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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젬병’ ‘핫바지’를 위한 변명

by 답설재 2008. 10. 15.

 

 

 

나는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회원입니다. 이 연구회는 전현직 편수관(編修官)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그러나 학술진흥재단 같은 기관에 등록된 단체는 아닙니다.

 

내가 보기엔 등록을 하기 싫어서 등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거기에 등록하려면 상당한 자격(요건 : 가령 논문집의 수준)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걸 감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2006년에는 프레스센터에서 제1회 '교과서의 날' 행사를 개최했고, 올해는 3회째인데, 벌써 힘이 빠지고 교육부 지원도 없어 그냥 연구회 사무실(출판사 천재교육의 건물 내)에서 소략한 기념식을 개최한답니다.

 

'교과서의 날', 얼마나 멋집니까! 달력을 보면 무슨 기념일이 그렇게도 많은데 그 '교과서의 날'도 우리는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젬병'입니다.  우리 연구회에서는 편수업무 '야사(野史)'라고 할 수 있는 수필들을 모아『편수의 뒤안길』이라는 수필집도 내고,『교육과정교과서연구』라는 저널도 발간하고 있습니다.『편수의 뒤안길』은 2006년 12월에 제8집,,『교육과정교과서연구』는 2008년 2월에 제6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원고를 모아보니 수필집 원고는 딱 세 편, 저널 원고는 단 한 편도 들어오지 않아서 책을 내지 않기로 했다니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원고는 그 수필집에 내려고 했던 원고입니다.

 

추신 : '교육과정교과서'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마련하고, '논문'을 삭제했습니다. 독자들 중에는 내가 교육과정, 교과서에 관한 일을 했다는 걸 아시는 분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논문'을 쓴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젬병’ ‘핫바지’를 위한 변명

 

 

 

▶ 이해찬식(式) ‘정책토론’

 

이해찬 전 장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호오(好惡)가 비교적 극명한 것 같다. 개인적인 관찰이지만 정년(停年)을 줄이고 ‘봉투’니 뭐니 한 일 때문인지 교원들 중에는 미워하는 경우가 많고, 행정가 중에는 결연한 표정으로 ‘리더는 일을 그 사람처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교원들은 다른 장관에 대해서는 이제 그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데 유독 이해찬 전 장관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가 1998년 3월 3일에 취임하여 한 일 중에는 각 과별 업무추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그 정책토론회에 스스로 주제를 내어 업무분석을 받아보거나 주요정책의 방향을 찾고 큰 과제나 문제의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절차였지만, 장관이나 고위층의 의중이나 눈치를 살피면서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느끼고 어쩔 수 없어서 토론을 제안하는 ‘예약’을 할 수밖에 없는 부서도 있었다. 학교정책실(실장 임동권) 교육과정정책심의관실(심의관 이수일)의 ‘교육과정평가정책과(과장 이경환)’도 그런 부서의 하나였다.

덧붙이면, 이 정책토론에서 장관의 칭찬을 받으면 그 부서의 앞날은 창창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는 ‘초상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업무처리에는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젬병이어서 종일 교육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소일하는 것 같은데도 나중에 보면 좋은 자리로 ‘영전(榮轉)’하고 드디어 교육장까지 하게 되는 직원들이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이 가만히 앉아 있는 직원들보다 그런 사리는 더 잘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덧붙이면 일반행정직 중에도 그 정책토론에서 빛을 본 사무관도 있었을 것은 분명한 반면 애써서 준비했지만 꾸중을 듣거나 칭찬을 받지 못하고 뒤쪽으로 밀려난 사무관도 있었을 것이다.

 

▶ 정책토론을 위한 자료준비

 

우리 교육과정평가정책과에서 정책토론을 하겠다는 예약은 한 달 이상의 기간을 두어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선 자료를 만드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자료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하도록 만들어내면 좋은 반응을 얻기는 당초에 틀린 일이기 때문에 이른바 행정의 별이라는 사무관들도 그 자료를 만드는 일로 허구한 날 그야말로 한숨을 쉬고 담배를 피워대며 날밤을 새웠다. 그러므로 사무관들에 비하면 문서 만드는 일에는 젬병(당시 이수일 심의관의 상투적 표현에 따르면 ‘핫바지’)일 수밖에 없는 전문직으로서는 가슴부터 철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1999년 4월 14일(그러고 보면 어제일 같은 그 일조차 10년이 되어간다!) 오후에 그 정책토론을 ‘당했으므로’ 늦어도 그해 3월 아니면 2월 하순경에 토론 신청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렇게 기억되는가 하면, 당시 교육과정정책심의관은 그 자료를 만드는 실무진 협의회에 여러 번 참석해서 중간보고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답답하다는 듯 요령을 설명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만든 자료(안)를 보고 퇴짜를 놓은 일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정도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포기하는 게 나을까? 그래도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그 일정을 늦추게 한 기억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높이는 우리들 직원의 입장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는데, ‘편수관’ 출신 심의관은 아니었지만 편수에 대한 관심이 깊어서 온갖 잔소리를, 짧은 시간에는 소나기처럼, 긴 시간에는 가랑비처럼 들을 수밖에 없는 과장의 입장에서는 걸핏하면 가슴속까지 그 이른 봄의 싸늘한 빗줄기가 스며들었을 것 같다. 다행이라면 과장은 혼자 중얼거리긴 해도 대어놓고는 우리에게 전혀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심의관도 우리 같은 평직원에게는 그렇게 호된 꾸지람은 하지 않았으나, 아주 한심하다고 판단될 때만 “핫바지”라고 경멸(?)했는데 그 핫바지가 우리 과에는 수두룩하고 가령 학교정책과(당시에는 초등교육정책과, 중등교육정책과) 같은 곳에는 별로 없는 점이 이상하고 희한한 일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교육과정․교과서 정책에 몸을 담으면 그만 ‘젬병’이 되기가 쉬운 일이었다(그런 사람만 편수직이 되어오는지, 편수업무가 그런 사람을 만드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장학 쪽’에서는 일을 슬슬 하는 것 같은데도 훈장까지 척척 받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필자는 훈장은커녕 장관 표창 하나 받아본 적이 없다).

자료는 과장의 지휘아래 필자(사회)와 박삼서(국어)․노희방(지리) 연구사, 그리고 공채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우용(윤리) 연구사가 주동이 되어 만들었다. 여러 가지 기억이 있다. 그 18층 창문을 내다보면 밤안개가 자욱한 광화문 거리, 벌써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더라는 소문, 자료내용이나 자료구성에 대해선 무관심하지만 밤새워 일하는 다른 부서 사무관, 주사들을 찾아가 어울리다가도 가령 복사할 일이 있다든가 배가 고프다든가 하여,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라도 웃으며 달려오고 우리에게 언짢은 일이 있으면 가장 안타까워하는 이우용 연구사, 사무실에서는 전화도 오고 어떻게 되어 가는지 들여다보는 직원들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며칠간 북악파크호텔에서 지낸 일 등 그 정경이 어제 일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 필자가 노희방 연구사에게 이야기하여 만든 ‘역사적인’ 도해가 바로 ‘1종(국정)도서 편찬 절차’로 그 도해는 지금까지도 면면히 사용되고 있다. 당시 필자는 혼자서 워드를 익히기 시작한지 몇 달 되지 않아 겨우 글자만 만들 수 있는 단계여서 노 연구사에게 생각한 대로 이야기하면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다가 기가 막힌 솜씨로 그려냈고 생각이 변하여 수정하자고 하면 몇 번이고 수정해주었는데, ‘이분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본 것 같이 그려내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지도학을 공부한 전문가이므로 그깟 일이야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 도해를 그리고 나자 아주 쉽게 ‘2종(검정)도서 편찬 절차’까지 그려냈다.

또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날 밤도 아주 깊어서 사무실에는 우리들 ‘특수임무’를 띤 몇 명만 남아 있었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과장이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러 나갔나 싶어 ‘흡연장소’로 나가보았다. 필자는 주제넘게 더러 사무실에서도 피웠지만, 과장은 그렇게 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규칙을 잘 지켜서 갈 만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아! 이런…….’ 혼자 울고 있었다. 그 어둠속에서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담배 한 대를 내밀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도 달랬다. ‘내 기필코 멋진 자료를 만들어 깜짝 놀라게 하고 말리라!’

 

▶ 토론자료의 내용

 

「교과서 편찬․발행제도 개선방안(案)」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그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Ⅰ. 배경(교육과정의 성격, 교과서의 성격, 편수직제의 개편과 편수담당자의 역할)

Ⅱ. 교과서 편찬․발행 정책 개선안(계획․위탁단계의 개선방안, 연구․집필단계의 개선방안, 심의․수정단계의 개선방안, 생산․공급, 재발행단계의 개선방안)

Ⅲ. 집중토론과제(1종도서 편찬기관 선정․위탁과정 개선방안, 교과서 공급제도 개선방안, 제8차 교육과정 개정 논의)

Ⅳ. 제언(교육과정․교과서 정책 담당기구의 역할 재정립)

 

우리가 얼마나 정신을 차리고 얼마나 정성들여 이 자료를 만들었는지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자료를 통하여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성과 우리가 하는 일의 당위성과 정교성 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해시킴으로써 우리 조직, 우리의 정책이 잘 유지․발전될 수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편수조직에 대해 늘 못마땅해 하는 행정직들에게 1996년까지의 편수국(편수국장, 교육과정담당관 7명, 인문과학편수관 12명, 사회과학편수관 9명, 자연과학편수관 23명, 편수관리담당서기관 11명, 계 63명) 체제가 교육과정정책심의관 체제(심의관, 교과서정책과 10명, 교육과정평가정책과 29명, 교육평가팀 6명)로 축소된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럼에도 정부조직을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 조직부터 넘보고 축소해나가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의 그 논리와 노력과 정성을 이야기하려면 우리가 만든 그 자료를 그대로 보여주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자료의 첫 부분에는 교육과정기준에 관한 기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그 아래에 교육과정기준 결정 권한을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이유와 국가, 시․도, 학교가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역할을 분담하는 체제에 대해 설명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 기준>

○ 초․중등 학교의 교육목적과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초․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 거하여 교육부장관이 문서로 결정․고시한, 교육내용에 관한 전국 공통의 일반적 기준을 말하며,

○ 이 기준은 초․중등 학교에서 편성․운영하여야 할 학교교육과정의 목표, 내용, 방법과 운영, 평가에 관한 국가수준의 기준 및 기본지침이 제시되어 있음.

교육과정 정책결정은 교육부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기능

 

 

또 자료의 마지막 페이지(34쪽)에 제시된 제언은 “교육의 질적 수준을 관리, 강화하기 위하여 국가수준의 교육과정과 교과서 정책을 기획, 심의, 평가하는 기능이 강화되도록 교육부의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하며, 교과서 편찬과 관련한 연구․집필이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도록 정부출연기구를 더욱 육성 발전시켜 상호보완체제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것은 당시의 행정가들 중에는 교육과정․교과서에 대한 정책결정과 사업 일체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이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교육부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능(정책결정)을 연구소에 위탁(위임도 아닌 위탁)할 수 있는가.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기능을 위탁해버린다면 정부는 교육방향을 어떻게 결정하고, 만약 그 방향이 잘못 되었을 때 무슨 할 말이 있게 되는가.

우리의 쏟은 노력을 <부록>(58쪽)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어 그 목차만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1종도서 편찬 절차, ② 2종도서 편찬 절차, ③ 1종도서 편찬기관 추천 기준, ④ 1종도서 연구․개발기관 추천 절차와 방법, ⑤ 제7차 교육과정에서 기대하는 교과서, ⑥ 1998년 교과용도서 편찬보조금 산출기준 단가, ⑦ 연도별․항목별 보조금 기준단가 인상, ⑧ 실험본 편찬보조금, ⑨ 주요국의 교과서 공급제도, ⑩ 외국의 교과용도서 개발과정, ⑪ 교과용 전자도서의 개발현황 및 추진방향, ⑫ 제6차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용도서 검정현황, ⑬ 검정 출원예정자 등록현황, ⑭ 검정 출원 예정 2종도서 집필진 구성현황, ⑮ 2종도서 기간본에 대한 저자 및 교육부의 수정 내역량 비교, ⑯ 2종도서 기간본에 대한 교육부 수정지시 사례, ⑰ 2종도서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교육부의 책무성에 대한 신문기사, ⑱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업무 구분, ⑲ 각급 학교 교육과정 개발, 고시 및 시행계획, ⑳ 제7차 교육과정 개정 경과, ㉑ 제7차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방향, ㉒ 교육과정 개정 업무추진 흐름도, ㉓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 ㉔ 고등학교 선택중심 교육과정, ㉕ 각국의 교육과정 편성현황, ㉖ 교과서 편찬제도 개선을 위한 자문위원 명단, ㉗ 초등학교 교과서 가격비교, ㉘ 중․고등학교 1․2종도서 구분 고시, ㉙ 1995~1998학년도 교과용도서 발행현황, ㉚ 교육과정 총론 개정사항 비교, ㉛ 교육과정의 변천

 


▶ 토론의 경과

 

이와 같이 준비한 정책토론은 1999년 4월 14일 수요일 오후 2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장장 4시간 동안 전개되었다. 그 4시간을 담배 한 대 피우지 못하고 보냈다. 참석자는 장관과 기획관리실장, 학교정책실장, 교육정보화국장, 교육정책기획관, 교육과정정책심의관, 교원정책심의관 등 실․국장 6명, 행정관리담당관, 교육정책담당관, 초등교육정책과장, 중등교육정책과장, 특수교육정책과장, 교과서정책과장(유선규), 교육과정평가정책과장(이경환), 교육평가팀장, 산업교육정책과장 등 과장 9명, 필자 같은 ‘조무래기’ 배석자 11명 등 27명이었다.

심의관이 토론자료 작성 경과를 설명한 다음 과장이 토론의 배경, 정책개선안, 집중토론과제를 설명했고, ‘제언’ 부분은 다시 심의관이 설명했다. 약 30분 동안의 설명에 대해 그때까지 지켜본 느낌은 다소 지루했으나 이후 4시간을 다 채운 토론 끝에 느끼기로는 그 설명은 그야말로 너무 축소된 것이었다.

토론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공격적이어서, 벼르던 칼을 들이대는 느낌을 주었다. 주요 발언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L국장이니 K실장, S국장 등 이니셜을 밝히고 싶지만, 도서의 생산․공급 등에 전문성을 지닌 장관의 발언요지에는 ( ) 안에 밝혔다.

토론을 통하여 의문사항에 대한 답변이나 현황 설명은 심의관, 교과서정책과장, 교과서정책과 사무관(강대양), 필자가 담당하였지만, 가장 많이 답변한 분은 교과서정책과장(유선규)이었다.

 

‧ 1․2종 구분고시가 필요한가? 누구나 검정을 신청하게 하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모두 합격시켜 좋은 교과서가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교과서 개발을 일괄 위탁하여 그곳에서 모든 업무를 전담하게 해야 한다.

‧ 제6차 교육과정까지는 교육과정 개정이 교과내용 중심이었다. 앞으로의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국민공통으로 10교과가 적절한가, 교원제도와 관련하여 고등학교의 선택중심 교육과정이 적절한가를 논의해야 한다. 따라서 중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제7차 교육과정은 그런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교과서가 하나의 자료라는 논리라면 교과서 개발은 연구기관에서 주관하게 해야 하며 1종도서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교육부에서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업무부담이 생기고 정책결정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틀에서는 융통성이 없어서 ‘교과서=교육과정’이라는 인식이 당연하다.

‧ 기초연구를 통해 교육과정 구조부터 다시 짜야 한다.

‧ 1․2종 구분이 모호하다. 국가가 내용을 책임져야 할 교과목만 1종으로 남기고, 내용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는데도 경제성 문제만으로 1종으로 남긴 교과목은 2종으로 바꾸어 그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에 예산을 지원하거나 분류는 1종으로 하더라도 연구기관에 일괄 위탁하여 개발하면 될 것이다(장관).

‧ 교과서가 학습자료라면 교과서가 꼭 있어야 하는가?

‧ 1종이 경제적인 것은 분명하나 2종, 또는 자유발행제로 가면 더 좋은 책이 나오지 않는가?

‧ 세계 어느 나라에도 국사나 윤리 문제를 국가가 발행하는 교과서에서 정립하는 사례는 없다. 효율성을 논의하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으므로 교과서 개발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하고 교육과정 정책업무에 주력해야 한다.

‧ 교육부에서는 방향만 결정하고 내용검토 같은 기능은 잘하든 못하든 실행기관에 넘겨야 한다(장관).

‧ 편수관 복수추천에 의해 개발기관을 선정하면 편향성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가?

‧ 1종도서 개발기관을 공모제로 선정하자. 집필계획을 보고 2개 기관을 선정하고 가쇄본을 보고 최종선정하면 된다. 선정심사위원을 폭넓게 선정하면 투명성을 확보하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 제한 없이 계획서로 공모하고 2팀을 선정하여 가쇄본으로 최종선정하자. 탈락 기관에는 정부가 개발비를 보상하고 채택 기관에는 당초 책정한 개발비를 지급하자. 공모에 응하는 기관이 없으면 지정하면 된다(장관).

‧ 편수기능 강화방안은 학교정책실과 행정관리담당관이 의논하여 정하고, 향후 교육과정 발전방향 논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하자(장관).

‧ 검정에 모두 합격시키고 이익금을 공동배분하는 현 제도는 과열경쟁은 방지할 수 있으나 업자의 정교한 담합문제(트러스트)로 잘못된 것이며, 그 비용은 결국 교과서 매입비에 전가되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향을 보더라도 이는 시정되어야 한다(장관).

‧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책이 교과목별로 대개 5종 정도이므로 심사기준을 강화하여 그 정도를 합격시키도록 하자.

‧ 일반 서점을 통한 공급은 마진율이 낮아서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추후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자. 채택과정의 투명성 문제는 학교에 위임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 대여제는 변상제도는 적용하지 말고 음악, 미술, 체육 교과에 대해 학교에 두고 쓰는 방식으로 책별로 1개 시․도에 시범 적용한 다음 확대해나가자. 기간본 수정․보완은 집필기관 의무사항으로 하여 이행이 미흡하면 페널티를 부여하거나 2종협회에서 자율적으로 하자보증금제를 실시하게 하자(장관).

 

▶ 정책토론의 효과 : “편수가 그렇게 중요한줄 몰랐다.”

 

토론은 성공적이었다. 부담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장관이 여러 가지 과제의 방향을 제시해준 것은 대체로 우리를 인정해주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정책토론 결과를 정리 보고한 우리는 곧 1종도서 편찬기관 선정에 공모제를 적용하기 시작하고 편찬기관 선정심사 절차를 강화했다. 그 외에도 교과서의 개념을 ‘교육과정 자료’로 전환하여 내용구성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안, 교과서 연구개발비의 현실화와 표지 도안의 아웃소싱, 현장교원 및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참여 확대, 심의위원 역할 강화, 재검정제의 폐지, 검정합격 적정선 연구 및 공급제도 개선 연구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장관으로부터 “편수업무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며 중요한 줄을 몰랐다”는 말을 들은 점이다(그가 한 달쯤 후인 1999년 5월 하순에 국회로 돌아가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그 말을 하더라는 얘기도 들었고, 국회에 간 길에 만나서 그 얘기를 듣기도 했다). 이로써 교과별 편수인력에 대한 공개채용을 확대하게 되었고, 편수업무 담당 팀 운영에 필요한 6명의 장학관(팀장)을 두게 되었다. 흐지부지되었지만 잠정적으로 일정기간 이상 근무자의 인사상 우대 및 자체연수 강화를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토론회 이후 교육과정평가정책과는 학교정책실의 ‘수석부서’가 되어 주간업무보고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우대(?)’는 업무처리가 늦고 둔감한 ‘젬병’ 혹은 ‘핫바지’의 특성 때문에 곧 16층의 학교정책과로 되돌아갔다.

다른 예도 있다. 교육감협의회에 참석한 장관이 교육감들로부터 실험․연구․시범학교 운영을 전체적으로 시․도교육청에 맡겨달라는 요청을 받고 돌아와서 “모두 이관하라”고 했다가 비서실장을 통해 “교육과정, 교과서에 관한 연구학교는 두라”고도 했었다. 물론, 각 부서의 집요한 노력으로 그 결정은 실현되지 않았고, 우리는 연구학교 운영에도 장관이 부여(?)해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다른 부서들은 주요정책과제라며 온갖 연구․시범학교를 수없이 많이 두는데도 연간 겨우 7~8개 연구학교밖에 지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죽 쑤어 개 준 일’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을 심의하는 ‘지방이양추진위원회’ 실무위원회(2003.6.4)에서 교육부 지정 실험․연구․시범학교를 다 없애고 그 업무를 시․도교육청에 위임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져서 그 달 25일의 전체회의를 통과하면 ‘끝장’이며, 실무위원회가 결정한 안건이 전체회의에서 부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손을 놓고 있을 때, 필자가 뛰어다니며 그 결정을 막았는데도(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우리 편수직은 그 이후로도 그 연구학교 지정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가을만 되면 수십, 수백의 연구학교 운영 결과가 보고되는데도 교육과정, 교과서 연구학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현실은 우리 편수직이 얼마나 ‘젬병’이고 ‘핫바지’인가를 잘 보여준다.

딱 한 가지 뜻대로 한 일이 있다. 당시 과장은 무엇이든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교육부 사무관들이 우리의 정책토론이 자료준비와 경과가 성공적이었다는 말을 듣고 너도나도 그 토론자료 좀 보자고 요청했지만, 아직 밝힐 수 없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핑계로 버틴 일이다. 사실은 뜻대로 한 그 일조차 나는 싫다. 무엇이든 다 보여주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 ‘젬병’ ‘핫바지’를 위한 변명

 

☞ 변명(辨明) : 1(생략) 2.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우리들 편수직이 젬병 혹은 핫바지로 불리기도 한 데는 원인이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어설프다(부서지고 무너져도 어쩔 수 없어 지켜보기만 했던 선배님들, “주제넘고 오만불손함을 용서하십시오.” 부서지고 무너져도 어쩔 수 없어 지켜보기만 했던 후배들아, “미안하다.”)

우리는 ‘역사 지키기’에 약하다. 다른 업무와 달리 편수업무는 선배들이 한 일, 겪은 일을 잘 파악해야 하는데도 눈앞의 일에 매달려 정신을 못차리고 그냥 하루하루를 보낸다. 과거는 현재이고, 현재와 합쳐주어야 미래를 낳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럴 때의 미래는 불확실한 미래, 실패하는 미래가 된다. 가령 “혁신을 하려면 선배들의 의견이나 견해를 묻지 말고 과감하게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관료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어설픈 말에 넘어간다면 그건 더 부서지고 더 무너지려고 작정한 것이다(하기야 더 무너지고 어쩌고 할 것이 남아있지도 않지만). 만약 그런 말을 하는 관료가 있다면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부하직원을 다루면 재미있을 것을 아는 사람이다. 피차 잘 모르는 상황에서 지시하고 꾸중하고 몰아세우면 그야말로 찍소리 못하는 부하직원을 다스리는 데 재미가 없을 리 없다.

우리 편수직은 ‘황야의 무법자’처럼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 숱한 법령과 시행령, 규칙도 없이 어떻게 한 나라의 교육과정, 교과서 정책을 다루어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참으로 피상적인 표현이지만, 정부 각 부서는 각각 하나 이상의 법령을 가지고 그것으로 살아간다. 인력과 예산 확보는 물론, 기능과 역할의 당위성은 그 법령에서 나온다. 설명할 수가 있게 된다. 비판을 물리치는 도구가 된다. 부서를 축소하거나 없애자고 하면 그 법령을 들어 “그럼 이건 어떻게 하나?” 물으면 된다. 법령 제1조는 언제나 그 정책․업무의 명분을 가장 논리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 편수보다 아주 수준 낮은 일을 맡아하면서도 더 많은 인원이 더 많은 예산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교육과정심의회규정’,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이 있지 않으냐고 한다면 그 규정을 적용할 인원만 필요하다는 설명이 될 뿐이다. 그것으로는 한참 미흡하다. 우리가 제7차 교육과정의 현장적용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을 때 만약 ‘제7차교육과정지원장학협의단구성운영등에관한규정(교육부훈령 제610호 : 이 이야기도 다음에 소개하겠다)’을 만들지 않았다면 도저히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겁낼 것 없다. 가령, ‘국가교육과정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만들면 된다. 그걸 왜 망설일까. 일본의 교육과정심의회는 3원체제로 구성된다. 우리의 교육과정위원회 운영위원회는 일본의 교육과정심의회 중 가장 낮은 단계의 심의회에 비교될 뿐이다. 교육과정위원회의 위상은 당연히 높여야 한다. 그래야 교육과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위원장은 교육과학기술부차관이 되고, 부위원장 중 1인은 학교정책국장’이 되는 그 심의회로는 앞으로의 더 험난할 파고를 넘기가 어렵다. ‘더 험난할 파고’란 교육과정 기준에 관한 정책의 중요성이 그만큼 더 부각된다는 뜻이다. 겁낼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