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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학교자율화의 본질과 방안(경기신문080521)

by 답설재 2008. 5. 20.

  ‘광수생각’이라는 연재만화 중에 벼룩 이야기가 있었다. 제 몸의 몇 백 배인 60센티미터 이상을 뛰는 벼룩을 30센티미터 높이의 유리컵에 가둬놓았더니 처음엔 막무가내로 뛰어올라 수없이 부딪치다가 곧 안전한 높이로 뛰는데 익숙해져서, 드디어 유리컵을 치운 멀쩡한 땅에서도 28센티미터 정도만 뛰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만화의 ‘광수생각’은 “당신은 공부라는 유리컵 안에 아이를 가두고 있지는 않습니까?”였다.

 

  그 벼룩처럼, 유리컵 안의 아이처럼 그동안 규제에 잘 길들여진 교원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행정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그만큼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지침이 있으므로 그런 교원은 지침대로 하고 싶고, 지침이 없으면 기다려지고, 불분명하면 불편할 것이다. 지침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일종의 ‘노하우’ 같은 걸 갖게 됐고, 지침대로 해도 기대한 학력, 인성이 길러질지는 의문이지만 따져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지침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교육 관련 규제를 철폐하여 자율과 자치의 바탕을 마련하고 학교교육의 다양화를 유도하기 위한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학생들을 꾸중하거나 좀 때려주는 방법, 하다못해 교복을 사 입히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더니 이젠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자율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이 발표에 따르면 교육과정과 학사운영은 학교의 판단과 책임으로 결정하게 되고, 교원인사권 전면위임 등 교육감의 권한과 책임은 크게 강화되며, 교과부는 국가수준의 계획․기준 설정과 보완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우선 법적근거가 불명확하거나 특정사건을 계기로 자율성을 제한해온 계기교육, 수업내용 지도지침 등 29개 지침은 즉시 폐지한다고 했다.

 

  교과부는 2단계로 권한행사가 형식적이거나 교육감이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되는 교원배치기준 등 13개 법령에서 장관 권한을 대폭 위임․이양하고, 3단계로 교원정원 관련 법령․지침도 관계부처와 협의․조정해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장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사례와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규제 발굴 현장방문단´을 운영하는 등 자율화정책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교과부의 발표에 따라 언론에는 “자율과 경쟁이 교육의 질을 높인다” “질 높은 교육서비스가 우선” “학교자율화는 교육선진화를 이끌 것”이라는 학자들의 견해가 줄을 이었고, 더러는 “실력향상엔 도움이 되나 입시과열이 일어날 것” “인사, 재정, 교육과정 등 알맹이가 빠졌으니 정부가 더 내놓아야 한다” “학생이 학교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혹은 “성급하니 재검토돼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행정가들은 “교원들은 이 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현장의 반응을 궁금해 했다. 학교교육을 자율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생리에 맞는 교원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익혀진 습성 때문에 ’당연히 무슨 자율화지침이 오겠지‘ 하고 구체적 조치를 기다리는 교원도 있다는 게 그 답이 될 것이다. 또 아무리 자율화했다고 강변해도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교과부는 뭐 하고 있나!” 질타하고, “그건 교육청과 학교에서 알아서 하도록 자율화한 것”이라는 답변을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우리 국민의 생리이다.

 

  특목고를 세우거나 0교시 실시여부, 모의고사 형태 결정 등은 큰 과제지만 책임소재의 결정이 중요한 과제이며, 고질적인 폐단이 되어 자율화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과제는 현장속의 자율화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눈에 드러나는 자율화에만 관심을 가지면 언젠가는 ‘교육의 본질적 자율화’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새롭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다.

 

  규제에 쏟아온 만큼의 힘을 들여 교원들이 자율의 가치, 신념, 용기를 갖도록 배려하고 안내해줘야 한다. 교육은 기계적인 일이 아니어서 일시에 무슨 변혁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동안 28센티미터만 뛰는데 숙달된 교원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마음대로 뛰라고 해봤자 당장은 28센티미터만 뛸 수밖에 없다. 만약 자율화조차 또 무슨 지침이나 대책을 발표했을 때처럼 자율화됐는지 조사 보고를 일삼는 식이 된다면 그건 자율화가 아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