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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춘수 「꽃」-양지오름길, 양지뜨락을 생각하며

by 답설재 2009. 11. 23.

어젯밤에는 꿈 끝에 ‘양지오름길’ ‘양지뜨락’ 생각을 하다가 잠이 깨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을 꾸중하는 꿈을 많이 꾸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양지오름길’ ‘양지뜨락’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가평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는 원옥진 선생이 작년 봄에 아이들에게 공모를 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교문에서 교사(校舍)까지 올라오는 길을 뭐라고 부르는가, 어떻게 불러야 편리한가, 그 길의 이름이 없어서 불편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이야기한 끝에 공모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양지뜨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뜰에서 가령 도서바자회를 한다고 치면, “도서바자회를 어디서 하지요?” 물을 때 “건물과 화단 사이에서 합니다.” 하고 대답하면 참 애매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공모(公募)는 참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 가지 이름이 나왔고 버리기가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 부르기 쉽고, 그 장소를 떠올리기도 쉽고, 다른 곳의 이름과 완연히 차별되고, 부르기 시작하면 ‘원래 그런 이름 아닌가?’ 싶도록 얼른 친숙해지는 그런 이름이면 좋을 것입니다.

 

‘양지뜨락’에 대해서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것은, 사전을 찾아보면, ‘뜰’(집 안의 앞뒤나 좌우로 가까이 딸려 있는 평평한 땅)의 북한 사투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누가 그 이름을 제안한 것을 보면 우리 중에도 더러 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게 분명하고, 가령 ‘뜨락’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우물집’을 ‘빗물이 들어가지 아니하도록 우물 위에 지붕을 만든 것. 우물 곁에 있는 집. 뜨락 안에 우물이 있는 집’으로 풀이되어 있으며, ‘전원(前園)’의 경우에는 ‘앞뜰 또는 뜨락’으로 풀이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제안대로 붙이자고 한 이름입니다.

 

그렇게 보면 ‘뜰’은 좀 너르고 그 높이가 집이나 어디나 다 평평한 경우일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뜨락’은 ‘뜰’에 비해 좀 도톰하고 비교적 좁고 더 아늑한 경우일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어쨌든 붙여 놓고 문제가 드러나면 고치자고 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졌으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이름인지 ‘까짓 거’ 별 문제 없는 이름인지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두 곳의 이름을 표시한 표지판을 찾아보면 그 길, 그 뜰만큼 예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지오름길>

<운동장에서 올려다 본 양지뜨락의 가을>

 

<양지뜨락의 가을>

 

 

<양지뜨락에서 펼쳐진 독서축제 기간의 도서바자회>

 

 


 

꿈결에 그 이름과 표지판을 생각하는데 연이어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나서 난데없다고 해야 할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름’은, 김춘수 시인에 의하면, 사회의 상투적인 습관에 의해서 주어진 부질없는 명명(命名), 혹은 단지 그것들을 구별하고자 하는 세상의 안이한 눈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편이 되어 그와 함께 존재의 심연(深淵)에서 따져보고 거기서 그 이름을 찾아주는 것이라는 시가 바로 「꽃」이라는 시랍니다.1) 어느 분은 다 외고 계실 그 시 한번 보십시오.2)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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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金柱演,「瞑想的 集中과 追憶 - 金春洙의 詩世界」,『金春洙詩選 處容』(민음사, 1974), 11쪽.

2) 위의 시집,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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