 비효율 비용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세종시까지 공무원이 출장 비용, 민원인의 시간˙경제적 낭비 등 '직접 경비'는 연간 1271억원, 정책 품질 저하 비용과 성장 잠재력 저하 비용 등 '간접 경비'는 연간 4조6800억원으로 추산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12월 국토연구원과 한국행정연구원 등 7개 기관이 참여해 실시한 '행정수도 이전의 효과 분석 및 국내외 사례조사 연구'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수도권과 비충청권과의 통행량 감소로 전국적으로 연간 1조1000억원의 교통비용 절감, 수도권 환경오염 감소로 연간 1060억원의 환경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예측했다. …(후략)…
이 기사 내용에 나타난 연구 결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간단히 '뭐 이런 것들이 있나!' 그러면 그건 좀 난처합니다. 왜냐하면 2003년의 연구는 당시 정부의 국정지표(가령 '지역 균형 발전')에 따라 연구한 결과이고, 이번 연구는 이 정부의 국정지표(가령 행정의 효율)에 따라 연구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 연구해도 이런 저런 측면이 다 고려되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하면, 그건 보다 분명한 관점일 것입니다.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니 무슨 다른 연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행정이 어떤 결정을 하는 데 뒷받침이 되는 연구를 정책연구(政策硏究)라고 합니다. 그런 연구는 그 과제의 배경, 실태, 문제점, 설정될 수 있는 과제와 추진전략, 기대되는 효과, 국내외 사례 같은, 우리가 예상, 예측할 수 있는 사항들을 모두 포함하여 연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정가들은 그 연구결과를 보고 확신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연전에 비교적 간단한 주제의 어떤 정책연구를 하면서 주최측에서 1200만원을 주겠다는 걸 1000만원만 받아 그 돈으로 보고서 인쇄까지 해서 제출했지만, 제가 잘 모르는 행정분야의 연구나 교육정책 연구 중에는 비중이 아주 높아서 몇 억짜리도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몇 억이 드는 연구라도 필요하면 당연히 해야 합니다. 국민을 위한 일이니 아까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연구에 '진정성'이 결여된다면 1000만원도 아까울 것입니다. 교육에 관한 연구라면 특히 그렇습니다. 그 돈이 아까운 교육연구는 '죄악'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어떤 교육정책연구기관에서는 한때 '평준화교육'이 최선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하다가 그 후에는 '수월성교육'이 최선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보았습니다. 교육학자로서는 할 일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는 평준화교육정책이 필요하고, 저런 면에서는 수월성교육정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주장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걸 할 줄 모르는 교육학자라니! 얼마나 한심하고 치졸합니까.
그러나 말이 그렇지 그런 태도가 그리 쉬운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곧잘 "글쎄요." "그것 참!" 할 때가 많았습니다. 교육이란 게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조선일보, 2009. 12. 21, A.. 2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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