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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The Harvard Crimson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를까?』

by 답설재 2009. 3. 16.

The Harvard Crimson 엮음/민선식 옮김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를까?』

조선일보사/2003

  

 

 

 

 

 

 

'Application Essay'(입학 지원 에세이)라는 단어를 찾아오는 분이 많습니다. 이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이 참 단순한 책입니다. ‘편집자의 말’ ‘역자의 말’이 각각 두 페이지, 제125기 하버드 크림즌 대표(매튜 W. 그러네이드)와 제126기 대표(조슈아 H. 사이먼)의 ‘책을 내면서’가 두 페이지씩이고, 본문은 입학 지원 에세이와 그 에세이들에 대한 코멘트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50 Successful Harvard Application Essays』라고 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밑줄을 쳐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서 Application Essay가 뭔지 알아내려 했던 것 같습니다.

 

<편집자의 말>

…….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하버드대학 신입생들의 입학 지원 에세이(Application Essay) 중 작문력, 창의력, 독창성을 기준으로 잘된 것 50편을 선정하여 주제별로 10편씩 묶어 수록한 책이다.

러시아 정치에서 바나나에 이르기까지 주제가 광범위하며 글의 장르 또한 의식의 흐름에서 독백 형식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자신을 소개하는 데 동원된 소재와 장르가 너무도 다양하고 폭넓어 “나를 소개하는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글, 상식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글이 아닌, 흥미롭고 독창적이며 개성이 톡톡 튀어 읽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머릿속에 그려보게 할 만큼 생동감이 넘치는 글들이다.

더불어 각 에세이마다 하버드대학 대학신문인 하버드 크림즌의 편집진이 달아놓은 짧은 비평에는 글쓰는 전략으로 글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들과 그저 그렇게 만드는 요소들, 그리고 자칫 진부함으로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꼼꼼히 짚어 놓았으니…….

 

<역자의 말>

……. 미국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Show and Tell이란 시간을 통해 자기 물건이나 가족사진을 가져와 친구들에게 내용을 설명한 다음 다른 아이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하버드는 졸업 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 분야에서 리더가 될 자질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지원자를 심사한다. 매년 하버드대학 응시자 수가 신입생 정원의 열 배를 넘으니 미국 전체 고등학교 5000군데에서 전교 일등을 하는 학생도 하버드에 입학한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단지 공부를 잘했다는 것만 가지고는 하버드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보완적인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지원자에 관해 좀더 상세히 알 수 있는 자기 소개서(Application Essay)를 요구한다. 지원자 개개인의 인생관을 알 수 있고 남에게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좋은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

 

<책을 내면서>

에세이는 글 쓴 사람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이고 재미있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잘 쓴 글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게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

 

 

50편의 에세이 중 맨 처음의 딱 한 편만 소개하겠습니다.「감성」이란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널빤지를 깐 해변의 산책로를 따라 썩은 연어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가 파이브 스타 카페Five Star Cafe에 스며든다. 나는 뒤편의 좁디좁은 주방에서 내일 만들 소바 샐러드용으로 빨간 고추를 썰고 있다. 애덤은 머리를 짧게 자른 귀엽게 생긴 아이인데, 내 옆에 서서 이탈리아산 치즈를 자르며 스웨덴에서 스노우보드를 타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관광객들 중에는 우리 카페 앞을 지나가면서 창문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들은 물길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들에만 관심이 있는지 물고기들이 생존을 위해 끝없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지금은 오후 세 시. 붐비는 점심시간이 지났고 저녁 시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나는 같은 크기로 썰려 떨어지는 빨간 고추를 바라보며 아래로 향하는 칼놀림의 리듬에 최면이 걸린 것처럼 풀어져 있다. 문이 열린다. 손님이다.애덤이 내 쪽을 보며 말한다. “누나 차례야.”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고추를 놔 둔 채 계산대 쪽으로 간다. 어떤 남자가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잿빛 머리카락 뒤에 숨어 있는 그의 눈이 내 눈과 마주치자 나는 눈을 떨궈 그의 팔을 바라본다. 그의 여윈 팔에는 여러 가지 문구와 그림과 상징들이 문신되어 있었는데, 이 오래된 문신 중에 거미줄 문신이 제일 눈에 띈다. 문신을 응시하다가 나는 고개를 든다.“뭐 드시겠어요?” 내가 밝게 묻는다.그는 뭔가 경계하는 듯 나를 바라본다. “커피 한 잔.”애덤은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주고 나서 다시 치즈를 썬다.“1달러입니다, 손님.” 손님은 주머니를 뒤지더니 구겨진 지폐를 꺼낸다. 그는 돈을 쥔 손을 내밀다가 갑자기 뒤로 움츠린다. 놀라서 표정이 바뀌어버린 그가 내게로 몸을 기울이면서 두려움 섞인 눈으로 금전등록기를 바라본다.“저게, 저게 말입니다….”그는 더듬거리며 묻는다. “저거 살아 있나요?”나는 기계를 본다. 평범한 이 회색 기계는 카운터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다. 다만 그가 지불해야 할 금액이 녹색으로 나타나 있다. 내가 파이브 스타에 처음 왔을 때, 나도 이 기계가 살아 있는 줄 알았다. 이 사악한 기계는 그 계산력으로 내게 늘 굴욕감을 안겨 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와 기계는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고, 기계는 더 이상 악마처럼 행동하지 않는 보통 기계가 되었다. 나는 기계, 자동차, 컴퓨터 그리고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을 생각해본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항하여 들고일어날 수 있을까? 내 뒤에 있는 에스프레소 커피 기계가 공격을 개시하여 뜨거운 물을 쏟아내고, 금전등록기가 나를 덮쳐 바닥에 넘어지게 하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니야, 물론 그럴 수 없지.다시 한 번 인간의 ‘감성感性’이 승리한다.“아니에요, 손님. 단지 기계일 뿐이죠.”라고 내가 설명한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은 내 말이 아직 납득되지 않는 듯 다시 한 번 안심시켜 달라는 눈치였다. “이 기계는 돈만 받을 뿐이죠.” 나는 그의 지폐를 받아, 버튼 하나를 눌러 어떻게 돈을 안에 넣는지 보여 준다. 그는 커피를 양손으로 들더니 조금씩 마신다.“기계라구요….” 그는 조용히 기계라는 말을 따라 한다.금전등록기는 카운터 위에 조용히 앉아 있다. / 아멘다 데이비스 /

 

▒코멘트▒

 

주제나 스타일에서 <감성>은 마치 신선한 공기와 같다.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평범한 에세이들을 읽다가 알래스카 해변 한 카페의 빨간 고추, 이탈리아산 치즈 그리고 금전등록기에 대한 에세이를 읽는다고 상상해보라. 어찌 눈에 확 들어오지 않겠는가? 인생을 바꿔 놓은 경험이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대신, 이 학생은 읽는 이를 사로잡는 것으로 그녀 자신과 그녀의 재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독창적인 소설가처럼 이 학생은 파이브 스타 카페를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여 읽는 사람들은 마치 해변에 있는 식당의 주방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에세이의 목표가 독자의 시선을 끌고 독자에게 필자를 기억시키는 것이라면 이 에세이는 바로 이 점에서 성공한 것이다. <감성>에는 그밖에도 다른 장점이 있다. 여윈 남자와의 대화는 현대 생활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를 둘러싼 기계와 우리는 어떤 연관을 맺는가?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 인간들의 감성은 어떻게 변하는가? 그리고 기계는 계층과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에세이는 이러한 질문에 구태여 답하려고 하지 않지만, 이런 질문들을 제기함으로써 필자가 상당한 세련미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내심은 아주 재미있는 심성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에세이에도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장면이 너무나 초현실적이기 때문에 이 작품이 허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입학 에세이는 필자의 진실하고 개인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어서 읽는 이의 신뢰를 얻어야 더욱 값진 에세이가 된다. 허구의 개입은 이를 망친다. 게다가 필자는 자신이 생각 깊고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생동감이 넘치는 상상력이 있다는 것을 봉여주고 있지만, 많은 의문에 대한 답은 드러나 있지 않다. 필자의 장래 희망은 작가인가? 자신의 창의성으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다른 입학 지원 서류를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감성>은 이 작품이 선택한 위험 덕분에 그리고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