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학교교육과정 평가와 그 결과 활용

by 답설재 2008. 9. 21.

 

 

나는 평소 '학교교육과정'이 홀대를 받고 있는데 대해 나름대로 큰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학교교육과정’은 명분만 번드레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보십시오. 교육과정 전문가들은 너나없이 '교육과정'(국가교육과정, 교육과정 기준)을 연구하지 어느 누구 뚜렷하게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이나 각 학교별로 편성․운영하는 학교교육과정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적어도 교육과정을 연구해야지 그깟 지침이나 학교교육과정을 연구해서야 빛을 보겠나?' 하는 생각들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입니다. 지난 8월 어느 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직원이 전화를 해왔습니다. "우리가 학교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9월 중에 세미나를 열 테니까 그때 토론을 좀 해주십시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어딥니까? 우리나라의 거의 유일한 교육과정 연구기관에서 세미나를 한다는데 '토론자'로 나서면 어떻습니까? 체면이고 뭐고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또 학술연구기관에서는 대개 자기네들끼리 연구하고, 연구한 결과를 점검 받기 위한 세미나나 토론회, 협의회를 개최하므로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주제넘게 나도 발표를 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덧붙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연구를 대체로 자기네들끼리 하고 있는데, 이것은 참 잘못된 관행입니다. 일본처럼 현장의 교원들도 참여시켜야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돈만 더 들어가고 효율성은 낮아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현장의 우리는 분명히 일본의 현장교원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뜻이 될까요? 그런데 그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어서 나에게 토론을 시키겠다는 계획을 바꾸었나 보다 했는데, 추석을 앞두고 연락이 왔습니다. 토론이 아니라 별도의 발표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연락한 분 이야기만 듣고는 무슨 내용을 발표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걸 전화로 다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곧 연구자들의 발표문을 메일로 보내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글들을 받아봐야 감을 잡을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럭저럭 또 며칠이 가서 드디어 추석 사흘 전엔가 메일을 받았고, 대충 검토한 다음에 부리나케 원고를 썼습니다. 더구나 그분과 연구자 중 한분이 번갈아 연락하면서 추석연휴 바로 다음날 원고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배부할 자료집을 만들자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1박2일만에 쓴 원고를 첨부합니다. 그 전에 우선 그 세미나의 윤곽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 주제 : 학교교육과정 평가지표 및 도구개발과 평가결과 활용방안 탐색을 위한 세미나

○ 일시 : 2008.9.19(금).13:00~18:00 ○ 장소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회의실(본관 3층)

○ 주최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세미나 개요

<제1부> 학교교육과정의 계획․운영․성과 평가

주제1. 학교교육과정 평가의 방향(소경희 : 서울대학교)

주제2. 학교교육과정 평가 실태 및 요구 분석(최병택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제3. 학교교육과정 평가지표 및 도구 개발의 기본전제(박소영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제4. 학교교육과정 평가지표 개발(안)(이수정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제5. 학교교육과정 평가방법 및 도구 개발(이재기 : 조선대학교)

【토론】교육과정 평가지표 및 도구(안)에 대하여

토론1. 김재춘(영남대학교)

토론2. 박상철(서울교육대학교)

토론3. 김주후(아주대학교)

<제2부> 학교교육과정 평가결과 활용 및 정책방안

발표1. 김만곤(남양주양지초등학교)

발표2. 이영섭(강원도교육과학연구원)

발표3. 김진규(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과정 평가와 그 결과 활용

 

 

 

학교만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있을까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일에서나 계획-실천-평가와 환류, 그 일관성과 순환과정이 ABC라면 학교만큼 그 ABC가 지켜지지 않고도 ‘생존’에 지장이 없는 기관이나 단체, 조직이 있을까 싶고, 편하게 말하면 그런데도 망하지 않는 조직이나 기업체가 학교 말고도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학교의 평가활동 횟수나 양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잘 들여다보면, 학교는 수시로 평가자료를 작성하거나 제출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활동들이 학습지도나 생활지도, 꼬집어서 말하면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여 학력(學力) 향상 ‘경쟁’을 시키겠다는 국가정책의 방향에 직접적으로 어떤 연계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인 보고서가 ‘있다’는 뜻이다. ‘있다’기보다는 ‘언제 우리가 학업성취도 혹은 학업성취도 향상을 지원하는 일에 관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해보았는가, 그러한 보고서를 제출해보았는가’ 싶은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1) 한 가지만 지적하라고 하면 ‘학교평가’와 ‘학교교육과정평가’를 별개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나 의도를 들 수 있다. 학교는 그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일 말고는 하는 일이 거의 없다. 학생들은 등교하면 당장 교과와 재량활동․특별활동 학습을 하고 그 활동이 끝나면 하교하고 있을 뿐이다. 가르친다는 측면에서는 거기에 생활지도가 부가될 뿐이다. 가령 ‘방과후학교’도 운영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건 교육과정상의 교과 보충학습이나 특별활동인 것을 무슨 특별하고 희한한 교육이나 하는 것처럼 별도로 개념화한 정책이 어색하게 굳어진 결과라고 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 평가의 연구방향도 천편일률적으로 고답적이다. 학교교육과정 평가를 연구하는 일의 내용이 학교를 지원하는 행정기관이나 연구기관에서 학교를 평가할 때 쓸 도구를 만드는 일에 지나지 않고,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당해 학교의 교육을 평가할 수 있는 체제 연구는 하지 않으면서 수십 년간 겨우 그 지표나 도구의 연구․개발에 머물러 있다면, 이미 연구한 것은 사장시키고 그러한 연구를 의미 없이 반복하고 있다면, 언제 실천적이고 현장친화적인 유용한 연구가 이루어질는지 암담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Ⅰ. 학교교육과정 평가의 필요성

 

타일러(Ralph W. Tyler, 1949)는 교육과정의 기본요소를 네 가지로 구분하고 교육과정이나 수업계획을 편성할 때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① 학교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목표는 무엇인가? ②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학습경험의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③ 이러한 학습경험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④ 교육목표의 달성여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2)

 

타일러의 이 모형은, 교육과정의 각 요소들이 순환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교육목표가 설정되면 이를 토대로 하여 학습경험의 선정 및 조직이 이루어지고, 학습성과 평가를 실시하게 되며, 평가결과는 다시 교육목표 설정에 송환되어 교육과정의 수정․보완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따라서 이 모형에 의하면 평가활동이 교육과정의 계획과 전개에 있어서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밝혀지며, 그것은 단순히 학생들의 성적을 판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획되고 전개된 교육과정의 효과를 검증해주고, 그것의 어떤 측면이 수정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교육과정 평가는 교육과정 모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

 

 

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

 

1940년대의 케케묵은 교육과정 모형이론이라고 폄하하고 싶다면, ‘목표를 우위에 두고 그 나머지 내용과 방법을 수단의 위치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나 ‘목표에 규범적 전제가 빠져있기 때문에 그 목표 자체가 또 다른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사전에 설정해놓은 의도적인 교육목표의 달성여부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효과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는 우리가 교육과정 평가를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자체에 대해서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할 수 있다. 가령 부수적 교육효과 검증도 중요하다면, 그런 것 때문에 평가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우선 핵심적․기본적 교육효과나 제대로 평가하자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교육과정 평가 실태를 타일러의 이 모형이론에 비추어보면 그 순환과정 혹은 일관성이 지켜지는 모습을 발견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기야 교육목표가 학교에서 관습적으로 설정하는 4~5가지의 교육목표를 말하는 것인지4) 아니면 각 학교의 그 목표와 유사한 국가 교육과정의 ‘추구하는 인간상’5) 혹은 국가 교육과정에 나타나 있는 학교 급별 교육목표6)와 각 교과별, 영역별 목표7)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개념규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학습경험’이란 바로 ‘교과서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교육목표와 학습경험의 선정 및 조직, 학습성과 평가 및 환류가 순환과정을 이루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바로 학교교육과정 평가활동에 대한 개념 정립, 중요성과 필요성 인식, 평가활동의 방법 구안 등 전체적․종합적 연구로써 우리의 학교교육(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 및 환류)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Ⅱ. 학교교육과정 평가의 실태

 

학교교육과정 평가의 실태를 이야기하려면 자연히 ‘학교교육과정’의 효용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학교교육과정이 실재(實在)하면 그 문서는 당연히 평가될 수 있지만, 그러한 문서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평가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8)

 

1. 학교교육과정의 실태

 

국가 교육과정의 지침으로 보면 제6차 교육과정이래로 우리는 학교교육과정을 작성하고 있다. 다만 각 학교에서 작성하고 있는 학교교육과정은 그 학교의 학년․학급 혹은 교과별 교육과정 편성에 필요한 문서가 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교육과정을 근거로 하여 수업을 계획하거나 정규교과 수업 외의 수많은 교육활동(이른바 학교행사)을 계획하는 교사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교교육과정은 당연히 학년․학급․교과별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데 필요한 문서가 되어야 하지만 이 네 가지가 서로 간에 있으나마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교사들은 학교교육과정을 참조하지 않고 학년․학급․교과별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다. 여러 가지 수준의 교육과정을 각기 따로 만들고 있으며, 그것도 이 학교 저 학교의 교육과정들을 보고 적당히 문서의 형식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과정 문서를 만드는 일은 거의 필요 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단순작업일 뿐이다.9)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종전의 ‘학교경영계획’10) 형태의 계획이 수립되고 있고, ‘교육과정 중심 교육계획’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교과와 특별활동, 재량활동 계획은 아주 단순하게 작성되고 있으며, 오히려 ‘교육과정 지원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시책이나 특별실 활용 같은 것은 구체적으로 계획되고 있다.11) 핵심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가고 지엽적인 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 중심의 학교교육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고 교육과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전문성도 갖추어야 하는데, 교과서대로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과정에 익숙한 교원들이 학교교육과정의 최소한의 격식이라도 갖추는 것에 만족하는 경향이 굳어진 것으로 보이며, 무엇이든 남이 안 하는 것, 소홀한 것을 특징적으로 강조하거나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다른 관점으로 보면 비정상적인 학교)를 보고 “잘 한다”, “창의적이다” 하고 평가해주다 보니, 그런 교육계획이 뿌리 뽑히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성행하는 것 같다. 사실은, 그런 교육보다는 우선 누구나 배워야 하는 것(말하자면 어느 학교에서나 가르치고 배우는 교과)부터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 그렇게 가르치기 위한 계획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기초․기본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일 것이다.

 

‘학생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하면서도 종전의 지식주입식 교육, 관리중심 학교교육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종전의 관리중심 교육계획 수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거나 학교교육과정을 제대로 편성․운영해야 할 뚜렷한 이유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즉, ‘가르치는 일’이란 ‘교과서의 내용을 족집게가 되어 유창하게 설명하는 강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학교교육과정’을 작성해야 한다는 일이 아무런 효용성이 없는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고방식이나 시스템은 종전대로 두고 ‘학생중심’, ‘교육과정중심’으로 말만 바꾸었으므로, 실제로는 교육과정 운영이 도저히 개선될 수 없는 질곡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정가들이나 교사들이나 '교육과정'을 단순히 '교육내용(교과서)'으로만 보는 경향이어서 ‘그까짓 학교교육과정이 없어도’, ‘그따위는 고려하지 않아도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느냐’는 관점을 가지고 여전히 교과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교는 그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있고, 교과서는 진실로 학습자료에 지나지 않아야 하며, 교육행정은 학교교육과정을 지원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우리 교육은 교육과정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간단한데도 너무나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예를 들면, 학교평가와 학교교육과정평가가 상이하다는 견해), 시시각각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면 그 문제해결의 기준조차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학교교육과정이 학교교육의 핵심이라는 것, 학교교육과정의 개념, 필요성, 중요성만 생각해도, 왜 그렇게 우왕좌왕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형식적으로만 “교육과정이 교육행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 말고 그것을 잘 실천할 수 있어야 우리 교육이 제대로 개선․발전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육의 혁신과제는, 매우 식상해할 지적이지만 교과서 내용전달 중심의 지식주입식 교육, 이른바 ‘붕어빵 교육’을 탈피하는 일이어야 한다. 교실을 ‘설명을 듣고 대답하는 곳’이 아니라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곳’으로 바꾸어야 한다.12) 우리는 이 과제의 해결로 우리 교육의 수준을 한없이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 고질적인 폐단을 방치하고 공교육과 사교육의 문제점을 무슨 공식인양 이야기하면서 그 문제점 해결의 변죽만 울리는 세월을 너무 길게 보내고 있다. 성공적인 학습이 어떤 것이냐를 물을 때 겨우 ‘교과서의 내용을 오랫동안 잘 암기하는 것’이라고 대답해야 한다면 교육이란 것이 한심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선 교과서의 비중이 축소되지 않는 한, 교과서의 권위를 학습자료의 위치로 추락시키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은 설명형을 탈피할 수가 없고, ‘학교교육과정’은 유명무실한 서류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현실과 유리된 공론(空論)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면 학교교육과정이 제 구실을 할 때를 기다리면서 학교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연습’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2. 학교교육과정 평가의 실태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당연히 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에서 실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 학교 교육과정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또한 전국의 수많은 학교를 외부기관에서 평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어서 특수한 입장에 있는 학교를 대상으로 하여 행․재정적으로 그 학교의 교육을 지원해야하거나 불가피한 경우 그 학교의 수준을 판정하기 위한 평가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전국의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그러한 평가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교육과정 자체평가는 보잘것없는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겨우 다음 학년도 학교교육과정을 계획하기 위한 -구색을 갖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실시하는- 형식적인 절차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흔하고, 그것도 형식적인 설문조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설문조사는 대체로 학기말과 학년도말에 실시된다. 교사들은 여러 가지 필수적인 서류와 정리를 해야 하는 그 분주한 시기에 교무․연구부장교사가 가까스로 마련한 수십 개의 각 설문에 대해 자료에 근거하여 분석적으로 답하기보다는 ‘이쯤에 표시할까?’ 식의 짐작만으로 답할 수밖에 없지만, 각각의 그 교육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교사나 그러한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교사나 동일한 비중의 점수를 주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예를 들면 학교예산의 편성과 집행에서 각 학년별, 사업별 예산을 교사들이 편성하고 집행하는 민주적 절차를 거친다 해도, 그러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별로 없는 교사라면 ‘보통’에 √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만 그 한 개의 √표는 적극적으로 참여한 교사의 √표와 똑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설문조사의 결과는 매우 추상적으로 나타나며, 예를 들어 ‘이 영역의 긍정적 반응이 70% 정도라면 만족해도 될 것’이라는 식으로 역시 추상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교육과학기술부나 연구기관에서 연구개발한 평가지표와 설문들은 학교에서 간단히 사용하기도 어렵고 친절하지도 않다. 대체로 전문적이고 접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부적이고 방대하여 어느 학교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기가 불가능하며, 그것도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지 않고 획일적인 형태의 유일한 안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교교육과정 평가결과는 다음 목표 설정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반영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의도한 목표에 따라 지도내용을 선정하고 지도방법을 계획하여 가르친다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필수적인 절차가 되어야 하지만, 목표는 목표대로 설정되고, 지도내용은 그러한 목표야 있건 없건 교과서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의도한 목표와 동떨어진 평가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학교교육과정은 목표는 목표대로, 내용은 내용대로, 방법은 방법대로, 평가는 평가대로 낱낱이 분절적인 요소가 됨으로써 그 과정에서 교육과정 이론모형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기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각 학교에서 학교교육과정 문서에 제시하고 있는 전년도 학교교육과정 평가결과를 보면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체계적이지도 않은 설문에 대한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반응 빈도 정도를 제시하고 있으며 비고란에서 심지어 ‘학교교육과정에 반영’이라는 매우 유치하고 무책임한 표현까지 발견할 수 있다.

 

 

Ⅲ. 학교교육과정 평가를 위한 구상

 

 

학교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연구는 특히 이론과 실제가 병행하는 현장연구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학교교육과정이 그만큼 광범위하기도 하고, 이론만으로 성립되는 개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교육과정은 특히 문서상의 교육과정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문서는 계획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학교교육이 이루어지는 하루하루의 일정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有機的) 교육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정확한 판정을 하기보다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평가는 판정을 목표로 하는 교육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학교교육과정은 특히 목표 설정→ 내용 선정→방법 적용→평가 및 환류라는 연속적, 순환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그러한 발전이 학교교육과정의 기본목적이기 때문에 그 수준의 판정은 극히 지엽적인 목적을 나타낼 뿐이다. 즉,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현재 우리 학교의 교육과정 수준이 어느 단계인가?’를 판정하는데 그쳐서는 오히려 큰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수준을 향상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학교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연구는 겨우 설문조사나 체크리스트를 위한 지표나 도구를 마련하는 단편적이고 안이한 연구보다는 이론가와 현장교원이 함께하는 현장연구, 실천연구로 이루어져야 한다.

 

○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학기말․학년도말에 종합적인 총괄평가만으로 이루어져서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다.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3월초부터 다음해 2월말까지 연간 상시적인 평가로 이루어져야 하며, 학기말 및 학년도말의 종합적인 평가, 보완적 평가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종합적․보완적 평가는 설문조사나 체크리스트와 같은 간편하고 안이한 방법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새 학기, 혹은 새 학년도 학교교육과정 계획을 위한 워크숍 형태가 중심이 되는 체계적이고 전체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설문이나 체크리스트 중심의 활동을 탈피하여 입체적, 다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교육과정은 설문이나 체크리스트로 평가되기에는 복잡하고 활동적인 평가 대상이다. 그것은, 학생들의 학력은 지필고사만으로 측정될 수 없고 선다형만으로 측정될 수 없다는 논리와 같은 성격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서면평가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모든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 생활지도는 물론, 교원조직이나 예산 편성․운영과 같은 교육과정 지원활동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보고서 작성이 필수적이다. 또 학부모 대상 설문조사는 학교나 담임․담당 교사를 의식하여 솔직하고 정확한 답변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으므로 익명성이 전적으로 확보되는 학교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평가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면담평가, 학교교육과정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학부모 및 지역사회 인사와의 면담평가도 유용도가 높은 평가방법이 된다. 설문조사나 체크리스트는 이러한 평가방법에 의한 평가를 보완하는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학교교육과정 평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특히 그 본질추구에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행정은 학교의 기능․역할을 교육행정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사례도 있으므로,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위한 노력이 다른 어떤 노력보다 앞서야 하는 곳이라는 당연한 논리를 강조하고 싶은 경우도 있다. 교육시책은 아무리 다양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학생들이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을 학습하고 바람직한 학교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그 시책들이 이러한 목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교육행정가들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 혹은 생활지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항상 자체평가를 해나가야 그러한 본질추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교육의 본질추구에 충실한 학교교육과정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학교평가’는 당연히 ‘학교교육과정 평가’와 동일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 즉, 행정적 통제 혹은 압력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학교평가의 장면이 있다면 그러한 평가는 당연히 폐지되거나 평가 본래의 취지에 맞추어 조정되어야 한다.14) 따라서 학교교육과정 평가에 관한 연구는 우선 ‘학교평가’, ‘학교교육과정’ 및 ‘학교교육과정평가’에 대한 개념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Ⅳ. 요 약

 

 

학교교육과정은 문서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그 모습이 변해가는 살아 있는 구체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모습을 나타내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학교교육과정의 실제가 그 학교가 작성한 문서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실제가 문서의 수준보다 오히려 더 수준 높게 이루어지는 학교도 있다.

 

학교교육과정의 개념이 현장에 도입된 것은 제6차 교육과정기였고, 제7차 교육과정기의 전반기에는 이 교육과정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그 개념 연구와 적용이 드디어 꽃을 피울 듯했으나, 최근에 이르러 교육행정기관의 시책구현을 위한 노력이 각종 평가(교육과학기술부의 시․도교육청 평가, 지역교육청 평가, 학교평가)를 통해 학교현장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학교교육과정은 다시 그 핵심인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을 소홀히 하고 교육과정 지원활동이 중시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시절의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선정이 처음 시작된 2003년을 지나고부터는 차츰 교육과정 본질추구를 탈피하여 특수한 주제를 내세우는 시책 중심 학교교육과정 선정에 기울어간 것도 그러한 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학교교육과정에 대하여 신기하고 희한한 활동을 요구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각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을 더 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가를 연구․실천하는 길에서 창의성과 다양성을 추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의 창의성과 다양성 추구는, 가령 육상을 잘하는 학교, 수영을 잘하는 학교, 축구를 잘하는 학교부터 만들어나갈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피리를 잘 불고 싶은 아이,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아이가 볼 때는 ‘절름발이 학교’가 되므로- 체육과 교육과정에 맞는 목표, 내용과 방법, 평가를 잘 계획하고 실천하고 평가․환류하는데 대해 학교 구성원들이 지혜와 전문성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거기에서 창의성과 다양성이 드러나게 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 평가를 연구하려면, 우선 학교현장을 찾아가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현장에서 학교교육과정이 어떻게 연구(개발, 디자인, 작성)․유지(발전, 퇴행)되고 있는지부터 관찰해야 하며, 교사들은 ‘잘 설명하기’보다 ‘잘 학습하게’ 하고 있는지, 혹은 정말로 ‘족집게’ 교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추구하는 ‘학교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짙은 회의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길부터 찾아야 한다. 지표와 도구 개발 같은 연구실에서의 페이퍼 워크는 그러한 현장 관찰․조사가 끝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

 

 

...................................................................

 

1) 교육과정이 얼마나 홀대를 받아왔는가 하면,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교육과정정책과 교수․학습지도에 관한 정책을 별도의 정책으로 다루어왔고, 지난해 5월(?)에는 시․도교육청 평가지표 개발․연구과정에서 가령 ‘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원’ 10점, ‘훌륭한 영어교사 확보’ 12점 같은 웃지 못할 시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교육은 이렇게 이루어져왔다.

2) 李鍾昇, 1990,『TYLER 敎育課程과 授業의 原理』(교육과학사), 4쪽.

3) 위의 책, 5~6쪽 참조.

4) 학교교육목표의 예 : ○ 함께하는 생활이 즐거운 어린이, ○ 스스로 해결하는 실력 있는 어린이, ○ 새로운 생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 ○ 마음씨 곱고 몸이 튼튼한 어린이

5)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 : 가.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나.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다.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마. 민주 시민 의식을 기초로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

6) 초등학교의 경우 : 초등학교의 교육은 학생의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 능력 배양과 기본 생활 습관을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가. 몸과 마음이 균형 있게 자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다. 나. 일상생활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기초 능력을 기르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경험을 가진다. 다. 다양한 일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학습 경험을 가진다. 라.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애호하는 태도를 가진다. 마.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생활 습관을 기르고,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씨를 가진다.

7) 국어과 목표의 예 : 국어 활동과 국어와 문학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국어 활동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국어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국어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고,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국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기른다. 가. 국어 활동과 국어와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익혀, 이를 다양한 국어 사용 상황에 활용하면서 자신의 언어를 창조적으로 사용한다. (후략)

8) 우리가 ‘학교교육과정’을 가지고 있는가?

<일화①> 영국 교육부 장학관 일행이 우리나라 교육부 편수국에 찾아왔다. 우리나라 ‘교육과정기준’을 살펴본 그들이 초․중․고등학교 교육현장을 보고 싶어 했다. 편수국에서는 서울의 몇몇 학교를 소개해주었다. 그들은 초등학교부터 방문하여 ‘학교교육과정’ 문서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 학교에서는 당연히 ‘학교경영계획’(혹은 ‘학교운영계획’)을 내놓고 설명했다. 그 문서에 대한 설명을 들은 그들은 “이번에는 교과와 특별활동 지도계획인 ‘학교교육과정’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다른 문서를 내놓으라는 말을 듣고 그 학교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보여준 것이 그 계획’이라고 강변했다. 영국인들은 할 수 없이 그 학교를 나와 이번에는 중학교를 찾아갔고, 당연히 그 초등학교에서의 경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시 교육부 편수국에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학교교육과정이 비밀문서인 모양인데, 교육부에서 그것을 좀 보여줄 수 없겠습니까?” 이것은, 함수곤(전 한국교원대학교) 교수가 이야기하는 일화이다. 오늘날에도 ‘학교교육과정계획’이 아닌 ‘학교교육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학교교육과정계획’은 사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단언해야 한다.

<일화②> 제6차 교육과정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을 작성하게 되었고, 각 학교에서도 드디어 ‘학교교육과정’이라는 문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학교에는 ‘학교경영계획’ 혹은 ‘학교교육계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교육과정계획’을 작성하라고 했으므로 학교에는 당연히 일대 혼란이 일어났고, 편수국에서는 ‘학교교육과정계획’이 바로 학교교육계획이므로 그것만 작성하면 된다고 강력하게 홍보했다. 그러자 ‘그렇다면 이름만 바꾸면 되겠다’고 해석한 학교, ‘그래도 그렇지. 학교는 당연히 학교경영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끝까지 버티는 학교, 두 가지를 다 만들어놓고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학교경영계획’, 혹은 ‘학교교육과정계획’을 그야말로 방문자의 입맛에 따라 내놓는 학교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제7차 교육과정기에 이르자 ‘학교교육과정계획’으로 일원화되는 경향이었으나, 교육행정기관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가지 교육시책을 일관성 있게 강조해나가자 각 학교에서는 최근에 이르러 차츰 다시 ‘학교경영계획’ 수립의 관점을 회복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교육행정은 학교에서 각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을 지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심지어 시책은 행정기관이 챙기고 교육과정 운영 같은 일이야 각 학교에서 알아서 하는 일 아니냐는 듯 경시하기도 한다.

9) ‘학교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과정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필자는 일부 -그 일부가 전체 학교 중 얼마 만큼인지는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학교의 바람직하지 못한 특징을 일반화했다. 이러한 변명을 하는 이유는 학교교육과정을 훌륭하게 작성하여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는 학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만 40년간의 경험과 관찰로써 아직은 그러한 학교를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을 변명하자면, 그러한 일은 실천을 기반으로 하는 고도의 수준 높은 프로그램 구성이 되어야 하므로 1,2년 만에 이루어질 수가 없는 일이다.

10) 명칭이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학교경영계획’이든 ‘학교교육계획’이든 우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 교과와 재량활동․특별활동을 지도하기 위한 계획, 생활지도를 하기 위한 계획이라면 그 명칭이 ‘학교교육과정계획’이 아니어도 그만일 것이다.

11) 가령, 국어과 지도계획은 언제나 1페이지일 때 국어순화지도계획은 5~6페이지가 되게 하고, 과학과 지도계획은 언제나 1페이지일 때 과학실 운영계획은 5~6페이지가 되게 하면서 그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으면 그것이 바로 시책 중심 혹은 지원행정 중심 교육계획이다.

12) “정말 강의라는 것이 원맨쇼가 아니라 교육적 의미를 갖는다면, 학생들에게 물음을 일으키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교사의 능력이다. 그렇지 않고 교사 자신의 지식으로 학생들을 세뇌하고 그것에 길들이는 것,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빼앗고 상상력을 죽이는 것,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족집게 교육’을 생명으로 하는 사교육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철저하게 학생들의 자생력을 무너트리고 자생력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야 학원에 더 의존하게 만들고 학원에 의존하게 만들어야 학원이 장사가 된다. 자생력이 없는 공부, 스스로 문제를 풀고 스스로 문제에 마주할 수 없는 공부,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배영순(영남대 국사과 교수),「정답을 주는 교육, 물음을 주는 교육」,문화일보, 2008.9.11, 22면.

13) 교과서가 없는 나라에는 분명히 ‘학교교육과정’이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실용적인 문서가 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14) 가령 학교평가의 공통지표체계(2006학년도의 경우)에서 그 영역이 ‘학교교육목표’, ‘교육과정 및 방법’, ‘교육성과 관리’, ‘교육경영’으로 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 아래의 평가내용이나 평가지표, 평가요소들이 위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평가지표체계를 그리 쉽게 비판하거나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지표체계에 의해 이루어진 학교평가 결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교의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가 객관적으로 이상적인 것이어서 널리 일반화된 사례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학교를 찾아 학교교육과정의 방향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관찰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현재의 ‘학교평가’에 대해 어디가 잘못되고 있는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추신 1. 이런 글을 보고 아무도 ‘논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논문을 쓸 수가 없습니다. 별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발표문’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입니다.

추신 2. 그날의 세미나에서는 오후 6시가 넘도록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그 토론을 다 지켜본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혹 농담쯤으로 들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연구의 책임자(박소영)는 억지로 ‘학교평가’와 ‘학교교육과정평가’를 차별화하기 위한 논리를 찾지 말고, 원장(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에게 학교교육과정 평가를 위한 지표와 도구 개발 연구를 진행하다보니까 결국은 학교평가 지표, 도구와 유사해지고 결국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십시오. 학교는 결국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이고, 교육과학기술부나 교육청의 시책, 정책, 제도들은 모두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일을 지원하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진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평가가 차별화된다면 우리나라 교육과 교육행정이 잘못 되어간다는 뜻이 됩니다. 원장에게 그렇게 보고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과 한국교육개발원장이 함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만나 셋이서 그 두 가지를 일원화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하십시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양 연구기관에 이 연구를 해달라고 했다고 그냥 진행하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덧붙이면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하는지도 한번 알아보십시오.” 나는 그날 결코 ‘농담’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날 오후에 그 부근에서 다른 기관의 회의를 하고 부랴부랴 세미나의 마지막 발표를 하러 갔고, 그 연구의 성격을 그제야 확실히 파악했지만, 그렇게 말한 그것이 내 결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결론이 틀렸는지 두고 보십시오. 언젠가는 다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