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학업성취도시험의 조건
지능과 교양의 기준을 암기에 두고 구시대적 교육을 일삼는 오늘날의 학교교육에 대해 이제는 ‘대답하는 방법’보다 ‘질문하는 방법’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공지능학자 로저 샨크는, 우리가 교사와 교실, 교과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50년 뒤에는 웃음거리가 되며, 왜 수능성적이나 암기를 지능의 증거라고 여겼는지 의아해 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견해를 뒷받침하려는 듯,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27일, 2009년 입학사정 때부터 SAT(대학수학능력시험)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대학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형화된 시험점수로는 학생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점수는 가구소득과 부모학력에 큰 영향을 받으며, 그동안 입학사정기준으로 고교내신과 작문능력, 과외활동, 인성을 중시해본 결과 입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 특례법시행령’을 6월중 확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매년 초6, 중3, 고1 학생의 3~5%만 표집해온 국가학업성취도시험을 올해부터는 해당학년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며, 2009년부터는 각 학교별로 교과목별 ‘기초학생’과 ‘미달학생’의 비율을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고 2010년에는 ‘학력향상도’까지 공개하며 2011년부터는 ‘우수학생’, ‘보통학생’, ‘기초학생’, ‘미달학생’으로 세분해 그 비율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계획에 대한 찬반론도 구체화되었다. “기초학력을 끌어올린다는 취지로 ‘기초학력을 얼마나 신장시켰나?’가 ‘좋은 학교의 잣대’가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한 학자도 있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교사들 수준은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 학부모도 있다. 그러나 한국교총은 “학교 간 경쟁이 시작되면 교장은 교사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무리한 ‘성적 올리기’를 강요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전교조 등은 “전국 800만 학생을 무한 성적경쟁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개별 성적이 아닌 단위학교별 성적의 평균치, 즉 과목별 기초학생비율과 미달학생비율 정도만 구분되기 때문에 무한 성적경쟁의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문제는 이 해석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 학력(學力)의 성격은 어떤 것인지, 이 학력평가가 전면 실시될 때의 학교교육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는 것인지도 검토해야 할 교과부가 현장의 긍정론과 부정론처럼 단순하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초․기본학력은 당연히 중시돼야 한다. 기초의 중요성은 직업이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조되며, 특히 교육에서의 기초․기본(minimum essentials)은 이를 통해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이미 학력평가를 통해 폐교까지 시키는 나라, 전통적으로 국가고사를 실시해온 나라도 있고, OECD 국가들은 모두 PISA(읽기․수학․과학 학업성취도국제비교)를 중시하며, 우리도 이러한 경향에 소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가 기초․기본학력을 신장시키는 구실만 하는 양 그 정책을 전개한다면 학교교육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데 따른 부작용의 발생은 당연한 일이 된다. 지식기반사회의 학력은 ‘생존의 핵심요소’이며, 창조성과 논리적 사고력 같은 인지능력은 물론 성취동기, 모험심 같은 정의적 능력 등 광범위한 능력수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초․기본학력 평가계획과 함께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학력증진계획, 그리고 교과부장관이 국회에서 ‘교육은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정리한 바에 따라 인성교육을 위한 비전도 제시돼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단순한 획득․기억․재생은 학력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므로 ‘학교는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견해에 답할 수 있는 포괄적, 미래지향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처럼 교원양성․연수, 교육과정․교과서 정책을 국가가 직접 담당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지금이 그러한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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