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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우리는 정말 이렇게 교육해야 할까요?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50

 

 

 

우리는 정말 이렇게 교육해야 할까요?

- 온통 학부모 책임이라는 듯한 신문기사들을 보며 -

 

 

 

신문을 펼치면 교육 관련 기사나 자료부터 찾는 것은 습관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학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가령, 「창의력 으뜸 비결? 토론으로 궁금증 해결해」라는 제목이라면, 교사와 학부모 중 어느 쪽이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그럼, 「3학년 2학기 내신 잘 받아야 유리」라는 제목에는 누가 더 큰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아마도 전자에는 교사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창의력을 길러야하는 것에 공감하는 학부모라면 '우리 아이는 이런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당장 걱정스러워할 것 같고, 후자에는 당연히 학부모가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학부모가 더 큰 관심을 가질 만한 제목들이 너무 자주 눈에 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제는 학교교육은 뒷전이 되었으므로 가정에서 부모가 정신을 차리고 대들어야 한다는 듯한 기사가 참 많습니다.

 

물론 교사와 학부모 중 어느 쪽에서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지 애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만약 학교에서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이면 당연히 신경이 더 쓰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 하루치의 신문에서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영어지문 적어가며 독해… 교과서 통째로 외워」「개학 후 최소 2주 동안은 공부하라는 말 하지 말기」「진정한 승부처는 시험기간이 아닌 평소」「읽기 능력 떨어지는 아이들… 답은 독서뿐」「비싼 사립대 부담된다면 '주립대'로 눈 돌려라」……. 그만하겠습니다.

 

일반 기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9월 1일자 J신문의 예를 보겠습니다. 「'음악 사귀기' 엄마에게 달렸어요」라는 제목으로 '1. 부모가 먼저 음악에 관심을 보여라, 2. 음악교육은 전공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3. 틈날 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라, 4.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자녀와 음악회에 가라, 5. 하모니카든 피리든 악기 하나는 다루게 하라, 6. 자녀의 음악적 재능을 과신하지 말라' 등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음악 교육 6계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면에는 "배움에 대한 호기심·열정 살려줬죠"라는 제목 아래 10세 대학생 딸, 15세 박사과정 아들 키운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특별히 그분의 자녀교육 5원칙도 소개되었는데, '1.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2. 지금 하는 일을 즐겁고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3. 수시로 자녀와 친구처럼 상담한다, 4. 긍정적 사고방식을 심어준다, 5. 재능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등입니다. 그 날 그 신문에는 공교롭게도 「자녀 희귀병 치료제 6년 만에 직접 개발 '아빠의 기적' - 대형 제약사 그만두고 영세 약품사 인수해 연구」라는 기사도 실려 있었습니다.

 

이런 기사나 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대단하구나. 지금 내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면 엄두도 못 내겠지. 다행히 내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땐 이렇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키우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은 아니야.' 아직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계신 여러분께서는 어떻습니까? 부모의 역할부여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십니까?

 

언젠가 당시 교육부총리가 제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김 선생, 정말 어떻게 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까?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분은 하도 답답하여 지나가듯이 물었으므로 이렇게 대답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곧 사랑과 결혼, 가정생활 영위에 관한 학원도 생길 것 같은 예감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교육에 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는 거야 당연하며 관심을 갖지 않는 부모는 부모 자격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사람은 만나기가 어렵고 오히려 웬만하면 아이들을 좀 가만히 두시라고 부탁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1996년 그 여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우리 일행의 가이드는 키가 크고 아름다운 미혼 여성이었습니다. 일행이래야 겨우 네 명이어서 며칠 새 서로 친해졌는데, 그녀는 외과의사의 외동딸로서 고려대학교에서 2년 간 수학했으므로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하여 또 한국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돈을 좀 빌려서 공부부터 마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그런 부담을 가지기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헤어지고 말았으므로 이제 남남이나 다름없다는 투였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성공하고 유명해지면 하인스 워드처럼 우리를 찾을지도 모르지만, 찾지 않는다 해도 섭섭해하실 리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아니 그렇게 성장하게 하려면 신문기사들이 들볶아대는 것처럼 일일이 물고늘어지기보다 때로는 "알아서 해." "네가 가서 해결해!" "안 돼!" "그만!" "괜찮아, 실패할 때도 있는 거야." …… 같은 말도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늘 함께 지내고싶은 사람은, 아무리 멀어도 혼자서 갈 수 있는, 그런 성격과 태도,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들 좋아하는 타입으로 자라는 데 도움을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6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