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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육과정 속의 논술(제2강)

by 답설재 2008. 11. 4.

   이번에는 <교육과정 속의 논술> 원고입니다. 이 원고가 제 블로그의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어디에 분류해 넣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기준에는 2007년에 개정 고시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논술교육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반영되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논술교육은 그동안 학교교육과정 및 방과후 논술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히 실시되어 왔으나, 교육과정에 구체적인 논술 관련 단원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있어 국가교육과정에서 논술교육을 강화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이 발표를 보면, 매우 선언적 수준으로 반영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에는 국어교과에 논술 관련 내용을 강화하고, 고등학교에서는 국어과 선택과목인 ‘작문’에 하나의 단원으로 반영한다고 했습니다. 또, 사회, 과학, 도덕 등 논술지도가 가능한 교과에 논술 관련 학습요소 및 평가내용을 설정하여 각 학교에서 논술지도 방안을 강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국가교육과정을 보면 논술을 지도하는 관점이나 지도방법, 지도내용, 평가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다 나타나 있겠지’ 하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국가교육과정의 이러한 조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논술교육 자체의 특성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해야 합니다.


논술이란 어느 한 교과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치거나, 중․고등학교의 경우 어느 한 교사가 전담하여 가르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논술은 학생들이 전 교과, 전 영역에서 배운 지식과 기능, 가치관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관찰력, 이해력, 분석력, 평가력, 비판적 사고력과 논리적 사고력, 창의력, 체계적인 표현력 등 그 학생이 지닌 사고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좀 추상적으로 말하면, 논술은 전 교과 전 영역에서 항상 지도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추상적으로 말한 것을 풀이한다면, 가령 컴퓨터 교육은 전 교과목의 도구가 되므로 어느 교과에서나 배워 일상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초교육입니다. 이에 비해 논술은, 전 교과, 전 영역에서 배운 결과를 기반으로 그러한 교육의 결과가 전체적으로 반영되는, 보다 수준 높은 단계의 교육입니다.

초등학교에서 무슨 논술을 지도하느냐는 관점도 있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논술은 아무튼 국어교사가 지도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유력한 경향입니다. 만약 이렇게 나아간다면 우리의 논술교육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논술교육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아주 어릴 때부터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학자는 미국의 유치원에서는 Show and Tell이란 시간을 통해서 자기 물건이나 가족사진을 가져와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공부를 시키더라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쯤은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하겠습니까? 물론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활동을 시키는 과정에서 논술의 기초를 다루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사고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겠다는 관점을 가지면 얼마든지 지도할 수 있고, 그 과정의 사고와 표현을 글로 옮기면 그것이 바로 논술이 된다는 뜻입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논술을 지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교과에서나 논술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문은, 중․고등학교의 경우 어느 교사나 논술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자유롭게 선정한 책을 읽되, 요약, 예측 및 추측, 평가 등 제시문에 따라 1년 내내 독서기록을 제출한답니다.

또, 중․고등학교에도 글쓰기 전담 교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영어는 물론 사회, 과학 등 여러 교과의 교사들이 에세이, 작문, 논술, 연구보고 등 다양한 글을 써내게 할 만큼 글쓰기 지도를 중시하고 있답니다.

‘숙제’라고 하면 으레 글쓰기 수준을 평가하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일상화되어서 하버드 대학생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기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글쓰기라고 대답하더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어, 사회, 도덕, 과학 등 어느 교과에서나 학습목표에 맞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글쓰기 과제를 제시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교육이 단편적 지식을 주입하는 설명식, 강의식 교육보다 중시돼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논술을 지도하려면, 우리는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각 학년별, 교과별로 그 교과를 지도하는 관점에 논술교육을 반영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각 교과의 단원별로 어떤 종류의 글을 쓰게 하겠다는 계획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학교교육과정의 편성에 반영된 논술교육이라야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어나 사회, 도덕, 과학 같은 교과는 논술 과제를 제시하기에 참 좋은 교과입니다. 물론 음악이나 미술 교과에서도 감상문 정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학교행사라고 부르는 여러 가지 교육활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각 학교에서는 연중 수많은 종류의 발표회를 개최합니다. 이때 강당에 모여 그 발표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할 일이란 그저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 아이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내주는 일뿐인 현상이 우리나라 현장교육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뛰어난 아이들의 발표를 지켜보는 플로어의 아이들도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 공부의 한 가지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다른 아이들의 발표를 지켜본 뒤 지도관점에 따라 글을 써내게 해야 제대로 된 행사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쓴 그 아이들에게도 상을 준다면, 상을 받는 아이들은 단상에 올라간 아이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발표회장에 참석한 모든 아이들에게 수상의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관점은, 논술교육을 계기로 우리 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논술교육은 결코 대학입학전형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관점으로 지도해서는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수준의 제대로 된 논술교육을 할 수가 없습니다.

논술은 우리가 학생들에게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핵심적인 삶의 기능을 익히도록 한다는 관점에서 지도해야 합니다. 교육학자들이 지금까지 우리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입시위주의, 지식주입식 암기교육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사고력, 창의력을 키워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논술교육을 하자는 것은, 바로 이 사고력과 창의력, 분석력, 표현력 등 고급의 정신기능을 길러주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육에서 고질적인 병폐가 된 지금까지의 교육방법을 실제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교육방법을 확립해야 합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수업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최근 KAIST 총장은 “학원에서 암기위주로 공부한 학생을 뽑지 않겠다” “우리는 준비한 답을 암송하는 학생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한 잠재력 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또 컬럼비아대학의 한 교수는 1985년부터 20여 년간 아이비리그 등 14개 명문대학에 입학한 한국인 학생 1400명 중 겨우 56%인 784명만 졸업하고, 44%가 중도 탈락생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비율은 중국, 인도 등에 비해 2~3배나 높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한국 학생들의 중퇴율이 높은 것은 입시위주 공부를 해온 탓에 사회적응력이 떨어져 미국의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절반인 48.3%가 자녀의 유학을 희망하며, 이는 ‘국제적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교육제도가 싫다’는 사람도 24%나 된다는 통계청 발표도 그러한 지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조기유학생들이 지적한 한국교육의 가장 나쁜 점은 ‘암기위주 주입식교육’이라는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도 마찬가지 사례입니다.


다음으로, 학교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논술교육의 유의점 몇 가지를 제시하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여러 교과와 영역에서 얼마든지 논술을 지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빠진 행정가나 교육정책 입안가 중에는 논술에 대해서도 시책을 내고 재량활동 시간이나 특설 시간에 지도하도록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정에 휘둘리지 말고,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자주 논술을 지도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특히 너무 구체적인 기술 지도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제와 결론을 구별하라’ ‘생각을 자연스런 순서로 나타내어라’ ‘신뢰할 수 있는 전제로부터 시작하라’ ‘일관된 용어를 사용하라’ ‘둘 이상의 예를 들어라’ ‘글씨를 예쁘게 쓰고 틀린 글자가 없게 하라’ 같은 요령들입니다. 이런 기술부터 지도하면 아이들은 논술에 대해 싫증을 내기 마련이고 곧 지치고 말 것입니다. 글을 쓰는 활동이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행정가는 논술교육이 중시되고 있으므로 학업성취도평가문항에 서술형 주관식 문제를 많이 출제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관점이 바로 우리 교육을 황폐화시켜 왔습니다. 서술형, 주관식 문제와 논술은 그 개념이 다르고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서술형 주관식 문제를 보고 이게 논술이라고 지도한다면 결국 잔꾀나 부리는 학생을 만들게 됩니다.


우리는 대학입학전형을 염두에 둔 논술교육을 해서는 안 됩니다. 논술마저 대학입학시험을 염두에 두고 지도한다면,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고생스럽게 되며, 우리 교사들은 또한 얼마나 큰 중압감 속에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겠습니까. 논술은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마음껏 활용하고, 그들이 가진 사고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고, 다음에는 더 잘 쓰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하며 가르친다면, 그러한 학습능력이 생애능력이 되고 입학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