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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논술의 개념과 특징(제1강)

by 답설재 2008. 11. 4.

 

오늘은 청주대학교 새천년문화정보관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가보았더니 방송시설이 훌륭했습니다. 대전광역시교원연수원에서 제작하는 논술지도 인터넷 강의자료를 그곳에서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대전연수원에서는 논술지도 자료 외에도 무언가 두 가지를 더 만들고 있는데, 저와 관련이 없는 것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논술지도 자료는 30강까지 제작되는데, 저는 그중에서 맨 앞부분의 <제1강 논술의 개념과 특징>, <제2강 교육과정 속의 논술>을 맡았습니다. 다음은 그 원고입니다. 논술에 대해서는 전에 용인의 성복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파란편지>로도 몇 번 쓴 적이 있습니다.

 

논술교육이 우리에게 마치 중요한 교과목 하나가 새로 생긴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새삼스럽게 논술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논술교육 강화에 대해,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종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지닌 인재양성이 필요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논술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논술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을 탈피해 학생의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은 물론,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이 방침은, 사실은, 논술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국가․사회적 요구사항을 뒤늦게 수용하는 방향에서 결정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중요하고 필요한 교육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가르쳐온 것이라는 적극적인 입장이 아니라, 대학 입시전형에서 내신과 수능성적에 더해 논술고사로 학생을 뽑겠다고 하자,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이 논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큰 걱정을 하게 되었고, 그러자 ‘논술을 잘 가르치자’는 방침을 제시하게 된 것입니다.

 

왜 이제 와서 논술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됐습니까? 각 대학에서는 등급으로 제시되는 내신성적이나 수능점수로는 차별화하기가 어려워 학생들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논술고사를 보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논술평가는 그 어떤 방법보다 학생들의 능력이 제대로 드러나는 평가방법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논술은 주어진 정보에 대한 이해력이나 분석력, 비판적 사고력은 물론, 논리적 표현력 등 종합적인 문제해결능력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즉 논술은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능력을 다 보여줄 수 있으므로 그 논술을 쓴 학생의 거의 모든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프랑스에서 옛날부터 바칼로레아라는 논술고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당연히 배워야 할 것을 잘 가르치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운 것을 잘 평가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하바드대학 등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능고사와 별도로 APPLICATION ESSAY, 즉 자기소개서를 쓰게 하는 것도 유사한 사례입니다. 이 입학지원 에세이는 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해서 쓰지만, 간단해 보이는 그 에세이에도 결국은 그 학생의 능력은 물론 삶의 이력과 인생관, 철학이 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대학입학전형 방법이 바뀌고 여러 대학에서 논술시험 성적을 반영하게 되자, 논술고사 실시 문제가 우리 교육계의 큰 이슈가 되고, 마침내 정치지도자가 나서서 논술시험에 대해 언급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교육이 그동안 관심이 적어 제대로 된 논술교육에 소홀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느 대학 입학시험에서 논술시험을 실시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나 내신성적의 반영, 혹은 수능시험성적의 반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논술시험 실시 여부가 결정된다는 식의 논의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대학입학전형과 무관하게 논술고사를 보든 보지 않든 지금부터라도 기본적으로 논술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논술이란 도대체 어떤 글입니까?

미국이나 프랑스 등 오래전부터 논술을 가르치고 배운 나라의 학생들이 쓴 논술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초등학교 1학년 ‘정진영’이가 쓴 논술부터 보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이게 무슨 논술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논술을 이렇게 씁니다.

 

“세중옛돌박물관에서 잠자리를 잡았다. 좋았다. 참 좋았다. 풀 밟는 소리가 사북사북 났는데도 잠자리가 도망가지 않았다. 잠자리는 눈이 40000 정도일 것 같다. 왼쪽에 20000개, 오른쪽에 20000개일 것 같다. 그런데도 안 도망가서 좋았다.”

 

논술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하기보다, 진영이의 표현력은, 어른이라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좋았다’ ‘참 좋았다’는 단순하고도 짧고 신선한 표현의 반복은 물론이고, 걸핏하면 물결이 ‘출렁출렁’ 한다느니, 눈이 내려 쌓이는 모습은 ‘소복소복’이고, 토끼가 뛰어가는 모습은 ‘깡충깡충’이라고만 생각하는 우리에게, 진영이는 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사북사북’이라는 낱말을 써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누가 진영이에게 풀밭을 걸을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낱말은 ‘사북사북’이라고 가르친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음으로, 잠자리의 눈이 40000개라는 것은, 진영이가 누구에게 들은 정보입니다. 그것을 진영이는 ‘일 것 같다’고 표현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눈 40000개를 좌우로 나누어 각각 20000개라고 했습니다. 또 ‘나는 눈이 단 두 개지만, 눈이 40000개나 되는 잠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좋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진영이에게 논술을 가르친다면, 이런 표현 외에 무엇을 더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눈이 40000개일 것 같다’는 ‘눈이 40000개라고 한다’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나 지적한다면, 그 선생님은 진영이가 재미있게 공부해가는 과정에 방해가 되는, 진영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맥 빠지게 하고 지치게 하는 선생님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 듣고 분석하며 공부해가면, 진영이는 나중에 틀림없이 훌륭한 논술을 쓸 수 있게 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어야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논술을 쓸 수 있게 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논술교육, 논술 공부는 우선 재미있게 해야 합니다. 어느 날 오후, 우리 학교 2학년 여자애가 울상을 지으며 현관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바로 논술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 가기가 싫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 그런 처지에 있는 아이가 한둘이겠습니까. 저는 그 아이를 보며 대상 없는 분통을 터뜨렸고 참으로 우울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다 우리가 논술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가 장차 논술을 잘하는 학생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부모들이 공부에 대해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뜻이며, 따라서 우리 교원들도 그러한 분위기에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일, 하루 이틀에 끝나는 공부라면 ‘죽기 살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장기간 해야 하는 일,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공부라면, 그 일, 그 공부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논술은 재미있게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도 가능한 한 재미있게 가르치고 싶어 하며, 학생들도 어떠한 공부든 재미있게 가르쳐주면 좋아합니다. 논술이라고 하여 다른 것은 아닙니다. 재미있게 가르치고 배워야 학생들은 글을 쓰는 일에 의욕을 가지고 성취감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칼로레아 시험이 시작되는 날, 프랑스 사람들은 ‘생각하는 날’이라고 하여 마치 하나의 국경일처럼 지낸다고 합니다. 2주 이상 실시되는 바칼로레아는 철학시험으로 시작되는데, 세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학생들이지만, 온 언론이 이날 출제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날 저녁에는 정치계, 문화계, 언론계의 유명 인사들과 시민들이 대강당에 모여 출제된 문제를 중심으로 진지하고 재미있게 일종의 모의고사를 실시해본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논술은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논술의 중요성이 부각된 이후의 우리 사회를 관찰해보면, 논술은 마치 고등학교 때, 그것도 3학년 2학기에 족집게 학원을 찾아가 배우는 것이 정상이고 당연하다는 듯 부산을 떠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논술을 통하여 사고력, 창의력, 분석력이나 해석력, 평가력, 종합력, 논리적 표현력 등 이름붙일 수 있는 온갖 고등정신기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논술교육, 논술학습은 그만큼 장기간 지도하고 배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걸, 초․중․고등학교 12년간 온통 외우고, 외우기 위해 읽고 쓰고, 다섯 개의 답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공부에 치중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논술이다.” 하고 덤벼들어서야 제대로 공부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하고 이미 다 그르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논술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단기간에 무슨 묘수를 부려서 성취할 수 없는 공부라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논술은 종합적 관점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흔히, 국어공부, 그것도 독서지도와 혼동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사들 중에는 “논술을 국어니까 국어교사가 가르치는 거지 나하고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교사도 많습니다.

논술은 어느 한 교과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 외에 생활 주변의 모든 문제, 학생들이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이 사회의 모든 현상들이 다 논술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어느 것 하나 논술과 관련이 없는 것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설명이 되겠지만, 학생들은 공부를 하려고 학교에 옵니다. 공부를 한다는 일에서 가장 흔한 활동이 책을 읽는 일이고, 읽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에 대해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일이 그 공부라는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당연히 그 어떤 활동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일을 많이 하게 되며, 그러한 활동이 논술의 기초, 기본이 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논술교육은 곧 독서지도이고, 국어과 글쓰기지도”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논술교육은 종합적, 통합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