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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뉴질랜드로 유학 간 D의 어머니께

by 답설재 2008. 4. 17.

“교장선생님, 저 지금 비행기 탑승합니다. 가서 멜 하겠습니다.”

2006년 7월 11일 저녁에 보내신 메시지입니다. 저는 복사꽃 찬란한 이듬해 봄은 그 학교에서 보내고, 올해의 이 봄날은 이 학교에 와서 보내고 있습니다.

 

두 자녀가 운동이나 활동적인 학습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잘 적응한다는 소식을 ‘그러면 그렇지!’ 하며 읽었습니다. 가을 축제 때 난타 지휘를 해서 그 학교 온 가족의 마음을 한데 모으던 4학년 D가 수학문제를 풀며 마음을 졸이던 그 표정이 떠오릅니다. 그게 그리 쉽지 않은 줄 알면서도 담임이 그까짓 수학공부 좀 제대로 하도록 간단히 지도해줄 수 없는지 답답했었습니다. 말없이 미소 짓던 J, 그 애의 표정도 떠오릅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크고 시원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아주던 J, 체육시간에 모래밭에서 얼굴을 가라부친 그 애가 방치되었던 시간이 두고두고 원망스러웠고, 그래서 “전체를 보기 전에, 또 전체를 바라보면서, 실제로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기본”이라고 강조했었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기 이 길에서 우리 교육의 수준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그만큼 D와 J에게 너무나 미안하여 부디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핀란드 교육에 관심을 가진 교육자들이 많습니다. 핀란드는 지난해 12월 4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06년 국제학력평가(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읽기 1위, 수학 3위, 과학 11위를 기록했지만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직원들 외에는 아무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학 성적만 한탄했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지난 3월 20일, 대덕연구단지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을 어느 신문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학부모 교육열이 국가발전 견인, 솔직히 교육부는 한 게 없더라.”(주간교육, 2008. 3. 24.) 우리로서는 참 난감한 일입니다.

 

그 핀란드는 우리나라 교육자들이나 학부모들이 열광하는 ‘영재교육’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사이언스 타임즈(2007. 12. 7.)에 보도된 핀란드 미래위원회 마리아 타우라(Maria Taura) 위원장의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영재교육(the gifted education)은 없습니다. 핀란드 청소년 모두가 영재이고 소중한 자원입니다. 영재교육은 영재를 만들어내는 교육이 아닙니다. ……. 핀란드 국민 누구나 훌륭한 자원입니다. 아주 똑똑한 천재를 키우는 것보다 뒤처진 어린이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고 원칙입니다.”

 

핀란드는 독일식 학제에 의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생들의 능력수준에 따라 중학교 진학경로를 구분해오다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조기선별을 통해 교육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인적자원의 손실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의회에서 통합형 중등교육모델을 채택하기로 결의하여 1970년대부터는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간에는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의 성격으로 의무교육을 제공하게 되었답니다. 종합학교가 어떤 뜻인가는 2004년 가을에 영국 BBC방송이 핀란드 중등교육의 성공 비결을 물었을 때 핀란드 교육부장관이 ‘이질적 학생 구성에 걸맞은 수업’이라고 한 답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수준과 특성을 가진 이질적인 학생들에게 각기 다른 개별화된 수업의 제공, 즉 ‘함께 모여 다르게 공부한다’는 뜻입니다(한국교과서연구재단,『교과서연구』, 제53호, 35~36쪽.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제가 편집기획위원장인 저널입니다).

 

전체를 가르치려면 뒤떨어진 한 명쯤은 팽개칠 수 있다고 보는 교사, 어떤 부분이 뒤떨어지거나 말거나 일찌감치 방치해두어 이른바 ‘부진아’가 생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사가 허다한 나라라니…….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제7차 교육과정을 적용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기가 생각납니다. 제7차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초․중․고등학교에서 당장 야단이 났습니다. “우리는 수준별로는 가르치지 못하겠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고, 행정기관에서 독려하자 그나마 우열반이나 편성한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학원과 교습소에서는 붐이 일었습니다. 저마다 “우리 학원에서는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여 맞춤식으로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에서 도입한 논리가 학교에서는 거부되고 엉뚱하게 학원의 전략에는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그 논리를 도입하여 적용하려고 노력했던 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씁쓸했겠습니까.

 

푸념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D와 J가 다니던 그 학교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주로 교사의 강의를 경청하는 획일적인 교육을 일삼는 교실에서 어떻게 수십 명의 아이들이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이들이, 오늘은, 이번 주에는, 이번 달에는, 올해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 기다려지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지낸 그 학교의 어느 학부모가 며칠 전 제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 교육자들도 교육관이 서로 다르므로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호(好), 불호(不好)가 있을 것이라는 것쯤 염두에 두고 읽어보십시오.

 

“지금도 어딘가 여행을 가셔서 자리를 비우신 거라 믿고 싶습니다. 아들이 요즘 부쩍 교장선생님 언제 다시 오냐고, 이제 5학년이면 알 것도 같은데…. 아마 녀석도 저처럼 믿고 싶지 않아서 그러겠지요. 참 원망스러워요. 하시던 일 아직 완성도 되지 않고 이제 겨우 밑그림만 그려놓고 책임감 없이 어디로 가신건지.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는 교장선생님들은 다 그냥 비슷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저희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놓고 미쳐 봉오리도 피기 전에 겨울을 만들어 놓으시다니…. …(중략)…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기 싫어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도대체 우리 교육자들은, 교육행정가들은 무엇을 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저로서는, 우리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며, 이미 개발되어 있는 프로그램도 풍부한데, 도대체 교장들은, 교육행정가들은 그런 데는 관심이 없고 ‘혁신’이니 ‘경쟁’이니 하는 논리에 따라 행정력을 동원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합니다. 현장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혁신’ ‘경쟁’은 지도자들이 이야기하는 ‘혁신’ ‘경쟁’과 그 모습이 달라야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아무도 ‘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그 원리들을 중시하는 꼴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교육학’에 나타나 있는 교육의 원리들을 한마디로 말하면, 교육을 가장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수많은 교육학자들이 애써 연구한 그 경제적, 과학적 방법들을 팽개치고 이제 무엇을 지표로 삼겠다는 뜻이겠습니까.

 

“지난해 초․중․고 조기유학생이 매년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추세를 이어가며 3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묵은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신문기사를 보고 D와 J가 생각나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애들은 지금쯤 저를 잊었을까요? 저는 우리나라의 이런 현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애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교육자로 태어나 어떻게 그 사랑스럽고 소중한 애들이 이 나라의 교육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이역만리 떠나는 걸 멀쩡한 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부디 그 애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주십시오. 그 애들도 문득문득 이곳이 그립겠지요. 그 그리움으로 더욱 잘 성장하게 해주십시오. 제가 「파란편지」를 통해 이야기한 것 중에도 기억나는 것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그 애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고, 주제넘지만 D의 아빠에게도 자주 전화하시는 것 잊지 마십시오. 그분은 얼마나 생각이 많겠습니까.

당연히 어려움이 많겠지만, 건강하시고 마음 편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4월 17일

 

                                                                                                                                                          파란편지 올림.