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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하인스 워드를 위한 감사패(경기신문080415)

by 답설재 2008. 4. 15.

 

 

 

하인스 워드를 위한 감사패

 

 

 

  2006년 4월, 한․미 혼혈인 하인스 워드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다. 그는 30년간 한국인임을 부끄러워하며 지낸 것을 사과했고, “나는 슈퍼볼 MVP지만, 어머니야말로 나의 진짜 MVP”라는 효성어린 말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언론은 혼혈인에 대한 시각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처럼 열광적으로 보도했고, 그동안 천사들을 곁에 두고도 모르고 지냈다는 듯했다. 또 단일민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노래하던 이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게 주한미국대사가 주최한 리셉션에 국회의원, 고위관료 출신, 대학총장, 관련 협회회장 등 유명인사가 대거 참석했고, 그가 태어난 병원 의사는 제왕절개수술을 했지만 당시 신생아 건강도가 9점이 넘어 기뻐했다는 것까지 기억해냈다. 어느 신문은 재빠르게 ‘혼혈인과 함께 살기’ ‘국제결혼 늘어나 차별 없는 다인종사회 불가피’ 등을 NIE(신문활용교육)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가 환하게 웃는 워드에게 열광할 때 그의 어머니 김영희 씨는 30년간 참아온 눈물을 쏟으며 우리의 그 열광에 찬물을 끼얹은 푸념으로 일관했다. “한국인 쳐다보지 않고 살아온 30년이었다” “내가 워드 데리고 한국 왔다면 아마 그 놈 거지밖에 안 됐겠지?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 “한국인들은 좀 그렇지. 미국에서도 한국인들끼리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이민 온 주제에 우리를 무시하고, 피부색 같은 사람들끼리 인종을 더 차별하잖아” “그렇게 힘들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우리 애가 유명해지니까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부담스럽지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야?”

 

  김영희 씨의 한 서린 토로 외에도, 하인스 워드 이후 하고 싶었던 말들이 줄을 이었고, 우리 사회가 그 분위기에 재빨리 적응해온 것은 다행스러웠다. ‘아파트’를 부른 가수 윤수일은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 코 꾹꾹 누르며 울었다고 고백해서 우리를 미안하게 했다. 방송에 출연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외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또 시골로 시집온 동남아나 중앙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활상과 애환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나라가 별안간 다문화가정, 혼혈인의 천국이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가 됐다. 교육부에서는 당장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연구를 거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했고, 2007년에는 국가 교육과정에 다문화에 대한 주제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아직은 요원하다. 현실적으로는 혼혈인도 성공하면 영웅이 된다는 것을 사례로써 인식하게 됐을 뿐인지도 모르며, 교육 받지 않은 행위는 일시적, 표면적일 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19세 베트남 신부 후안마이가 천안의 지하셋방에서 46세 남편에게 갈비뼈가 18개나 부러지도록 두들겨맞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 겨우 지난해 7월이었다. 오죽하면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주석이 “베트남 신부들을 잘 대해 달라”고 호소하고,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면서 “타국 여성을 마치 물건 수업하듯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 인성의 메마름”을 질타했겠는가.

 

  하인스 워드는, 우리와 함께 살겠다고 이 나라를 찾아온 외국인, 이 나라에서 혼혈인으로 태어나 우리처럼 우리말만 쓰고 김치만 먹으며 살아온 혼혈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잘못 됐다는 것을 그 환한 웃음으로 가르쳐줬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인식을 높이는 교육이다. 그리고 그 교육에서 우선돼야 할 것은 학교나 교육행정기관, 무슨 복지관, 센터에서 다문화가정을 꾸린 당사자들을 자주 불러 모으는 사업이 아니다. 그들부터 가르칠 게 아니라, 우리부터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인식을 바로잡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인스 워드는 그 논리를 단숨에 가르쳐주었으므로 우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감사패부터 주어야 한다. “귀하는 단일민족을 내세우던 우리에게 다문화가정, 혼혈인과 우리의 차이가 ‘존재의 차이’가 아니고 ‘인식의 차이’였다는 것을 가르쳐주셨기에 우리의 부끄럽고 별난 행위들을 참회하며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